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각각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해 자승 총무원장에게 합장으로 인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여야 대선주자들은 긴장감 속에 탄핵 이후 정국 흐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탄핵 국면에서 지지세를 키워온 야권과, 회생·반등을 노리는 범여권의 처지가 다른 만큼, 헌재 결정 이후의 주안점도 조금씩 다르다.
■ 문재인·안희정·이재명, 개혁이냐 통합이냐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탄핵안 인용’에 무게를 두고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의 고민은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이라는 두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끌어갈지의 문제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공식 일정을 삼간 채 서울 홍은동 자택에 머물며 탄핵 이후 정국을 구상했다.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문 전 대표는 탄핵이 인용될 경우 보수진영을 포용하고 분열·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문에 직면할 전망이다. ‘국가 대개조’, ‘적폐 청산’의 깃발을 들어온 그에겐 첫 시험대일 수 있다. 문 전 대표 쪽 관계자는 “원칙 없는 통합보단, 먼저 개혁 과제 등 문 전 대표가 선 자리와 원칙을 분명히 한 뒤 통합과 연대에 임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연정’을 주장하며 보수 일각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아온 안희정 충남지사는 ‘화해와 통합의 적임자’임을 부각할 계획이다. 안희정 캠프의 총괄실장인 이철희 의원은 “탄핵 이후 사회적 불안은 불가피하다. 대연정 등 통합의 정신을 강조해온 만큼 안 지사를 향한 지지세가 다시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 구속수사’를 외쳐온 이재명 성남시장도 기존의 ‘선명성’에 ‘야권 통합 적임자’ 이미지를 보탤 예정이다. 이날 탄핵 촉구 촛불집회 참석 대신 서울 조계사를 찾은 이 시장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화장’의 메시지를 받아들었다. 이재명 캠프의 제윤경 대변인은 “탄핵 이후엔 비전을 강조하고 야권 공동정부 구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고 전했다.
■ 안철수-손학규, 양자대결 준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탄핵이 인용되면, 과거청산·국민 통합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본격적인 ‘문재인 대 안철수’의 양자대결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높은 만큼 보수표는 25~30%에 머물 것으로 보고, 민주당 후보와 자신이 나머지 70% 안팎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를 기대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에스비에스>에 출연해 “탄핵이 인용되면 이제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지,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지 미래에 대한 준비를 누가 더 잘할 수 있는가로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이 바뀌게 된다”며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3월 빅뱅’을 내세웠던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쪽은 헌재 결정 이후 빅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손 의장은 전날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국민의당과 민주당에서 나올 사람들, 그리고 바른정당이 좀 더 커다란 빅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자유한국당도 앞으로 탄핵이 인용되면 커다란 변화가 있고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의장이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이에 공감하지 않는 점도 주목된다.
■ 유승민·남경필+α?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탄핵 이후를 지지율 반등의 기회로 보고 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주도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한 만큼, 탄핵이 인용되면 자유한국당의 책임론이 다시 부각되고 보수지지층이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남 두 주자는 탄핵 직후 시작될 바른정당 경선 레이스에 본격 뛰어들게 된다. 바른정당은 두 주자 외에 여러 인사들을 영입해, 지지율 반등의 마중물로 삼을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국면을 활용해 유 의원은 ‘보수대연합’, 남 지사는 ‘대연정’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유 의원 쪽 관계자는 “사드 배치 국면에서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야권과 차별화하며 보수 결집으로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남 지사 쪽 관계자는 “양극단의 패권을 제외한 중도지역의 대연정 방안을 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른정당은 경선 과정에서 김종인 전 대표, 정운찬 전 총리, 정의화 전 의장 등을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바른정당 대선기획단장인 김용태 의원은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이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김무성 의원 역시 이날 ‘비박근혜·비문재인 연대’를 위한 적극적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 홍준표, ‘당원권 회복’ 향해 한걸음 자유한국당은 이날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탄핵 선고가 어떻게 나든,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이렇다 할 대선주자도 없는 상황이어서 이중의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저희가 잘못한 게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이날 홍준표 경남지사와 만나 홍 지사의 당원권 회복을 시사한 것은 홍 지사의 대선 출마를 권유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 위원장은 실제로 홍 지사에게 “저희 당에 오셔서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홍 지사는 “때가 되면 당비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화답해,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정지된 당원권 회복에 이어 대선 행보가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철 엄지원 송경화 하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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