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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단독] 안종범 “이 사항은 VIP께 보고하지는 말아달라”

등록 2016-11-02 16:48수정 2016-11-03 09:03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월26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케이스포츠재단 관계자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포스코 회장에게 얘기한 내용이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즉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 현재 포스코에 있는 여러 종목을 모아서 스포츠단을 창단하는 것으로 하겠다. 다만, 이 사항은 VIP께 보고하지는 말아 달라.”

청와대 경제수석이 포스코의 권오준 회장에게 부탁한 내용이 황은연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뭔가 문제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안 전 수석은 이처럼 일이 틀어진 게 대통령께 어떤 경로로든지 보고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을 재단 쪽에 전한다. 자신이 질책 받을 걸 우려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대화 내용은 2일 <한겨레>가 입수한 케이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에 담겨 있다. 이 자리엔 케이스포츠재단 관계자 2명이 동석했다. 안 전 수석이 말을 하기 앞서, 재단관계자가 먼저 상황을 간략히 전했다. 그는 안 전 수석에게 “포스코 사장과 미팅에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와 체육은 관심 밖이라는 듯한 태도를 느꼈고, 배드민턴 창단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관심사인 바둑을 주제로 이야기 하였다 한다”고 말한다. 포스코에 제안한 배드민턴 선수단 창단이 거절됐다는 뜻이다. 이 얘기를 듣고 안 전 수석이 즉석에서 포스코로 하여금 ‘배드민턴단 창단’ 대신 ‘여러 종목을 모은 스포츠단을 창단’하는 쪽으로 일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 1월 만들어진 케이스포츠재단에 19억원을 출연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케이스포츠 재단 관계자들이 포스코와 배드민턴단 창단을 주제로 나눈 이 대화의 시발점은 역시 최순실씨였다. 최씨는 2월 초중순께 더블루케이에 스포츠단 창설 관련한 기획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의 측근인 고영태 더블루케이 상무와 케이스포츠재단의 노승일 부장, 박헌영 과장이 달라붙어 기획안을 만든다. 조아무개 전 더블루케이 대표는 맞춤법 등을 손봐 최씨에게 보고서를 넘긴다. 최씨는 기획안 3부를 복사한 뒤 맨 앞에 조 전 대표의 명함을 끼워 어디론가 들고갔다.

며칠 뒤, 조 전 대표는 포스코 쪽의 전화를 받는다. ‘언제 만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바로 다음날 약속이 잡혔다. 조 전 대표는 이 회사 고 상무, 노 부장과 함께 포스코에 간다. 포스코 쪽 황 사장의 반응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황 사장은 일행에게 “제안서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운영중인 축구선수단과 바둑선수단이 거절의 이유였다. 조 전 대표는 <한겨레>에 “거절 의사를 표명하길래 알겠다고 하고서 나왔다.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순실씨나 그의 측근인 고 상무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스코쪽 반응에 화가 난 고 상무는 최씨에게 ‘포스코의 무례함’을 보고한다. 최씨는 케이스포츠재단으로부터도 같은 내용을 보고받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2월26일 롯데호텔에서 안 수석과 케이스포츠재단 인사들이 만나게 된다. “즉시 조치”하겠다고 말한 안 수석은 실제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는 그날 오후 재단 사무총장에게 노 부장의 연락처를 묻는다. 이후 노 부장은 포스코 서아무개 그룹장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안 수석이 포스코에 어떤 식의 압력을 넣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포스코 쪽은 “권오준 회장은 안 전 수석과 배드민턴단이나 스포츠단 창단과 관련해 전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안 수석은 재단의 사무총장에게도 황 사장을 한 번 만나보라고 권했지만 사무총장은 포스코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며 이같은 내용을 최순실씨한테 보고했다. 최씨는 그에게 “직원들을 보내지 말라”고 지시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권오준 포스코 회장.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러자 포스코쪽은 최씨의 개인회사인 더블루케이의 조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큰 결례를 범했다.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며 만남을 청했다. 조 전 대표는 최순실씨에게 사표를 내기 하루 전날인 3월15일 양야무개 포스코 상무를 만난다. 이후에도 한동안 포스코 쪽과 스포츠단 창단 논의가 진행됐다.

<한겨레>가 확보한 더블루케이 내부 문건을 보면, “포스코 양ㅇㅇ 상무. 포스코 스포츠단의 운영현황 받아서 진행하기로 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3월28일 작성된 이 문건에 ‘대상 기관’은 포스코, ‘프로젝트명’은 “스포츠단 창단”이라고 적시돼 있다. 그 책임자는 “정: 고영태, 부: 노승일”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때까지도 포스코는 더블루케이와 스포츠단 창단을 논의중이었던 셈이다. 이후 협의가 어디까지 진척됐는지는 안갯속이다.

포스코는 <한겨레>에 “새 스포츠단을 창설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쪽에 절대 못한다고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실제 추진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혀왔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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