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1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의 인터뷰는 곤혹스러웠다. 진보진영과 친화도가 높은 경제관과 달리, 안보 사안에서만큼은 집권여당에 가까운 보수적 시각을 가감없이 드러낸 탓이다. 한-미 동맹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할 땐 “진보적인 <한겨레> 시각과는 맞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11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의 논란은 정부가 외교·안보·통상 등 모든 것에서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인 결과다. 이런 문제를 결정하려면 그 파급효과를 예측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어야 하는데, 그게 부실하다 보니 정치권도 국민도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과 국민 모두 인식해야 하는 게,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덕에 가능했다는 거다. 미군이 (사드를) 가져다 놓겠다고 결정하고 (우리 정부와) 협의해 놓았다. 우리가 찬성이냐 반대냐 따져야 할 차원을 넘어서버렸다.”
-야권 지지자들은 더민주에 명쾌한 메시지가 없다고 느낀다.
“명쾌한 메시지? 지지자들을 잠시 기분 좋게 만들 수야 있겠지만, 국익을 위해 좋은 게 아니다. 명쾌한 얘기는 무책임한 사람이나 할 수 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꼭 필요한지는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심지어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투표까지 하자고 하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다. 영국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문에 아나키(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사드가 필요하다고 보나?
“나는 군사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들 의견은 일단 존중하는 게 좋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는 필요하지 않나?
“우리 외교 수준에서 지금 균형외교를 이끌 능력이 있는 사람 누구 봤나?”
-균형외교와 대북 포용정책은 야당으로서 정체성 문제 아닌가?
“포용정책이란 것도 북한이 어느 정도 대화를 원하는 시점에서 가능했다. 지금처럼 계속 핵 개발하고 미사일 실험하는 상황에선 아무리 포용을 얘기해도 의미가 없다. 내가 말한 ‘궤멸론’이 다른 게 아니다. 과거 소련이 군비경쟁에 몰두하다 국민 먹여살릴 능력이 소진돼 붕괴한 것처럼, 지금의 북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돈을 쓰다가는 옛소련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거다. 궁극적 목표인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북한과 대화 채널은 어떤 형태로든 열어놔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전술적 목표는 달라질 수 있다.”
-사드 문제의 시작은 북한 핵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남한의 힘만으로 안 되니 6자회담이란 틀을 만든 건데, 그것도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닌가. 안보리 제재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중국도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로선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안보문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인가?
“안보문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다 고려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느슨하게 해서 유엔 제재의 효과가 없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북한이 계속 핵·미사일을 개발하면 일본의 핵무장을 부르는 등 한반도가 핵으로 경쟁하는 판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고도의 외교전략을 써야 하는데, 우리 정부에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경제는 한번 실패해도 수습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번 실패하면 방법이 없다.”
-기본소득에 대한 발언 빈도가 잦아졌다. 우파는 기본소득을 ‘퍼주기식 복지의 극단’이라 비난한다.
“당장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거다. 사실 노동 여부나 소득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기본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아이디어는 오래됐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비조인 밀턴 프리드먼도 얘기했다. 앞으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사람을 기계가 대체해버리면, 물건을 만들어도 누가 그것을 살 수 있겠나.”
-일각에선 대선 이슈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고 한다.
“시대 흐름에 우리도 보조를 맞추자는 차원이다. 물론 내년 대선은 격차 해소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테니, 이미 시행중인 기초연금을 확대하자는 공약 같은 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거다.”
-관철시킬 복안이 있나?
“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그걸 풀어내는 게 정치다. 그 정도는 충분히 내놓을 수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의 방안으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벌개혁의 다음 단계는 뭔가?
“그걸 지금 얘기하면 경제민주화를 하려고 해도 못한다. 하하.”
-대선 주자 가운데 경제민주화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 누군가?
“굉장히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누구든 대통령 되기 어렵다.”
-문재인 전 대표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얘기 하는 대통령 후보는 많았다. 중요한 건 그 방안을 내놓는 거다. 안 그러면 아무 감흥도 못 준다.”
-어쨌든 가장 유력한 야권의 대선 후보다. 문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을 어떻게 보나?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1460만표를 얻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대선에서 38만표 차로 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치 대통령이 된 것인 양 행동하다가 2002년 대선에서 다시 실패했다.”
-내년 대선이 3자 구도로 치러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3자가 될지, 양자가 될지 두고봐야 안다. 3자 구도에서 이기려면 야권 단일화가 돼야 한다는데, 야권 단일화가 될지 여권 단일화가 될지도 판단하기 힘들다. 더민주로선 미래에 전개될 정치·경제 상황을 예견하면서 다수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집권할 수 있다.”
-박원순·안희정·김부겸 등 잠재 대선 주자들과 연쇄 접촉했다. 대선 주자 면접인가?
“면접은 무슨. 50대 정치인들이 대선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준비하는 게 나라 발전을 위해 좋다.”
-새누리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만났던데.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노력하는 거 보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란 느낌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어떤가?
“남 지사나 안 지사나 모두들 가능성을 갖고 있는 분들 아닌가. 그 외에 뚜렷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김부겸이든 나라가 당면한 상황에 대해 독보적인 생각을 제시하면서 국민에게 어필해야 한다.”
-당권에 도전할 생각은 여전히 없나?
“관심 없다. 대표 하려고 이 당에 온 게 아니다.”
-지금 당권 주자들 가운데 눈여겨보는 이가 있나?
“누가 되든 대세에 지장 없을 거다.”
-대표에서 물러난 뒤엔 무엇을 할 건가?
“경제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경제 능력이 향상되고 사회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나중에 통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계몽적 역할이든 뭐든, 내 역할을 찾겠다.”
-내각제 개헌에 매진하겠다고 인터뷰도 했던데.
“확대해석한 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야 민주화 이후 30년간 입증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권력구조의 새로운 틀을 생각해볼 시기가 됐다.”
-개헌은 언제쯤 가능할까?
“굉장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어렵다. 우리 역사상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은 1960년과 1987년 딱 두번이다. 두번 다 4·19와 6월항쟁의 압박에 의한 것이지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다. 국회가 컨센서스를 형성해 개헌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다.”
-취임 초기 ‘운동권 정당’ 탈피를 강조했다. 변화가 있나?
“과거 운동했던 사람들도 정치경력이 이제 15~16년이다. 굳이 걱정하지 않지만, 혈기 왕성했던 시절의 생각과 느낌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정상이 아닌 거다. 특히 반미 정서 같은 거. 한-미 동맹과 미국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 상황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진다.”
박용현 정치에디터,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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