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뜻 접겠다” 전격 불출마…대선판 요동
지지율 하락·현실정치 벽 못넘고 3주만에 낙마
반 “표 얻으려면 보수 밝히란 말 너무 많이 들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국회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1월12일 귀국한 뒤 준비 부족을 노출하며 지지율 하락세를 돌려세우지 못한 채 현실정치의 벽 앞에 3주 만에 주저앉은 것이다. ‘정권교체’를 내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설 보수 유력 주자가 링에서 내려옴으로써 향후 대선 구도는 크게 출렁이게 됐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 그는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로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됐다”며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조카 등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귀국 뒤 보여온 언행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을 지목한 것이다.
그는 또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문재인 연대’라는 대선 구상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냉랭한 반응도 ‘중도 낙마’의 주된 이유로 든 것이다. 특히 그는 불출마 선언 뒤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범여권은 두 자릿수 지지율의 유일한 보수 후보가 사라지자 충격에 휩싸였다. 새누리당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 역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야권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며 표정관리에 나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좋은 경쟁을 기대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의 큰 어른으로서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없이 국가를 위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포기로 대선 구도는 요동칠 전망이다. 반 전 총장으로 쏠렸던 ‘보수·중도’ 지지층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등으로 옮겨가면서, 기존 ‘문재인-반기문’ 양강 구도가 새로운 양강 또는 3강 구도 등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