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안기부 예산 증거 없어 횡령죄 성립 안돼”
대법원 2부(주심 배기원 대법관)는 28일 옛 국가안전기획부 예산 1197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쓴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로 기소된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기섭씨가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1197억원은 그가 은밀히 관리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관련된 정치자금일 개연성이 짙고, 이를 안기부의 일반 공금이나 제3자의 돈이라고 볼 증거가 없어 국고 횡령죄는 물론 일반 횡령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강삼재씨와 공모 혐의를 부인하다가 강씨가 김 전 대통령 관련 사실을 폭로하자 진술을 번복한 것은 김 전 대통령 관련 사실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의심된다”며 “반면 ‘940억원을 김 전 대통령에서 직접 받았고 출처는 알지 못했다’는 강씨의 주장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1197억원의 출처가 안기부의 불용 예산과 이자 등이라는 검찰 쪽 주장에 대해 “안기부 계좌의 1993년 한 해 잔고 증가액이 1293억원에 이르고 이자 발생액은 131억원에 불과해 나머지 1162억원은 불용액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그해 예산 5316억의 22%에 이르는 돈이 사용되지 않고 남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외부자금 유입 쪽에 무게를 뒀다.
강씨와 김씨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96년 총선을 앞두고 안기부 예산 1197억원을 민자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에 불법으로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 및 추징금 731억원과 징역 5년 및 추징금 12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편, 법무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판결 취지를 분석한 뒤 한나라당 등을 상대로 제기한 ‘안풍자금’ 국고환수 소송을 취하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01년 검찰이 강씨와 김씨 등을 기소하자 두 사람과 한나라당을 상대로 9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며,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가 사건 관련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하자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등 당이 소유한 건물과 토지를 가압류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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