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사진은 2012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의 최 신임 민정수석이 출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임기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0일 비서실 인사를 강행했습니다. 그간 온갖 의혹에도 내치지 않았던 우병우 민정수석도 교체됐습니다. 신임 민정수석은 최재경(54) 전 인천지검장입니다. “특수수사의 요직을 거친 적임자”,“권력에 줄 선 정치검사”라는 평이 엇갈립니다.
과거 <한겨레> 기사들과, 이를 취재한 현장 기자의 목소리로 ‘검사 최재경’을 정리했습니다.
1. 잘나가는 특수통 검사, 후배들에게 ‘반인반신’ 최재경
최 수석은 검찰 재직 시절 뛰어난 수사능력과 판단력으로 후배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수사기획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특수수사의 요직을 거쳤고, 대검 중수1과장 때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2006년 4월26일 <한겨레> 기사 :‘정몽구 회장 오늘 구속영장’)을 지휘했습니다. 한 마디로 특수통 검사입니다. 젊은 시절 강직한 수사와 밤을 새우는 고된 강행군에도 후배들을 향한 인간적 면모를 잃지 않아 내부적으로도 신망을 얻었다고 합니다. 대구 출신의‘TK성골’이지만 겸손함을 겸비해 검찰 선·후배들은 모두 그를 예비 검찰총장으로 꼽아 왔습니다.
2. 비비케이(BBK)사건 수사 ‘정치검사’의 길로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 연루 의혹이 제기된 ‘비비케이(BBK)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2월 대선 13일을 앞두고 수사결과를 발표해, 관련자 대부분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명박 ‘무혐의’…도곡동땅 주인은 끝내 미궁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비비케이와 ㈜다스의 실소유주와 관련해서도 “이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이 후보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최재경)은 5일 이런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김경준씨를 증권거래법위반 및 횡령,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밝혀줄 서울 도곡동 땅 매각대금 흐름 등 일부 핵심 의혹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략)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 문제에서 “다스 임직원과 납품업자 등을 조사하고 계좌 추적도 했지만 이 후보 것이라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7년 12월 6일 ‘한겨레’1면)
최재경 신임 수석은 이명박 정권 출범 뒤 대검수사기획관으로 기용됐고, 정권 말기에는 대검 중수부장이 됐습니다. 저축은행 수사를 통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함으로써 특수통 검사의 명성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대통령의 ‘역린’은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3. 내곡동 사저 사건과 민간인 사찰...시험대에 오른 최재경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퇴임 뒤 거주할 목적으로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사저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일부는 아들 이시형씨의 이름으로 땅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경호처가 부지를 매입했는데, 이시형씨의 땅은 싸게 산 반면 경호처의 땅은 비싸게 매입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른바 내곡동 사저 매입 사건입니다.
2011년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를 비롯한 관련자 7명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당시 최재경 중수부장은 무혐의를 주장했습니다.
‘사저 개발이익’ MB에 미리 떼줬다는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땅 헐값 매입 사건으로 고발된 이 대통령 아들 이시형(34)씨 등 7명을 검찰이 10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이 ‘사저 건립으로 국가가 누리게 될 땅값 상승 이익을 이 대통령 쪽과 나누려 했다’는 청와대 쪽의 황당한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수사 결과여서 ‘봐주기·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중략)
결국 청와대가 국가에 손실을 끼치고 이 대통령 쪽에 그만큼 이익을 주려는 의도를 드러낸 해명을 한 셈이지만, 검찰은 이를 무혐의 처분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백방준)는 “54억원을 놓고 이시형씨와 국가 사이의 부담분을 나눴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에 손실을 끼치려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불기소 처분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그러면서도 시형씨와 청와대 간의 지분비율 및 금액분담의 ‘객관적 불균형’이 발생한 점은 인정하고, 이를 감사원에 통보했다. (2012년 6월11일 한겨레신문)
하지만 이 사건은 이후 2012년 특검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특검은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법원에서도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최재경에게서 정치검사의 민낯을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준 건 민간인 사찰 사건입니다. 2010년 언론을 통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윗선을 밝혀내는게 핵심이었지만, 당시 검찰은 총리실 직원들만 사법처리했을 뿐 청와대의 개입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를 받던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양심고백을 하면서 검찰은 재수사를 시작하게 됐지요.
재수사의 핵심은 민간인 사찰이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느리게만 진행됐고, 진척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최재경 중수부장의 역할은 재수사 결과 발표가 있은 뒤 6개월 가량이 지나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 졌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당시 압수수색을 통해 ‘일심 충성 문건’이 들어있는 USB를 발견했습니다. 민간인 사찰 보고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핵심 문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USB는 대검 수사관에 의해 외부로 반출됐고, 이 외부 반출을 지시한 사람은 최재경 중수부장이었습니다.
최재경 중수부장, 사찰 핵심물증 틀어쥐고 시간끌었다
■ 최재경 중수부장, 핵심 물증 수사팀 전달 막아
(중략) 수사팀은 시간이 촉박했다. 관련자들이 1차 수사 때처럼 또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물증을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에 보낸 김 주무관의 유에스비 분석 결과가 2주일이 지나도 수사팀에 오지 않았다. ㄱ검사는 대검에 “유에스비 분석 결과가 왜 아직 도착하지 않느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복구 및 분석은 진작에 끝났는데, 유에스비에서 출력된 자료가 중수부장실에 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사팀에 전달돼야 할 자료가 중수부장실에서 ‘발이 묶인’ 형국이었다.
(중략) ㄱ검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앞서 지휘부의 수사 방해에 항의하며 다른 검사 2명과 함께 ‘사표를 내겠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었던 탓이다. ㄱ검사는 4월7일 토요일 새벽에 사표를 썼고,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발칵 뒤집혔다.
(중략) 일이 커지자, ‘원인 제공자’인 중수부장이 일요일 아침 직접 ㄱ검사를 찾아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 중수부장이 ㄱ검사의 사직을 막은 건 ㄱ검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도 살고 판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최 중수부장을 만난 ㄱ검사는 사의를 접었다. 다른 검사 2명도 주저앉았다. (2013년 1월28일 한겨레신문)
민간인사찰 핵심물증 USB, 실종 미스터리
■ 누가 ‘유에스비’를 쥐고 있었나
유에스비 자체가 갑자기 서울중앙지검에서 자취를 감췄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유에스비의 행방에 대해 공통된 설명을 내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에 유에스비가 대검으로 넘어가 한참 동안 서울중앙지검으로 오지 않았던 것은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다. 수사 검사들은 ‘박윤해 팀장이 대검에 보내라고 했고, 유에스비를 가져오라고 한 사람은 최재경 중수부장(현 대구지검장)이다’라고 들어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일심 충성’ 문건이 유에스비에서 나온 사실을 알고 최 중수부장이 유에스비를 들고 오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 검찰 수사관이 직접 가서 증거물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검사한테 받아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략)
유에스비의 당시 행방을 알 만한 이들은 확인을 거부하거나 부인했다. 박윤해 차장은 “그 부분은 일일이 확인해 주기 그렇다.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있는데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재경 지검장한테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재경 대구지검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 박윤해 차장 등에게도 확인해 보니 김경동 주무관의 유에스비를 서울중앙지검에서 중수부에 보내거나 받은 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지휘했다.
4.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 수사 실패...최재경의 위기
승승장구해오던 그는 2014년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광주와 인천에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던 검찰. 당시 인천지검은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유씨는 세월호 사고 초기 구조 실패 등 참사에 따른 정부 책임론을 돌리는 핵심 표적이었지요. 검찰은 군까지 동원해 함동검거작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 주검으로 발견됐고 작전은 허망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최재경 <인천지검장> 사퇴…황교안 <법무부 장관>·이성한 <경찰청장> ‘책임론’ 더 거세지나
최재경 지검장은 유씨가 전남 순천 ‘숲속의 추억’ 별장 비밀공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23일 언론 브리핑 뒤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전화로 사의를 밝힌 뒤 이날 아침 대검에 사표를 제출했다. 최 지검장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수사 과정에 잘못된 일이 있다면 오로지 지휘관인 제 책임”이라며 “저의 업과 부덕이 검찰에 부담을 더한 것 같아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2014년 7월25일 한겨레신문)
5. ‘역린’과 함께 돌아온 최재경…그의 선택은?
마무리는 취재 후일담입니다. 최재경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 보도가 나간 뒤, BBK 수사부터 민간인 사찰 사건까지 최재경 검사와 ‘현장’을 함께했던 <한겨레> 김태규 기자가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김 기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당시 (정치검사의 민낯) 기사를 쓰고 나는 검찰 내 ‘정의감 있는 특수검사’ 여럿에게서 직간접적으로 항의를 받았다. “최재경이라는 사람이 설마 그럴 리가 없다”, “너무 삐딱한 시각으로 기사를 쓴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상식적인 선에서 기사를 썼는데 ‘최재경 사단’의 불만은 대단했다. (중략) 강직하고 수사능력도 뛰어나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 많은 검사들은 거의 반인반신의 ‘최재경 신화’에 빠져 있었지만 내가 엠비 검찰을 취재하면서 접한 팩트들은, 최재경이라는 사람도 어떤 면에서는 그냥 평범한 검사일 뿐이었다. 신화와 성역은 깨지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재경은 유병언 검거에 실패하면서 불명예스럽게 검찰을 떠났다. 그래서 더욱 그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검찰 내 ‘최재경 사단’은 여전히 존재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재경 민정수석 기용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중략) 우병우가 우격다짐으로 검찰을 장악했다면 최재경은 인품으로 검찰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검찰에서 수사 좀 한다는 검사나 수사관이 파견 형태로 나갈 특검도 마찬가지다. 결국 박근혜는 칼날 위에 선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는 유능한 변호인을 찾은 셈이다. ‘최재경 사단’의 바람대로라면 그는 피의자인 대통령에게 “이제 모든 걸 밝히고 용서를 구합시다”라고 설득해야 한다. 과연 그는 인사권자(의뢰인)의 이익을 배반할 수 있을까”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