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7월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개각을 발표했습니다. 새 국무총리 후보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행정학)를 지명했는데요. 김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노무현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새누리당은 이날 논평에서 “오늘 개각 발표는 정치권이 요구하고 있는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에 맞는 인사로 판단한다. 위기에 처한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평했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과 김 후보자는 ‘악연’이 있습니다. 꼭 10년 전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김병준 교수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새누리당은 ‘부적격자를 내정한 코드인사’라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해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패합니다. 한 달 여 뒤인 7월3일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1년6개월을 남기고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교육부총리에, 권오규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제부총리에 내정했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대선 출마를 위해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직후입니다.
노 대통령 개각 카드에 대해 언론은 대체로 ‘참신하지 못한 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김 교수는 7월21일 교육부총리에 취임합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국민일보>는 7월24일치 1면 보도를 통해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국민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심사했던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거의 베껴 국내 학회지에 기고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후 국민대 교수 시절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논문을 두뇌한국(BK)21 사업 연구실적으로도 ‘중복’ 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요. 같은 내용의 논문을 제목만 달리해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김 부총리는 “두뇌한국(BK)21 최종보고서에서 논문 2개가 겹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내 잘못”이라고 사과했습니다만, 논문 중복게재에 대해선 “국민대 논총은 밖에서 발표한 논문을 실을 수 있도록 돼 있어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합니다. 논문표절 의혹은 “학회에 표절 여부 판명을 의뢰할 용의가 있다” “명백한 오보”라고 할 정도로 강하게 부인했고요.
7월31일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은 김 부총리 해임 건의안을 추진하겠다며 사퇴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교육부 수장에 대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며 “(김 부총리의 해명이) 지난 관행에 비춰볼 때 타당성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관행에 (김 부총리의) 전향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하지요. 결국 8월2일 김 부총리는 취임 13일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밝힙니다.
10년 전 새누리당이 낙마시킨 인사를 국무총리로 지명할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현재 처지는 다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이 분(김병준 교수)을 부정하고 부인한다면 그건 노무현 정부를 부인하고 부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여야의 협조를 받기 위해 이 분을 모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이번 개각은 과거 야권인사를 내세운 ‘꼼수’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날 전남 나주에서 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이 분노한 민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겸허하게 국민들 앞에 반성하면서 용서를 빌고,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0년 전 교육부총리 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김병준 교수는, 새로운 국무총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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