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지난 8월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교정에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어 ‘해방 이화 총장 사퇴’를 외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사학 이화여대의 이름이 한 모녀로 인해 얼룩지고 있다.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 때부터 잡음이 무성했던 최순실(60)씨의 딸. 그를 둘러싼 특혜 의혹은 ‘담당 지도교수 교체’와 ‘맞춤형 학칙 개정’에 이어 이제는 ‘학점 특혜’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이대에 입학한 최씨의 딸 정유라(20)씨는 체육과학부 학생이다. 독일에서 승마 훈련을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체육이 전공인 정씨는 집중적으로 의류산업학과 수강신청을 한다. 12일 <한겨레>가 이대 교수들과 학생들을 취재한 결과, 정씨는 지난 1학기와 여름 계절학기 때 의류학과 과목 3개를 수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두 과목이 계절학기에 쏠려 있다. 하나가 이인성 의류학과 교수가 맡은 ‘글로벌 융합 문화 체험 및 디자인 연구’였다. 정씨는 사전 및 사후 보고서를 내지 않고, 수업의 일환으로 중국 구이저우(귀주)에서 한 패션쇼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학점을 따냈다.
정씨는 또 계절학기에 개설된 ‘기초의류학Ⅰ’을 듣고서 2학점을 이수했다. 이 과목은 유아무개 겸임교수가 가르쳤다. 정씨가 1학기 때 수강신청한 3학점짜리 ‘컬러플래닝과 디자인’도 유 교수의 수업이었다. 정씨가 1학기부터 계절학기까지 의류학과 세 과목에서 모두 7학점을 따낸 것이다.
타 과목 수업을 거의 듣지 않던 정씨가 왜 의류학과 수업을 몰아서 들었을까? 의혹의 눈길은 이인성 교수한테 쏠린다. 유 교수도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이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정씨가 최순실씨의 딸이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해명한 바 있다. 유 교수는 이대 홍보팀을 통해 <한겨레>에 “누구의 자녀이기 때문에 특혜를 준 게 아니라 학칙에 따라서 성적을 매겼다”고 밝혔다.
의혹의 진원지엔 총장의 핵심 측근들이 있다. 이 교수는 최 총장이 연구처장을 할 즈음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한 원로교수는 “둘은 엄청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의류학과의 학점 특혜 의혹엔 총장의 또다른 측근이 등장한다. 바로 대기과학공학과의 박선기 교수다. 그는 지난 8월 이 교수의 계절학기 과목을 수강신청한 정씨와 같은 비행기편 비즈니스석을 타고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묘하게도 그는 유독 정씨하고만 같이 움직였다.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대 사태의 핵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지난 7월 학교 쪽이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려 하자, 학생들은 철회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본관 점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 총장은 미래라이프대와 통합할 계획이었던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 원장에 이인성 교수를 앉혔다. 그는 문화예술교육원장직도 맡고 있다. 박선기 교수는 기획처장으로 재선임됐다가 학내 반발이 커지면서 미래라이프대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에 이대는 보도자료를 내어 “박 교수는 해당 학생(정유라씨)과 전혀 일면식도 없으며 해당 프로그램 참가 사실도 알지 못했다”며, 같은 비행기를 타고서 이동한 건 “우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숙 교수가 학장을 맡고 있는 신산업융합대는 미래라이프대처럼 학과 구조조정의 산물이다. 김 교수도 대표적인 최 총장 측근으로 꼽힌다. 신산업융합대학엔 정씨가 적을 둔 체육학부뿐만 아니라 의류학과도 ‘한 지붕’ 아래 있다.
이대가 올해 주요 재정지원사업 9개 가운데 8개나 따낼 수 있었던 배경에 최씨 딸에 제공한 특혜가 작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대가 재정지원사업에 연이어 선정된 건 최씨 딸에게 특혜를 제공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류이근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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