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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대형사건 푸는 핵심열쇠, 운전기사 폭로의 역사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6-11-24 10:07수정 2022-08-19 16:11

[더(The) 친절한 기자들]
최순실 운전기사, 박근혜 보궐선거자금 지원 폭로
대형 사건마다 피의자 운전기사 입은 태풍의 눈
파이시티, 부산저축은행 기사 폭로가 핵심증거
운전기사를 보면, 뒤에 앉은 그 사람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21년 운전기사 다시금 화제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누군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사진.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사진은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누군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사진.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사진은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운전기사를 보면, 뒷자리에 앉은 그 사람이 보인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순실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억원을 지원했다고 최씨의 운전기사가 폭로했습니다. 이 운전기사는 최씨 일가에서 17년간 일해온 사람입니다. 최순득씨의 운전기사, 최순실씨의 세신사 등 최씨 일가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폭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한 남성의 사진이 화제입니다. 누리꾼들은 이 남성이 노 전 대통령 곁을 21년간 지킨 운전기사 최영씨로 추정하며 ‘운전기사를 보면 차량 뒷좌석에 앉은 그 사람의 인품이 보인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고용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운전기사, 또는 가사 도우미. 어쩌면 그들을 하찮게 대했을 고용주들에겐 핵폭탄급 폭로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을 고용주에겐 마지막까지 따뜻한 인사가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한겨레>는 이 사진 속 인물이 운전기사 최영씨인지 확인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진 속 인물은 최영씨가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인 장철영씨는 “(최영씨에게) 물어보니 (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 아니라고 한다. 해당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최영씨는 노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 신분이던 1988년부터 청와대를 거쳐 현재까지 봉하마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29일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싣고 경남 봉하마을에서 서울 영결식장으로 향하는 운구차도 최영씨가 운전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 때도 ‘운전기사’를 바꾸지 않겠다며 특수 제작된 벤츠 방탄차 이용을 거절한 것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청와대 경호실이 방탄차는 경호실 소속 기사가 몰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15년간 함께 일해 온 기사 최영씨를 교체할 수 없다”며 거절한 것입니다. 결국 최씨는 2002년 12월24일 하루 동안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운전’ 교습을 받고 다음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탄 승용차를 운전했습니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순실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억원을 지원했다고 최씨의 운전기사가 폭로했다. &lt;세계일보&gt; 동영상 갈무리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순실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억원을 지원했다고 최씨의 운전기사가 폭로했다. <세계일보> 동영상 갈무리

최순실 일가 운전기사의 폭로처럼, 과거 대형사건 수사마다 운전기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우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래서 검찰도 주요 피의자를 조사할 때면 운전기사를 조사하곤 합니다. 운전기사는 말 없는 그림자이지만, 무서운 감시카메라(CCTV)이기도 합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발목을 잡은 것도 운전기사의 폭로였습니다.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율씨의 운전기사였던 최아무개씨는 대선 전인 2007년 승용차 트렁크에 돈 상자를 옮겨 실은 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돈 상자에 든 만원권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이었죠. 이정배 파이시티 전 대표가 보낸 이 돈 상자는 브로커 이씨를 거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전달됐고요. 브로커 이씨는 이 결정적 사진 때문에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권력형 비리 사건인 ‘최규선 게이트’도 운전기사의 입에서 비롯됐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사업가 최규선씨가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함께 스포츠토토의 체육복표 사업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챙겼다는 의혹이 ‘최규선 게이트’입니다. “최씨가 홍걸씨를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했다.” 최씨의 운전기사인 천호영씨가 그해 3월28일 경실련 누리집에 쓴 폭로가 ‘최규선 게이트’의 본격적 계기가 됐습니다. 대통령의 3남 홍걸씨는 결국 사법처리됐습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구속한 데도 운전기사의 진술이 결정적이었죠. 김 전 수석은 부산저축은행그룹 쪽 로비스트인 박태규씨로부터 구명 청탁과 함께 상품권, 골프채 등 1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그해 9월28일 구속됐습니다. 로비스트 박씨의 운전기사 김아무개씨가 검찰 조사에서 “여성용 골프채 세트를 사서 김 전 수석의 사모님에게 전달했다. 김 전 수석에게도 중고 드라이버와 새 드라이버를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 공화당계 유명 정치 컨설턴트인 로저 스톤 등이 지난달 13일 경쟁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부부에게 치명타를 날리겠다는 목적으로 발간한 <클린턴 부부의 여성들과의 전쟁>. 이 책은 전직 백악관 운전기사와 경호원의 폭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물론 저자가 공화당계 인물이라 객관성은 떨어졌지만, 이 책에서 한 운전기사는 클린턴 부부가 공식 행사장에 가기 위한 리무진 안에서도 수시로 목소리를 높여 싸웠고, 힐러리가 차 내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들어 빌 클린턴에게 던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말없이 일하는 운전기사 앞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뒷좌석에 앉은 그들의 인품도 드러나는 법입니다. 물론 누리꾼들의 추정과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허리를 숙인 이가 운전기사는 아니었지만, 21년간 동고동락한 관계는 아름다운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멋있지 않나요?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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