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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우리가 학교를 바꿨어요” 초딩들, 민주시민을 예습하다

등록 2017-02-09 09:06수정 2017-02-09 22:26

[1987~2017 광장의 노래]
3부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③-진화하는 민주주의
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삼양초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지난해 5월부터 직접 디자인해 만든 옥상 앞 계단에서 도움을 준 어른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는 동사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삼양초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지난해 5월부터 직접 디자인해 만든 옥상 앞 계단에서 도움을 준 어른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는 동사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6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5반 스물두 명의 아이들이 옥상으로 향하는 본관 4층 계단 앞에 모였다. 아이들은 의자로 변신한 나무 계단에 앉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문을 힐끗거리며 검은 벽에 열심히 낙서해댔다. 노란색 벽면에는 이 공간이 만들어진 지난 9개월간의 발자취를 사진으로 전시했고, 하얀 벽면에는 그 모습이 영상으로 비쳤다. 이날은 아이들이 건축설계한 학교의 옥상 앞 계단과 텃밭, 뒤뜰이 완공된 날이었다. 옥상 앞 계단을 디자인한 강우진군은 “처음엔 그냥 논다고 생각했지 우리가 학교를 바꿀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고 감격했다.

 아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움직이는 창의클래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창의클래스는 ‘놀이’ 관점에서 아이들이 학교 구석구석을 탐구하고 공간을 바꾸는 참여 디자인·건축 프로젝트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와 한국암웨이의 어린이 창의교육사업 ‘생각하는 청개구리’ 사업의 하나로 삼양초가 처음 시범 실시했다. 6학년 5반 담임 배성호 교사는 “창의클래스는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시민 교육은 지식이 담긴 명사로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면서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그런지 살펴보고 좀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동사다.”

 창의클래스는 매주 화요일 열렸다. 어린이도 시민이라는 교육철학을 지닌 교육기획그룹 ‘프로젝트 어린이’의 김희정·이오영씨와 건축교육가 홍경숙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디자인어스 그룹이 아이들과 함께 새롭게 바꿀 공간을 찾아 헤맸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에서 뭘 하며 놀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모은 것이다. 놀이 종류는 총 31가지나 쏟아졌다. 술래잡기, 피구, 축구 등 뛰어노는 놀이뿐 아니라, 누워서 바람맞기, 수다 떨기, 멍때리기 등 아이들은 일상을 놀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노는 공간, 쉬는 공간, 위험한 공간을 찾으며 학교를 둘러보던 아이들은 ‘옥상 따러 가기’를 제안했다. 굳게 닫힌 옥상 문을 열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고무줄, 실핀 등을 가지고 열어보겠다.” “기둥을 타고 오르거나 밖에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겠다.” “자물쇠를 따주는 사람에게 부탁하자.” 그러나 일부가 반대했다. 이유는 “우리가 학교 주인이 아니라서”였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지?” “교장 선생님이지.” “교장 선생님인가?” 결국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 면담을 신청했다. 공간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과 발표 자료를 만들어 옥상 공간을 활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안전 문제를 이유로 허락받지 못했다. 이예진양은 “학교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신 아이들은 창문으로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옥상 앞 계단’을 디자인 공간으로 선정했다. 또 아이들이 많이 놀지만 쉬는 공간이 없는 ‘뒤뜰’과 활용하지 않는 땅이 있는 ‘텃밭’도 바꾸기로 했다.

강북 삼양초 ‘창의클래스 프로젝트’
아이들이 토론거쳐 학교 공간 탈바꿈
옥상 계단·뒤뜰·텃밭 학생 공간으로

수송초에선 ‘국립중앙박물관 바꾸기’
자발적으로 민원 내고 언론에 기고글
도시락 먹을 곳 없던 박물관에 ‘쉼터’

“우리의 공간 바꿀 수 있는 건 우리
어른들 맘대로 바꾸는 것 안좋아요”
어려서부터 민주시민 교육 체득해

지난해 11월과 12월, 아이들은 팀별로 토론을 거듭하며 아이디어 스케치, 공간 구상, 모형 제작 등 건축설계를 마무리했고 지난 1월 시공에 들어가 ‘어린이 공간 참여 디자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옥상 앞 계단은 맘껏 낙서할 수 있는 쉼터로, 뒤뜰은 가방을 던져놓고 놀 수 있는 놀이터로, 텃밭은 미끄럼틀과 같은 의자가 놓인 체험장으로 변신했다. 특히 지저분한 낙서로 가득했던 옥상 앞 계단 벽면을 아예 썼다 지울 수 있는 검은 낙서판으로 만들었고, 그 위 노란색 벽면엔 자석을 깔아 무엇이든 붙일 수 있게 했다. 아이들도 만족했다. “‘우리도 학교를 바꿀 수 있구나’ ‘어른들이 우리 의견을 들어주는구나’ 신기했어요. 학교는 원래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활동을 하며 ‘학교가 추억의 장소구나!’ 느꼈어요.”(김노은) “조금씩 바꿔나가니 이제는 ‘학교의 어디를 바꿀까’, ‘어떻게 바꿀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쓰는 공간을 우리와 상의 없이 (어른들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안 좋아요.”(김민성) “학교가 어떤 공간인지 전보다 잘 알게 됐어요. 낙서가 많다는 것도,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공간을 우리가 바꾼다는 사실이 뿌듯해요.”(김현수)

삼양초교 학생들이 6일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뒤뜰의 새 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삼양초교 학생들이 6일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뒤뜰의 새 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이들과 건축 협업을 진행한 홍경숙씨는 “어른들이 디자인했다면 벽면 낙서를 깨끗이 지우고 예쁜 그림을 걸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달랐다”고 말했다. 배성호 교사는 “어린이는 미래의 시민일 뿐 아니라 이미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며 “발 딛고 선 지금 여기의 삶터에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희망의 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학교 참여 디자인 경험은 책 <우리가 학교를 바꿨어요!>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석사 과정인 김호철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내 목소리로 내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기에 나중에 시민으로서 더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데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김영삼 장학사는 “학교 공간을 바꾸는 과정을 민주시민교육과 연계한 삼양초의 시범 사업이 성공함에 따라 올해는 이 프로젝트를 두 학교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사 경력 15년차인 배 교사는 ‘세상을 바꾸는 아이들’을 꾸준히 길러냈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 쉼터를 만든 서울 강북구 수송초등학교 6학년 8반 아이들이 대표적이다. 중앙박물관은 국내 최대 규모로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자주 가는 곳이지만 실내에서 식사할 곳이 없었다. 비가 오거나 황사가 많은 날에는 아이들이 박물관 구석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수송초 아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아리 ‘솔루션’을 만들었다. 박물관에 전자민원을 내고 박물관장에게 편지를 썼다. 열흘 만에 “식사 장소를 마련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답변이 왔다. 아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언론에 글을 기고하며 계속 도전했다.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서울과학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식사 장소가 있다며 중앙박물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언론 보도가 나오자 중앙박물관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임시로 체험교실 한 곳을 도시락 먹을 장소로 제공하겠다고 직접 연락해왔다. 그 후 50석 규모로 도시락을 먹을 공간도 마련했다. 중앙박물관을 바꾼 이야기는 6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도 실리고 <우리가 박물관을 바꿨어요!>(초록개구리)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수송초 아이들은 2013년, 2014년 학교안전지도를 만들면서 학교 주변도 바꾸었다. 배 교사는 지도 제작이 끝난 뒤 아이들이 위험한 곳을 바꿔 달라는 편지를 강북구청장에게 보내도록 했다. 편지를 받은 구청장이 직접 학교로 찾아와 아이들을 면담한 결과 결국 문제점이 고쳐졌다. 등굣길에 보행자용 반사경을 설치하고 어두운 조명을 밝은 것으로 교체했다. 또 중고등학생이 모이는 골목에 초등학생을 보호하자는 펼침막을 걸었다. 배 교사는 “결과를 바로 얻지 못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거듭난다”며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삭막한 학교 복도 바꾸기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애를 책으로만 배울 수 없듯이 민주주의도 삶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디지털서 꽃핀 직접민주주의…‘리가 인이

‘데니스 홍 로멜라 소장, 윤태웅 고려대 교수, 김승환 포항공대 교수, 한재권 한양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황농문 서울대 교수, 김상욱 부산대 교수….’

로봇공학, 물리학, 전자계측 등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들 전문가의 이름이 나열된 곳은 관련 학술지나 전문매체가 아니라 한 온라인 게시판이다. 디지털로 구현되는 직접민주주의 놀이터를 지향하는 ‘우주당’(우리가 주인이당)은 각 영역별로 대중들이 직접 뽑는 전문가 풀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이임할 때 차기 정권에 인사 자료로 넘기는 전문가 풀, ‘플럼북’을 시민·대중의 눈높이에서 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과학·공학 분야에 이름을 올린 이들 말고도 언론·미디어/경제/사회변화/정치 등 영역별 전문가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우주당은 이 밖에도 시민이 직접 뽑는 임시 내각 리스트도 작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천거된 국무총리 후보는 고건 전 총리, 유시민 작가, 윤여준 전 장관 등이다. 나쁜 정치 퇴출을 위해 청년이 만드는 ‘블랙 리스트’ 작성도 시작됐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기 위한 집단 정책토론도 이뤄지고 있다. 정치로부터 소외됐던 모든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가 주인이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스페인 ‘포데모스’…
디지털 토대로 기존 정당 체제 흔들어
한국선 ‘우주당’ ‘와글’ ‘무브나우’서 실험
누리꾼이 직접 내각 뽑고 정책 토론도

그러나 우주당의 실험이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주당을 기획·운영하고 있는 ‘빠띠’의 권오현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민주주의 관련 기술개발을 하려는 회사에 투자자가 나타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정치 문제에 주목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플레이어와 토양이 모두 성숙하지 않은 것 같다. 상상력도 부족하고 트래픽 유입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와글, 무브나우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실험이 계속됐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한 상황이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정치학)는 “인터넷 민주주의는 편향성 탓에 공론장 기능에 한계가 있고, 대표성을 인정받기도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외국은 사정이 다르다.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는 이미 현실이 됐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 선거연대 ‘바르셀로나 엔 코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돈을 모아 선거자금을 조달하고, 선거공약과 윤리규약도 5천명 이상 시민들의 온·오프라인 직접 참여 속에 만들어낸다. 이를 가능하게 한 도구는 ‘데모크라시오에스(OS)’라는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이들은 2015년 5월 바르셀로나 시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고 시민활동가 출신의 시장을 선출하는 데 성공했다. 정당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 민주주의에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온 셈이다. 이탈리아 ‘오성운동’, 스페인 ‘포데모스’, 유럽 전역을 휩쓴 ‘해적당’ 등 기존 정당 체제를 뒤흔든 변화의 기반에는 ‘디지털’이라는 토대가 주요한 구실을 했다.

기술 혁신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의 진전은 정당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민 행동의 토대 역시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2011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점령하라(오큐파이)’ 시위에 착안해 개발한 실시간 상호토론 프로그램 ‘루미오’가 대표적이다. 이슈에 대한 토론과 찬반 투표 등을 기본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실시간 참여·토론의 길을 열었고,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시에서는 ‘루미오’를 활용해 정책 세부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정치·사회적 의제에 대한 토론에 특화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브리게이드’도 2015년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이 비슷한 동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내 글의 신뢰도가 점수처럼 표기되는 방식이다. ‘정치적 인간’으로서 관계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근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했지만, 현실 가능성에 있어서는 회의적이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대표적이다. 고대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국민국가, 복잡한 정치적 의제, 깊어지는 경제 불평등을 생각하면 루소의 예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루소가 상상하지 못한 기술적 진보를 경험하고 있다. 민주주의 업그레이드의 열쇠도 거기 있을지 모른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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