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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미르·K스포츠 진상도 안 드러났는데 벌써 의혹 꼬리 자르기

등록 2016-09-30 18:05수정 2016-09-30 22:29

재단 초고속 설립에 해체도 무리수…증거인멸을 위한 선택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K)스포츠의 갑작스런 해산이 노리는 건 결국 의혹의 꼬리를 자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재단의 해산 절차는 탄생 과정만큼이나 비정상적이고 비밀에 싸여 있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30일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해산한다고 밝혔다. 대신 신규 재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두 재단은 설립된 지 각각 11개월, 8개월 지났을 뿐이다. 1년도 안 된 재단의 조기 퇴장이다. 더군다나 지난 주말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10월 초께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한 지 불과 엿새 만에 발표가 이뤄졌다. 시점이 크게 당겨졌고 개선책 대신 ‘해체’라는 초강수가 나왔다. 당연히 새롭게 만든다는 재단의 청사진도 제시되지 않았다. 모든 게 일단 두 재단의 문을 서둘러 ‘폐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이토록 긴박한 결정이 내려진 이유를 전경련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운영 상황을 진단했더니 두 재단의 분리 운영에 따른 비효율성이 나타났다는 정도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재단에 사망 선고를 내린다는 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재단 해산은 오히려 청와대의 개입 의혹 등을 덮으려는 시도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두 재단이 해산되면 재단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을 손쉽게 은폐할 수 있게 된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의 미르·케이스포츠 세탁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며 “재단의 명칭을 바꿀 경우 법인의 수입지출 내역이 담긴 금융계좌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계좌가 바뀌면 지출 내역이 사라져, 재단 사업 내역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야당은 두 재단의 지출 내역을 제출하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재단의 거부를 이유로 지금껏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해산 발표 시점 또한 결국 ‘증거인멸’을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최순실(60)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뇌물 및 배임 혐의 등으로 고발한 지 하루 만에 재단 해산 발표가 나왔다.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과 정치권의 의혹 제기가 형사 문제로 번지려는 찰나에 아예 ‘의혹의 진원지’를 덮어버리는 모양새다. 실제 일부 대기업에서 내부 문서를 폐기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날 미르 사무실에서는 대량으로 폐기된 서류 더미가 발견되기도 했다.

재단 해산의 주체로 전경련이 나서는 것도 수상하다. 전경련은 사실 재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체다. 재단의 엄연한 ‘주인’은 돈을 낸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 엘지 등을 비롯한 18개 그룹 산하 수십개의 기업들이다. 이들은 입을 닫고 있는데 이들의 ‘심부름’을 하는 경제단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상 재단의 해산은 돈을 낸 기업들도, 전경련도 아닌 재단 이사회만이 할 수 있다. 두 재단은 각각 정관 35조와 36조에서 “재단을 해산하고자 할 때에는 재적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감독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전경련의 해산 발표 이전에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됐는지도 의문이다. 케이스포츠재단의 한 직원은 <한겨레>에 “보도를 통해서 알게 돼서…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재단의 한 이사는 이사회가 언제 어디서 열렸는지 말하지 않은 채 “어제 그제 전경련에서 계속 연락이 왔고, 이사회가 열려 해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재단 해산 결정과 실행이 하루이틀 새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을 법적 권한이 전혀 없는 전경련이 기획·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온갖 의혹의 당사자인 전경련이 자기 손으로 재단 해산을 주도하고 있는 희한한 모양새다.

전경련은 재단 해체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가 재단을 해산시킬 권한이 없다. 발표 전 출연 기업, 재단 이사들과 의사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총대를 메고서 불법 행위 현장의 ‘증거 세탁’에 나서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류이근 방준호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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