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동안 쉼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 박명림 교수 (연세대 ·정치학 )와 신진욱 교수 (중앙대 ·사회학 ). 시민으로서 , 또한 사회과학자로서 촛불광장의 민심을 채집하고 연구했던 이들은 추웠지만 뜨거웠던 지난 겨울을 복기하며 열띤 대화를 나눴다 . 이들은 탄핵에 대해 ‘명예혁명 ’ ‘세계사적 사건 ’이라고 높은 평가를 내렸으나 ,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제 ‘탄핵 ’이란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 탄핵열차는 종착역에 이르렀으되 , 대선열차 ·개혁열차로의 성공적인 환승을 위해선 시민들의 동력이 계속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 대담은 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됐다 .
※점심도 거르며 진행된 ‘마라톤 격정 대담 ’ 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진이 쏙 빠진 모습이었고 , 이들의 대화를 모두 노트북 컴퓨터로 받아친 오승훈 기자는 손가락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의 토론을 2차례로 나뉘어 전한다.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사옥에서 <대담/주권자에서 유권자로, 그리고 우리의 삶> 박명림 연세대 교수(오른쪽)와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Q. 촛불광장을 줄곧 취재하고 리뷰해온 두 분이 보시기에 이번 탄핵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명림 의심할 여지없이 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 사건이다. 세계사적 의미를 찾자면 트럼프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의 극우 진출에 역진하는 사건으로서, 시민적 역동성, 민주적 가능성, 평화적 체제변혁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탄핵은 일관되게 시민이 주도했다. 입법부의 탄핵 소추 압박, 검찰과 특검에 대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촉구 압박, 헌재의 파면 결정 압박에 이르기까지, 전체의 어느 한 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광장이 주도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주권 활동과 직접 민주주의를 합법적이고 합헌적으로 수용하는 ‘명예혁명’을 완수했다.
또 탄핵은 파탄난 법치·헌정주의를 회복시켰다. 해일이 덮치듯 공공성을 붕괴시킨 것을 바로잡는 계기였다. ‘개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개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통해 박정희 패러다임 향수를 느껴왔던 보수적 유권자나 국민들을, 공적 시민으로서 눈뜨게 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종식시키는 국민적·법률적·역사적 탄핵이자 위대한 시민혁명이다.
신진욱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국내에서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다. 국내적 측면에선 성공한 시민명예혁명의 성격 가진다.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정부 수립 이후 70년 짧은 역사 속에서 우리는 1960년 4·19혁명, 1987년 6월항쟁, 2017년 탄핵 등 30년 주기로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을 시민들의 항쟁을 통해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이런 역사적 전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탄핵은 중요하다. 특히 이번 경우엔 박정희 시대의 질긴 유산을 압도적인 국민적 합의와 헌법기관의 만장일치로 심판했다. 이 역사적 경험이 앞으로의 한국 정치를 강하게 규정할 것으로 본다. 또한 한국 민주주의는 이번에 질적으로 성장했다. 1960년 4·19,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1차적 관심사는 국민의 손으로 통치자를 선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의미에서 선거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였다. 이번 경우에는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법과 국민 위에 군림한다면 그를 선출한 국민이 헌법기관의 힘을 빌어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책임성의 정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고 본다.
세계사적으로는 선출된 권력·공적 권력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잘못을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대항권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는 정치학에서 중요한 책임성의 문제다.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분립에 의해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서 견제되고 책임을 묻는, ‘수평적 책임성’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작동되지 않을 경우엔 대안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오늘 날 ‘트럼프의 미국’에서 트럼프 반대세력 유권자들이 가지는 절망이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평화적이고 자율적인 항쟁과 헌법기관에 의한 합법적인 심판의 과정들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독일의 <자이퉁>, 미국의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유수의 해외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모범 사례로 다룬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미국의 트럼프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프랑스의 마린 르펜, 스웨덴 민주당, 독일의 페기다(이슬람 반대운동) 등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와 보편적 가치가 퇴행하고 있는 전지구적 추이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Q.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전엔 어떤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라는 주문에 이르기까지 헌재 선고를 지켜본 시민들은 심장이 ‘쫄깃쫄깃’했다고 한다.
박명림 현법재판관 성향상 평의에선 6대 2 정도 예상했으나, 평결에서는 헌법기관의 성격상 만장일치가 되리라 예상했다. 법적 결정, 행정적 결정, 사법적 결정은 성격이 다르다. 입법적 결정은 민주주의 원리가 많이 반영되고, 행정적 결정은 효율성의 원리가 많이 반영된다. 사법적 결정은 최종 결정으로서 최종성과 궁극성을 가진다. 이런 사법적 결정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분리되면 상당한 혼돈이 올 수 있다. 헌법재판관의 성향이 평의 과정에서는 나타나도 평결에서는 국민통합과 사법결정의 최종성을 위해 만장일치로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안의 성격 때문에 초조감과 기대가 교차했다. 탄핵 사유의 본질은 앞의 사안들(문체부 인사, 세계일보에 대한 외압, 세월호 참사 때 대응) 보다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있다고 봤다. 검찰과 특검의 조서도 일관되게 박근혜·최순실은 공모관계라고 봤기 때문에 중심 의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신진욱 결정 발표 순간은, 첫 애가 세상에 나올 때만큼 긴장됐다.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많은 시민들이 ‘그러나’는 말이 이렇게까지 많아 무서운지 몰랐다고 이야기하던데, 나는 ‘접속자가 많아 연결이 원활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너무 힘들었다. 카페에서 휴대폰으로 보는데 계속 끊기니까 진짜 힘들었다. 물론 많은 헌법학자들의 견해는 8대 0으로 탄핵안 인용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역사에서는 모든 전문가들을 비롯해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사건이 어이없게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발생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전개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측하고 관망하는 태도로 탄핵이 될 거라고 그냥 기다리는 접근을 하기보다는, 하루하루 탄핵심판 과정에 흠집을 내고 탄핵안 인용 이후에도 그 흠집을 근거로 탄핵의 정당성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허용하지 않는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를 탄핵 결정일까지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명림 민주주의 원리에 ‘사법주의는 민주주의를 넘지 못 한다’는 것이 있다. 선출된 입법자들의 공간만큼 사법적 결정은 확보된다는 의미다. 구조적 안정성, 낙관과 사법적 불안 같은 게 공존했다. 탄핵 절차가 시작되고서는 국민 여론이 일관되게 80% 탄핵 찬성이었다. 의회에서도 상당히 논쟁이 있었다든가 또는 아주 작은 표차로 통과된 게 아니라 80퍼센트에 육박하는 234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대통령이 임명한 가장 보수적인 기구인 검찰의 특별수사본부와 특검에서 명백하게 대통령의 범죄를 인지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국민의 의견, 국민들의 대표인 의회의 의견, 준사법기구인 검찰의 의견이 일관되게 만장일치로 탄핵의 합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안심을 하긴 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Q.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성실히 다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것이 탄핵 사유는 안 된다고 했던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신진욱 탄핵 소추안의 핵심 사유들로 법치주의 훼손, 권한 남용, 세월호 참사 때 국민의 생명권 보호 등이 있었다. 정치를 연구하는 관점에서 볼 때 세월호 부분에 대해서 사법적인 책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탄핵 사유로 채택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특검은 헌재 심리와 별개의 과정이긴 하지만 탄핵을 위해 세월호 부분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건 초점을 흐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헌재 결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결정한 게 아니라 탄핵의 이유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한 거다. 탄핵심리 과정에서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이뤄질 사법부의 판단 대상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는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사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죄가 있는 사람들 이외에도 우리들 자신 모두가 ‘죄 있는 자들의 죄의 행사를 허용한 집단적 책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에서 죄 있는 자가 아닐지라도 그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책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상징적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헌재 결정 이후에도 계속 곱씹어야만 그에 준하는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공무원법에는 직장이탈금지가 있다. 대통령 결근에 깜짝 놀라”
박명림 나는 세월호 사건은 명백한 탄핵사유라고 생각했다. 박근혜는 국정원 선거개입,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런 논란에 대한 교정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잃고 탄핵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전환점이 세월호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족들의 절규를 듣고 국민들의 비판을 조금만 경청했다면 이러한 파탄으로 오지 않았을 거다. 제가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에 다녀오고 주요 기관들을 취재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대통령이 사무실 출근을 안 한다는 거였다. 이번 탄핵소추안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 국가공무원법 58조엔 직장이탈금지 조항이 있다.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허가 또는 정당한 사유 없으면 직장 이탈하지 못한다. 직장이라는 개념은 엄정하고 무거운 법률적인 개념이다. 그냥 일터라는 뜻이 아니라 거기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공적인 직임을 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관공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탄핵과정에서 조차도 어떤 사유로 그날 왜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는지 증명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직장을 이탈한 것은 명백한 탄핵 사유다. 직장 이탈은 공무원의 가장 기초적인 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고, 그로 인해 적절하고 신속한 책임과 직무를 성실히 다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긴박한 순간에 대통령 최측근들은 대통령 위치를 몰라서 보고도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탄핵 사유는 그 이후의 과정에서도 벌어졌다. 우리 헌법은 명백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직임을 대통령이 침범할 수 없다.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었을 때, 대통령이 시행령을 통해서 그 취지를 뒤집으려고 했다. 조사 대상인 정부 기구가 공무원들을 조사 주체로 나서게 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 전 대통령은 국회직인 원내대표를 합법적이지 않은 절차로 축출했다. 이는 삼권분립 위배이며 대통령과 행정수반의 범위를 넘는 행위다. 헌법 40조(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를 정면으로 위반했다. 시행령을 통해 모법을 개정하려한 것이다. 세 번째는 헌법 75조 위반이다.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 받은 사안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헌법 용어로 전자를 위임명령이라 하고 후자는 집행명령이라 한다. 법률의 위임이 없거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면 위임명령과 집행명령 모두 법률을 넘어 위반할 수 없다. 세월호 시행령은 법을 위반해서 만들어졌다. 이는 법치를 초월한 포고령(rule of decree)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항상 해왔던 것이다. 긴급조치를 포함해서. 적폐 중의 적폐가 이러한 한국의 시행령 사회다. 세월호 사태는 시행령 국가에서 법치국가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국회의 저항이 강력한데도 대통령은 시행령 통치로 갔다. 시행령 통치는 ‘Rule of Men), 인치(人治·rule of man)다. 가장 심각한 적폐다. 근대입헌주의와 근대헌정주의를 넘는. 이런 명백한 탄핵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즉 나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 이미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글까지 써놓고는 공론화하지 못했다. 비겁한 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선고 당일 태극기집회 세력이 내건 팻말.
Q.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한 12월 9일부터 탄핵반대 집회가 계속 커졌다. 보수 언론들은 ‘나라가 두동강 났다’고 했다.
박명림 저는 정치학적으론 그 ‘두동강 담론’을 한 번도 수용한 적 없다. 그래서 일관되게 기고해 왔다. 일관되게 80%의 여론이 탄핵 찬성과 지지가 있었다. 마치 탄핵 찬성 진영과 탄핵 반대 진영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난 것처럼 표현한 언론은 잘못된 현상만 본 거다. 탄핵 반대 그룹의 언어적, 이념적 과대 대표와 비대칭성이 있었다. 점점 과격화되고 극우화되고 폭력화되니까 사회적 영향력이나 담론 파급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한쪽은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공공성을 지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반대쪽은 그와 아무 관련 없는 종북 빨갱이, 계엄령 선포, 내란선동 이런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이념적 주장을 했다. 담론을 분석할 때 이런 비대칭적 구도나 불균등 구도를 알았다면 언론이 조금 더 균형있게 보도했어야 했다. 이것은 탄핵 찬성 반대의 균등한 균열이나 대등 균열이 아니라 한 쪽은 입헌주의와 탄핵을 통한 헌법 복원, 민주주의 복원, 민주공화국 복원을 외치는데, 다른 한 쪽은 박정희 때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좌경용공이라 했듯이 오늘날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니 종북 빨갱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도 헌법파괴적이다. 그는 12월9일 탄핵소추안 가결부터 3월10일 파면까지 헌법과 사법절차 안에서 자신의 합헌성, 파면 제척 사유를 주장했어야 한다. 그래도 그것이 위헌적인 국정농단한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대통령 직임을 수행하는 합헌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 대통령 대리인단은 사실이나 법리, 논리를 다투지 않고 법외 수단·방법·절차로 이를 회피·조롱·농락·협박·위협을 가했다. 탄핵소추에 이르는 국정농단과 헌법파괴도 심각하지만, 이 3개월 동안의 대통령, 대통령 대리인단, 대통령 지지세력의 헌법파괴와 헌법부정, 법치와 민주주에 대한 부정은 또다른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엘리트와 연계돼 있는 극우단체가 요주의 대상”
신진욱 나는 10여년 전부터 한국의 극우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은 유럽의 극우 연구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극우 그 자체의 다이내믹과 거시정치적 임팩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느냐를 분명히 하는 것과 더불어 이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고 냉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탄핵 반대 세력들은 동질적이지 않다. 동심원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심부엔 이념적으로 극단주의가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 명백히 반대하고 훼손하는 이들이고, 여기에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핵심세력이다. 이들은 극단적인 행동 단체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정치·종교·언론·교육기관의 핵심부에 있는 엘리트층이 배후에 있기도 하다. 그 바깥의 좀 더 엷은 원 안에는 명백히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고하고 과격한 보수적 성향을 띠는 세력들이다. 가령 보수 개신교 세력의 광범위한 신자층 등이다. 맨 바깥의 가장 엷은 원 안에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보수이념이나 뿌리 깊은 증오의 신념체계까지는 갖고 있지 않은데, 다만 이번 탄핵에 동의하지 않거나 무엇인가에 분노해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격분해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선 이 상이한 층위들을 잘 분별해서 차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무엇보다 법적인 수단들을 통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징벌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 안정성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대해서도 통합과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포기, 법치주의 포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깥 원 안에 있는 광범위한 세력들을 모두 독재 세력, 극우 세력으로 밀어붙이면,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더 견고하고 극단적인 세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유사 집단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집단행동의 일반적인 웨이브로 봤을 때, 탄핵 반대 집회는 탄핵 결정 직전에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이슈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와 같은 대규모 동원은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웨이브는 가라앉았다. 다만 코어에 있는 극단주의 세력들, 우리 사회 엘리트 층과 그들의 사주를 받고 그들과 연계되어 있는 극우단체들은 우리가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하는 요주의 대상들이다. 한국 정치체제의 심각한 불안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거리의 전사들’을 양산하는 진정한 힘이 우리 사회 제도적 중심부에 있는 일부 세력에게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두동강론’이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객관적으로는 절대 5대 5가 아니라 8대 2이고, 심지어 어제(11일) 보도된 여론조사로는 탄핵 결정에 승복한다는 여론이 92퍼센트로 9 대 1의 지형이다. 연령별로 보면, 20~40대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0%였다. 여론조사상 유례가 없는 경우다. 절대 5대 5로 나라가 두동강 난 게 아니다. 하지만 8대 2도, 9대 1도 세 동강, 네 동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두 동강은 두 동강이다. 두 동강 중 소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오늘 날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5대 5는 아니더라도 ‘두 동강 담론’이 여론과 정치에 미치는 분명한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확실한 적폐 청산과 확고한 개혁 노선에 부담을 주는 담론으로서 파워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80%를 대변하는 구체제의 단호한 징벌과 개혁이냐 아니면 20%까지 품어 안는 보다 온건하고 미온적인 노선을 택할 것이냐. 이 둘 중에서 뭘 선택할 것이냐. 수세에 몰린 보수 진형은 이 화두를 개혁파에게 던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통합의 대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사실 여론 지형 속에선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거다. 80%, 90% 이상이 통합·화해·타협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탄핵 직전까지 80%가 탄핵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는데, 탄핵 이후에 사법처리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80%였다.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 대부분이 사법처리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담론이 민주당을 비롯하여 개혁에 중점을 두는 세력들에게 부담을 주는 이유는 이 20% 반대 세력을 어떻게 할 거냐는 중요한 질문을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파 쪽에서 중심을 분명히 개혁에 두되 20% 또는 10%가 마음에 깊은 앙금이 남지 않게 하는 통합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국회 탄핵소추 이후 촛불민심을 반영한 2월 국회가 개혁입법의 골든타임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일부 있었다.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한계인가? 자유한국당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 때문인가? 야당의 의지 부족인가?
박명림 못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을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포함한 우리 국회 구조의 특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보수성.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들의 방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은 아닌 거 같다. 워낙 탄핵 사안이 엄중하기 때문에 개혁 정당들은 탄핵에 집중했고, 보수 정당들은 탄핵 기각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보수정당들은 이번 탄핵 문제를 사활로 생각하고 있었다. 국민 여론이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을 탄핵 기각에 걸었기 때문에 정말로 박근혜 정부가 완전 퇴진하기 전에는 이러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제 탄핵이 됐기 때문에 아마 부분별 개혁 사안에 대한 저항은 예전에 비하면 강력할 것 같지 않다. 시민의 평화 혁명은 구체적 계기마다 광장의 의도가 압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앞으로 의회가 부분별로 저항하고 되돌리려고 했다가는 앞으로 더 큰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과 광장에 나가보면, 대중들도 이 좋은 국면, 2월국회에서 개혁입법 하나 통과 못 시키냐고 비판하면서도, 면죄부까진 아니지만 너그러운 측면이 있었다. 워낙 압도적으로 탄핵 의제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혁입법은 탄핵 이후의 공간에서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해서 조금 더 기다려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신진욱 2월 개혁입법 실패는 실망스럽다. 자유한국당은 원래 그런 곳이다. 마치 국회선진화법이 발목을 잡아서 법 통과 못 시켰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합의정치는 본래 양면성이 있다. 합의정치는 다수를 점한 자가 전횡을 휘두르지 못하게 견제하는 장치다. 그것은 어느 하나의 정치적 관점에서 봤을 때 경쟁 세력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견제장치도 될 수 있지만, 반대쪽이 조금 더 다수를 점하고 있을 때 원하는 개혁을 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양면성을 함께 갖고 있으므로 어느 쪽에 우리가 더 중점을 둘 것이냐 문제다. 국회선진화법이 문제가 됐다 아니다라는 식은 너무 단순화된 접근이다. 야당의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도 너무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비판이라 생각한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인식도 11월부터 2월까지는 탄핵정국이라는 점이다. 12월까지 압도적 관심사는 탄핵과 대선이었다. 한편으로는 좁은 정략적 이해관계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더 넓은 정치적 관심사도 거기에 집중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거기에 더 기대를 한다면 그에 더해 개혁입법까지 그 흐름을 타고 통과시켰다면 이상적이었을 테지만, 한국 제도 정치가 가진 정치적 역량으로 봤을 때 힘든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거기까지 가능케 하려면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여론의 압박이 필요했다. 이 부분은 시민사회의 부분이다.
국민들 역시도 가장 관심사는 개혁 보다 개혁의 전제 조건으로서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 돼 있었다. 이번 대선 국면과 차기정권의 국정과제를 논하는 데도 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촛불 집회와 2016년 촛불 집회를 비교해보면, 거울상의 차이를 보인다. 2008년 촛불 집회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성취한 정치적 성과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패배주의와 절망을 낳았던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촛불 집회에서는 단지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권이라는 것은 최초의 촉발제에 더해 한국사회의 모든 굵직한 구조적 문제와 많은 국민들의 고통과 열망들이 모두 뿜어져 나왔던 집회였다. 그렇게 포괄적으로 퍼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긴 여파가 이후에 2010년 지방선거, 이후의 복지국가 운동, 2011~2012년 대선국면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핵심 담론이 되게끔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2016년 촛불 집회에선 모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모두 괄호안에 담겼다. 사람들은 오직 탄핵에 집중했다. 탄핵이라는 최소한의 우리 사회의 상식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이후에야 우리는 그 이후의 개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지금 그 과제를 우리는 달성했다. 달성한 이후에 무엇이 도래하느냐? 이제 우리는 늘 부닥쳐왔던 경제적, 외교적, 물질적 문제들을 직면하게 될 거다. 개혁입법을 제도 정치에 강제할 수 있는 여론의 압박이 이 시기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2월 국회의 한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선국면과 차기정권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이냐까지에 미친다. 2016년 촛불 집회의 영광스런 빛의 이면에 가리워진 깊은 어둠의 측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탄핵을 바랐지만, 탄핵 이후 미래에 대해선 낙관과 비관, 우려가 교차한다.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사옥에서 <대담/주권자에서 유권자로, 그리고 우리의 삶>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명림 광장에 나가면서 굉장히 많은 인터뷰를 했던 이유가 있다. 제 자신이 정치학도로서 너무나 놀랐기 때문이다. <한겨레> 9월20일치 최순실 관련 첫 보도, 10월24일 최순실의 테블릿 피시 보도, 10월29일 1차 광장 촛불 집회, 그리고 100만명까지 집회에 나오는 폭발적인 참여를 보고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 박근혜 탄핵 사안을 계기로 인간문제와 사회문제 모두가 망라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구조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드니까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들의 일상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가 박근혜 국정농단의 계기로 집중됐다. 청년들은 청년들의 문제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문제로, 농민들은 백남기 농민 문제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문제로, 여성들은 여성들의 문제로, 학생들은 학생들의 문제로, 실업자는 실업자들의 문제로,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들의 문제로, 블랙리스트 때문에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의 문제로, 지식인은 지식인들의 문제로 자기들의 문제를 모두 광장으로 가져왔다. 자신들의 문제를 다 갖고 나와서 광장은 의제의 용광로가 됐고, 그게 탄핵을 촉발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고 본다. 먼저 낙관적인 것은 이 일로 인해 구조적, 역사적, 교육적 측면에서, 다시는 이런 대통령이 나오면 안 된다는 너무나 엄중한 교훈을 새겼다는 점. 또한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1년 더 지나갔거나, 혹은 국정농단이 폭로되지 않아서 다음 정권을 놓고 진보·보수, 내지는 개혁파·보수파가 비슷한 기량을 지니고 경쟁했을 경우엔 이들의 불법성, 부도덕성, 몰염치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지금 고통은 일면 ‘축복’의 의미가 있다. 축제로서의 고통, 고통으로서의 축제란 말이 있듯이. 박근혜 탄핵이 축제로서의 고통이었던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청산하고 씻어내야 했던 것을 단행하는 일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또 촛불집회에 매주 나가는 것은 고통이지만 미래를 향한 축제이기도 했다. 또 하나 긍정적으로 볼 것은 시민의 정치적 효능감에 대한 경험이다. 우리가 참여하니까 된다는 시민의 자부와 열정이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본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사법적 징치가 지니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면 시민적 단계, 입법적 단계를 넘어, 사법적 최종 단계에 이르면 강력한 저항이 따라온다. 법률적 저항뿐만 아니라 도덕적 수치심을 참지 못한 저항까지 뒤따른다. 여기서 박근혜와 대한민국을 등치시키는 이들은 박근혜 지지를 통해 마치 애국심,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이 저항은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세력과 한국의 보수 정당은, 외환위기의 경우엔 정부 출범 방해, 노무현 정부 출현 때엔 아주 사소한 사유를 트집잡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단기적으로 개혁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이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그러므로 개혁 드라이브를 정교하게 걸지 않는다면 인수위도 없는 상황에서 차기 정부는 큰 위험을 안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우려되는 부분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부정적, 절망적 유산이 너무나 넓고 깊다는 것. 국가기강과 국가기율이 완전히 파탄난 것을 느낀 것은 팽목항에서였다.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공무원들은 계속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대기중입니다,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뿐이었다. 현장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가 정지돼 있으니까. 기관이 작동하지 않으면 촉수는 정지한다는 이론이 있다. 청와대와 국가 중심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 많은 매뉴얼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남겨놓은 유산은 또한 남북관계와 한중, 한미, 한일 외교관계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국가를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사드, 개성공단, 위안부 문제 등등. 기존 합의를 준수하는 것도, 뒤집는 것도 큰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이런 외교는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외통수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은 바보 중의 바보짓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식민지 직전, 분단 직전 상황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만들지 못한 국가 누란의 사태로, 외교의 총체적 파탄이다.
내치 또한 그렇다. 헌법적인 국정농단은 징치를 통해 회복하면 되지만, 문제는 국가의 근본적인 발전 동력을 파탄시켰다는 것이다. 국가 공공부문의 사사(私私)화, 민간부문의 관공화. 이 쌍방 식민화가 너무나 심각해졌다. 정부는 민간기업처럼 움직이며 효율성만 추구하다 효율성 제로의 정부를 만들었다. 민간은 민간대로 창발성, 자율성, 혁신성을 모두 박탈당했다.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노무현 정부가 4% 평균성장을 기록했고, 이명박 정부가 3.9% 평균성장을 기록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2%대의 성장률로 떨어졌다. 더 참혹한 것은 2020년대 들어서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완전히 갉아먹었고, 이는 지난 9년 동안의 하향국면을 국민의 열정과 집합의지를 모아 어떻게 상승국면으로 전환시킬 것이냐는, 대한민국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다음 정부에게 남겼다.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가 민주 보수로 전환하지 못한 것이 한국사의 큰 불행이라고 본다. 녹색성장, 747, 4대강, 자원외교 등 이런 것들은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게 박정희 시대의 ‘건설보수’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근대화 시기엔 맞았지만 민주화 시기엔 맞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여기서 ‘반공보수’로 돌아갔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공개, 사드 배치, 통합진보당 해산, 개성공단 폐쇄 등 반공보수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생태계, 즉 국가 전체의 생명 생태계와 발전 생태계가 여러 군데서 단절되었다. 따라서 그 단절 부위를 접합·보수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사옥에서 <대담/주권자에서 유권자로, 그리고 우리의 삶> 박명림 연세대 교수(넥타이 안맨이)와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진욱 먼저 낙관할 수 있는 미래라고 생각하는 건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정치적 차원에서의 적폐청산, 이 부분이 개혁의 미래라는 점이다. 촛불집회와 여론의 안정성. 이는 차기 정권이 권력남용과 법치유린 등 적폐를 청산하는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여론의 지속적 지지가 있을 것을 보여준다. 탄핵정국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압도적이고 높은 정치의식, 헌법기관이 작동하는 법을 아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보여줬다. 또한 주권자로서 높은 자의식을 보여줬고, 승리의 경험을 통한 강한 정치적 효능감과 그 결과로 강한 정치적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는 말하자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장기지속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정치적 기초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이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개혁의 강도와 완급의 조절이 중요하겠지만, 여론의 지속적인 지지 속에서 개혁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와 국가 기관 곳곳에 박정희 세력과 제도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차원에선 박정희 시대가 매우 비참하게 종말을 고했다는 생각을 한다. 박정희 독재시대부터 강조한 선진적 민주의식, 질서, 평화를 보여준 것은 촛불시민이었다. 그리고 탄핵에 반대하는 박정희 세력은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는 반체제 세력이 되었다. “모든 언론은 거짓을 말하고, 정부 기관은 믿을 수 없으며, 헌법 기관의 결정에도 승복할 수 없다”는 반체제 세력이 된 것이다. 법과 질서에 반하는 세력이 박정희 세력이 되었고 극렬하고 폭력적인 집단이 박정희 세력이 된 것이다. 기호관계가 현실에서 완전히 전복된 모습이 보인 것이다. 이들이 제도정치 내에서, 그리고 선거정치, 여론정치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소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속에 뿌리 깊게 있었던 지배 담론, 지배적인 의식을 지금 개혁세력이 확고히 점하게 되었단 점이다. 이는 낙관의 근거이다.
그런데 이 이면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 이는 정치개혁의 숙제인데 노무현 정권 초중반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핵심 포인트다. 정치 개혁에 몰두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다. 노무현 정권은 초중반에 정치개혁에 몰두했는데 이로 인해 정치개혁을 염원하는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 국민들은 피로감과 소외감, 절망이 깊어졌다. 그리하여 열광적 지지 속에 출발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급감하고 2004년엔 과반을 획득했던 열린우리당이 불과 2년 만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2007년과 2008년 총선에서도 패배했다.
“노무현 정권의 교훈…정치개혁에 몰두하면 문제 생긴다”
이번 대선의 경우엔 차기 정권 앞에 놓여있는 구조적 문제와 국제관계를 포괄하는 난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가지 오래 된 난제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국민들의 경제적 불안과 불평등 문제다. 차기 정권의 국정과제 1순위가 바로 불안하다.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어떤 정부도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과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동북아와 환태평양 지역질서의 긴장 안에서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거대한 난제들이 차기 정권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한 측면에서는 박 선생님이 말했듯, 이명박 박근혜 10년을 겪으며 너무 많은 문제들이 누적된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 측면에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경우 이들과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이 난제들에 대해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그리고 임기를 마친 뒤에 남겨진 숙제였다. 차기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풀기 힘들었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더욱 심화시킨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한다. 여기에 국제 환경까지 나쁘다. 따라서 차기 정권이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 문제해결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 면에서 차기 정권은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게 되는 핵심적인 문제의 난해함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웅적인 근본적 개혁의 언사를 구사하거나, 성급하게 대단한 비전을 제시해서 이후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작은 걸음으로 실질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이는 정부 혼자서 할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각자의 장소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위한 활기와 생기를 정치적으로 조직해내는 것이 차기 정권의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Q.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참여의식을 고양시키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반면 최근 석달 동안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고 국회의원도 가세하는 등 지금껏 없던 ‘극우의 정치세력화’의 단초가 됐다는 해석도 있다.
박명림 한국현대사, 특히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역사는 탄핵 심판 이전과 이후로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대정신이 밑으로부터 솟아나고 빚어졌다. 그래서 시민 공공철학이 형성된 것이다. 시민 없이 개인 없다, 공공 없이 사사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확인하면서 정치적 재탄생, 자발적 재탄생, 자기 확인의 계기가 된 것이다. 시민과 개인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호 주체성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광장의 그런 정치적 철학적 효능감과 정체성을 넘어서는 그 다음 단계인 것 같다. 광장의 시민과 일상의 개인을 어떻게 결합하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국민 전체의 차원에서도 이것이 과제이다. 신 교수도 말했는데, 공적 시민은 광장이나 탄핵에서 확인했듯 자유롭고 평등하고 자율적이고 자아실현이 가능한데, 광장이나 공적 영역을 넘어선 사적 개인은 일터나 직장, 학교나 일상에서 너무나 심한 억압과 차별, 억눌림, 불안,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공적 시민과 사적 개인의 불일치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소시킬 거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와 공공 영역에서 이 개인의 일상과 일터에서의 억눌림을 어떻게 자유와 행복으로 바꾸느냐가 과제다.
극우의 정치세력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이번에 ‘남남갈등’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남남갈등을 민간-민간 갈등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한국사회에 민간 보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드러난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과 전경련을 통해 우파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남남갈등의 실체는 민간-민간, 진보-보수나 보수-개혁 간의 갈등이 아니라 사실상은 당국-민간, 어용-자율적 시민 사회의 갈등이었다. 앞으로 이 문제는 국정원과 전경련의 개입이 줄어들면 남남갈등이 완화될 것이라고 보지만, 문제는 보수정당이나 보수정치세력이 보편적인 의제 설정 능력을 상실할 때 민간보수가 극우화되고 폭력화되고 조직화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가장 위험한 현상 중 하나로 꼭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는 게 있다. 국가 기관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충성과 반발 문제로 치환되는 것이다. (탄핵 반대 세력은) 박근혜에 대한 충성과 함께 특검 누구, 헌재 재판관 누구, 언론인 누구, 전문가 누구 등으로 개인을 표적삼아 협박했다. 이런 개인에 대한 협박 행위는 국가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일 뿐만 아니라 인권침해다. 이 두 가지를 이번에 극우세력이 한 것이다. 이런 전방위적 협박의 문제는 초기에 근절하지 않으면 한국 민주주의, 우리 사회의 인권보호, 치안에 상당한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이번에 그런 협박을 가한 세력에 대해선 초기에 엄단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 세력이 정치적으로 생존할수록 점점 더 극우화되고 폭력화되고 그렇게 되면 더 위험하다. 합법적 범위 내에서 세력 간에 정치적 주장을 해야지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해선 안 된다.
신진욱 정권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절대 사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엄중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극우는 다수파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고, 대규모로 동원할 가능성도 적다. 이들의 창당 시도 또한 정치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즉 다수 여론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차기정권은 이를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극우는 다수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다. 테러라는 것은 아주 작은 비용으로 하나의 위협적인 사건, 행동만 일으키더라도 모든 불특정 다수가 ‘나도 거기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된다. 행동의 자유, 발언의 자유가 그 하나의 테러 사건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세월호 노란 리본 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누군가 갑자기 뒤통수를 칠까봐 두려워한다. 그런 사건이 단 한 번만 발생해도 그 사건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극우 행동주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수가 아님에도 다수의 자유를 구속하고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 정치의 심각한 불안정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 극우의 동심원 구조에서 ‘코어’를 건드리는 것이 핵심적이다. 거기에 동조하는 다수를 공격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반대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 코어라는 것이 극우주의 엘리트층과 극우 행동주의자들, 극우 단체들이 있다. 그들을 잇는 고리를 끊는 것이 핵심이다. 극우행동이 있고 극우담론이 돌아다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동과 담론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사람, 조직, 재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실체를 드러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금 말한 대로 극우 정당의 창당은 전략적 딜레마에 처할 것이다. 제도 정치 내에서 그들을 의미 없는 존재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 정치권 내로 들어갈 것이냐, 거리로 갈 것이냐, 이 노선을 둘러싼 논쟁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아마 후자 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거리의 정치, 극우 행동주의로 나아가게 될 테고, 그들을 후원하는 핵심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 불법성과 도덕적 패악성, 이런 것들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핵심층이 그들을 키우고 이용해서 한국 민주주의, 법과 질서, 평화 이 모든 것들을 붕괴시키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명림
“개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의 분리 성공…
직접민주주의를 합법적으로 수행한 명예혁명”
신진욱
“첫 애 낳는 심정으로 맘 졸이며 봤던 헌재 탄핵 선고…
선출된 권력이라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책임정치 구현“
Q. 촛불민심을 정치권은 어떻게 제도적으로 받아안을 수 있을까?
신진욱 독일에서 유럽 학자들과 논의할 때 박근혜의 적폐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하는 식으로 묻지 않더라. 왜냐면 유럽에서도 이런 심각한 문제가 많으니까(유럽 정치를 우리가 이상화시켜선 절대 안 된다). 그 사람들이 관심있었던 것은, 그것을 어떻게 수백만의 시민들이 모여서 한명도 경찰에 연행되지 않고, 말하자면 경찰·보수언론에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압력을 끌고 가는 데 성공했냐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에선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 2004년 노무현 탄핵 사건, 2008년 쇠고기 집회 등 21세기에 무려 4차례의 대규모 촛불집회라는 자생적이고 탈중심적인 대중행동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 2014년 세월호 추모 집회 등 크고작은 촛불집회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제가 알기론 이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사례다. ‘아랍의 봄’이 있었고, 그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 또 그 영향을 받은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 이후에 홍콩의 우산혁명, 대만의 해바라기운동 등 굵직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불과 10여년 안에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친 반복적으로 일어나서 제도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이 왜 그러냐? 왜 한국에서 계속 그런 식으로 일어났냐? 이는 시민적인 긍정적인 압력(positive push) 요소가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반대의 부정적(negative) 요소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일상의 삶과 노동의 공간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수단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 누적을 막고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억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누적된 이 에너지가, 뭔가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순간,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제도 정치권은 그때마다 계속 촛불집회에 어부지리로 얹혀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들이 궁지에 몰리면 또 촛불집회를 바라게 될 것이다. 그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 제도권 정치는 그럴 때마다 촛불집회를 찬양하고 립서비스를 통해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얻는 ‘교활한 여우’ 행태를 보여 왔다. 실질적으로 이것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이 사람들의 직장에서, 공장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관청에서, 그런 일상의 공간들에서 ‘을’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하더라도 직장에서 잘리거나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적·제도적 무기, 제도적 권한(empowerment)을 마련하는 게 촛불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개인들이 연대해서 갑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너무나 공허하다. 갑과 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본다면, 개인들이 연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너무 어렵고, 연대하더라도 갑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개인의 을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제3의 힘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정치고 법이고 국가라는 것이다. 그 측면에서 앞으로 정치권이 일상적이고 항상적인 그런 참여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아마도 ‘촛불이 왜 있었느냐’에 대한 제도정치의 대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 집회가 4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제도정치권의 ‘교활한 여우’ 행태 그만…대안 마련이 답”
박명림 촛불시민의 참여를 정치권이 어떻게 수렴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너무나 엄중한 것이다. 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적, 보편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가 여러 가지 공언한 것이 첫째로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참여의 폭발이다. 노태우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이렇게 반복되는 사례는 없다. 이는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작동 지체, 혹은 오작동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계속 반복될 수가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종교 갈등이 있는 터키를 제외하고 (오이시디 국가 중) 사회갈등지표에서 최상위 순위를 놓친 적이 없다. 참여와 함께 갈등 또한 높다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노동은 노동대로, 투표는 투표대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여의 폭발과 높은 수준의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가 작동이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 것이냐의 문제로 남는다. 가장 이상적으로 시민의지를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시민의사와 의석비율과, 정부구성, 즉 권력배분, 시민대표, 정부 이 세 층위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선거에서 비례성의 원칙을 높게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시민의지와 의석 비율과 권력 배분의 차이가 너무 크다. 전체 국민 중 30%를 득표한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니까 70%는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석 비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산 표’와 ‘죽은 표’가 유사한 국가는 우리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투표의 순간에서부터 의사 반영이 안 된다. 그런데 집권과 동시에 보수세력은 100% 권력을 행사하니까 이 갈등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다. 한편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았기에 직접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압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노태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일관된 상황이다.
그래서 첫째 중요한 것은 선거법부터 개정해서 시민과 대표와 정부의 의견이 일치하거나 비례하거나 근사하게라도 만들면 갈등은 확 떨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저는 국민발안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국회 개혁은 스스로 안 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에서 국민들 중 일정한 숫자 이상이 발안하면 국민 투표를 거쳐 통과시키거나, 국민소환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물론 국민소환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있으니까 상당히 정교하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이런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협치를 이야기하면서 정당 간 협치만 말하고 있는데 사실 시민과 의회의 협치,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직접행동, 직접참여, 직접주권 발동상태를 통해서만 입법과 행정이 작동하는 이 교착상태를 돌파할 수 있다. 시민과 의회와 정부의 의사가 일치할 수 있는 헌법 개혁, 직접민주주의 강화, 시민과 의회의 협치, 이 세 가지 면에서 시민 의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수용하고 반영할 거냐 하는 데 좀 더 본질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신진욱 박 교수님이 직접행동에 의한 정치 참여를 강조하신 걸로 이해한다. 그런데, 현대 정치에서 참여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적으로 투표다. 거기에 1970년대 이후 추가된 것이 일상 공간에서의 운동이나 시민활동을 통한 참여다. 이런 것들로 확대가 된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놓고 보면 한국에서 직접 행동에 의한 참여의지가 그토록 지속적이고 강한 이유는 제도화된 참여가 너무나 저발전되어 있고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보완재의 성격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거리에선) 축제 분위기도 있으니 기꺼이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언제까지 이 짓을 해줘야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직접행동에 의한 참여는 원래 있어야 할 게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금 비어 있는 제도 정치의 정상화와 일상 권력의 강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중요한 자산인 하나의 기둥과 함께 삼각형을 완성시키는, 그 방향으로 가면 테이블이 안정되게 그 위에 서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게 될 경우에 그에 따르는 위험성 내지는 리스크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은 긴 수고의 과정을 단순화시킨다. 많은 복잡한 정책적 과제들,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고려 사항들을 단순화시키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는 때로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장점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예컨대 국민투표와 같이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적인 동원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유럽 연합에 반대하는, 국경의 장벽을 철폐하는 그런 ‘탈 포스트 내셔널리즘’에 대한 우익 포퓰리즘이 주로 국민투표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힘을 얻었다. 복지 정치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민투표를 통해서는 복지를 반대하는 세력이 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일종의 재정 보수주의다.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화, 민주주의와 사회적 통합의 측면에서 가장 이로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섬세한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박명림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통합 관계를 정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상보관계라는 표현을 쓴다. 한쪽의 작동이 미흡하면 다른 하나가 그것을 보완하고 강화시켜 준다. 국민발의는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하지만 국민투표와 국민소환제의 경우는 조건이 있다. 알다시피 탄핵 국면에서 만약 탄핵 반대 진영이 탄핵 찬성 국회의원을 소환했다면 상당한 혼란이 왔을 것이다. 이것은 포퓰리즘과 중우성, 양극성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여전히 국민소환제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투표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성장 과정, 가장 최근 사례로는 브렉시트, 또 콜롬비아 평화 협정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콜롬비아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는 과정을 보면 물질적 기반을 강하게 갖는 측, 선동자원을 갖는 측에 의해서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Q.박근혜 전 대통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것 같다. 그런데 일각에선 대선 정국이라는 상황 속에선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가 정치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박명림 질문 자체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대통령 탄핵까지 가지 않고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정치적 타협과 해결의 기회를 모두 거부하고 ‘차라리 탄핵하라’며 이 지경까지 상황을 끌어온 대통령에게, 국정을 이렇게 마비시키고 파탄으로 만든 대통령에게 지금부터 정치적 고려를 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 정치적 고려가 오히려 훨씬 더 정치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 탄핵 결정 이후의 대응 방식을 봐도 그렇다. 박근혜는 개인과 대통령을 혼동하고 있다. 개인 박근혜야 불만이 있고 울분이 있고 수용 못할 수 있지만 대통령 박근혜는 국회, 검찰, 헌재까지 일관된 이 헌법적 결정에 대해서 즉각 복종하고 승복해야 한다. 이건 헌법적 명령이고 이건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지 개인 박근혜가 무슨 울분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대응 방식은 국정농단보다도 훨씬 나쁜 반응이다. 그동안 사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를 혼동해왔고, 개인 박근혜가 곧 국가 박근혜였기 때문에, 그토록 오랬동안 국정을 농단해왔으면서도 자신이 그동안 무리한 통치를 해왔다는 것을 인정 못하는 것이다. 법치와 인치의 핵심적 차이는 법치는 왕도 법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인치는 왕 아래 모든 법이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스스로 지금 초법적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약간의 정치학적 헌법학적 전문성 있는 사람으로서, 깜짝 놀랐다. 이런 사례는 어떻게 존재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 대통령으로 생각해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을 자연인 박근혜가 벌이고 있다.
그래서 구속 시기, 구속 여부, 사법 절차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가야한다. 정치적 고려를 할수록 꼬일 것이다. 이렇게 헌정이 파탄되는 상태까지 왔고 자신을 보좌했던 참모들이 이렇게까지 구속이 됐고 국민이 이렇게까지 광장에 나왔는데 여전히 박근혜는 자기 지지층을 위해서만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사법절차에 필요한 과정을 밟으면 되지 이것에 대해 협상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박근혜를 놓고, 대통령 박근혜와 개인 박근혜를 놓고 혼돈에 빠지는 것이다. 즉각적 승복과 복종을 하지 않고 자신의 지지 세력만 바라본다. ‘개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은 감사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위법과 위헌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에 대한 사랑을 거둬주시고 대한미국에 대한 사랑 애국 충성으로 돌아와 주시고 시위를 중단해 주십시오’ 최소한의 이런 선언도 하지 않는다. 이런 개인 박근혜에 대해 우리가 불구속 수사 여부 이런 것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방향이다.
2016년 성탄을 하루 앞둔 12월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9차 촛불집회에서 주최측이 ''박근혜 구속 조기탄핵'' 문구을 정부서울청사에 빔라이트를 이용해 새기자 참자가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구속 수사’를 묻는 것 자체가 불복이다”
신진욱 먼저 짚어야할 것이 있다. ‘박근혜의 구속수사와 사법처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박근혜를 구속하고 수사하고 사법 처리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법치주의의 부정이다. 왜냐하면 ‘피의자를 수사할 것이냐, 사법 처리할 것이냐’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치주의의 유린일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질문이 우리의 정치 체제에서 정당한 질문인가’라는 반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로 정치권이 여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지금은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했던 당시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면 지금은 대선 정국이라서 누구도 집권 세력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어떤 정치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야 하는 일은 사법기관의 공정한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 원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그것을 넘어서 ‘화해의 정치’, ‘구속수사를 피해야한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는 이번 헌재의 궁극적 결정에 대해서 불복하는 것이다. 이 질문 자체가 불복이다. 사법 기관의 판단의 영역을 정치적인 협상과 타협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이 곧 탄핵 결과에 대한 불복을 의미할 수 있다.
끝으로 ‘한국의 헌법기관들, 의회, 검찰, 헌법재판소, 이들이 지금까지 판단하고 결정했던 것을 토대로 이 질문을 본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이냐’, 이 세 번째 질문이 남는다. 여기에 대해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 헌재 결정문에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눈에 띄었던 것은 국회 탄핵 소추안 내용에 더불어 하나가 더 붙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 불가하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문구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박근혜의 구속 여부와 사법처리 여부를 다시금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올리는 것은, 말하자면 그 자체가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이유로 탄핵당한 한 개인에 대한 반 헌법적인 질문의 형식이 아니겠는가.
원칙적으로 국가의 행위는 규범적으로 봤을 때 상호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상호 모순될 때 그것은 더 이상 통일적 국가일 수 없다. 한국의 특검과 헌법 재판소라고 하는 정당한 공적 권력이 지금까지 내렸던 최종 결론들, 즉 ‘이것은 탄핵이다’,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 불가하다’, ‘피의자다’, ‘기소했다’, 이와 같은 결정과 모순되는 새로운 의제를 우리가 제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용납 될 수 없다는 것,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여론의 관점에서 몇 %가 구속수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차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와 헌법 질서의 기강에 관련된 사안이다.
Q. 대선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이제 탄핵이 끝났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선택하는 길이 달라질 것이다’, ‘그전에는 정권교체만 이야기하다가 이제는 어떤 정권 교체를 할 것이냐’, ‘안정과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프레임이 다시 짜여질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유권자들에겐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하는가.
박명림 두개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압도적인 탄핵 여론과 구도, ‘반(反)박근혜 정서’가 있기 때문에 개혁 정당이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세력이 워낙 최악의 실책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선거로 넘어가더라도 큰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아마 이 ‘반박근혜 정서’와 ‘친 탄핵’ 흐름 위에서 약간 조정되는 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두가지다. 의제가 약간 바뀔 경우에 응징 투표와 전망 투표의 양상이 달라진다. 응징 투표에서는 ‘반박근혜 정서’가 지속될 것이고, 전망투표에서 ‘개혁과 적폐청산이냐’, ‘안정과 통합이냐’ 여기서 흐름이 갈릴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이것을 (개혁 세력 간) 내부경쟁이라고 보는 것은 조금 빠른 판단이다. 개혁의 성격은 ‘반박근혜 정서’ 안에서도 다양한 합종연횡이 있다. 개혁 정당 내부의 경쟁일 거라고 보는 시각은 ‘반(反)박근혜 정서’가 탄핵 국면에서는 유지가 되지만 대선 국면에서의 다른 형태, 즉 ‘반(反)박근혜 정서’를 유지하면서 ‘반문 연대’가 형성되는 그런 지점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판별을 요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려보자. 그 당시에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데는 네 개의 요인이 겹쳐졌다. 외환위기, DJP 연합, 이인제 탈당, 경쟁자가 보수정당 최초로 영남권 후보가 아니라는 점. 1987년 이후로 지금까지 영남출신 보수 후보는 낙선한 적이 없다. 100% 당선됐다.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모두 영남 후보였다. 충청 출신인 이회창만 떨어졌다. 그런 네 개의 요인이 합쳐졌는데도 불구하고, 김대중 호보가 거의 완승을 해야 했는데도 단지 1.6%포인트, 39만 표밖에 못이겼다. 대한민국은 보수 독점 사회인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처럼, 여전히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반 진보, 반개혁 담론이 재벌, 언론, 학회, 종교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반문 담론’으로 재현되고 있다. ‘반DJ담론’과 마찬가지다. 상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어떤 대안 세력의 중심에 있는 진영에 대해서, DJ에겐 특정한 지역으로, 지금은 특정 패권으로 몰아간다. 나는 어떤 후보의 캠프에도 들어가지 않고 특정 개인이나 정당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DJ가 용공으로 공격받듯 문재인이 종북으로 공격받고, DJ를 호남 정치인으로 가둬두려고 하듯 문재인을 패권으로 가둬두려고 할 때에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의 발전이나 사회 개혁 의제의 도약 과정을 보면, 보수가 최저점일 때, 보수에 대한 국민 지지와 연대와 세력이 최저점일 때가, (개혁진영이) 연대, 연합, 공동, 통합정부까지 가는 방법론을 찾아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결국, 탄핵에서 대선으로 갈 때, ‘개혁 세력이 이 기회를 대한민국의 발전과 개혁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그 이후로 세력화하고 포용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이다.
본래 대통령제와 정당정치가 원래 안 맞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대통령제는) 여당이 존재할 수 없는 제도다. ‘대통령 당’일 뿐이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이후 굉장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비교적 ‘정당충성도’가 높은 사람들이 의제를 선점해왔다는 것이다. 이인제, 박찬종, 정동영, 손학규 등 낙선한 사람들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계속 탈당과 전당을 반복한 분들이다. 정당충성도가 높다는 것은 ‘정당정체성’이 국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에 ‘반박근혜 세력’이자 ‘연대와 연합의 범위’, ‘의제의 설정 능력’, 그리고 ‘정당충성도’를 조금 높게 보여주는 세력이 승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 다른 의제도 있다. 국내적으로 통합이 되고 안정적 정부가 유지되어도 어려운 시점에 중국과 미국, 일본, 북한,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서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이번 대선 국면에선 (개혁 정당의 후보가) 이 양자택일의 구도에 빠져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선 정국의 최대 변수는 바로 군사 문제라고 본다. 인류의 최첨단 무기들이 냉전 해체 이후에 한반도로 가장 집중되고 있고 한반도를 향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개발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국내적으로 안정적으로 대선 국면을 관리하더라도 북한에 의한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그 과정에서 초래될 긴장 고조 등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와 남사 군도와 센카쿠 열도와 대만을 보자. 전세계가 평화로운 가운데 지금 세계의 군사주의와 대결주의가 동아시아 어디에선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가 가장 첨예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념 공세와 북한의 핵무장 안보의제의 강화 속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정부가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자체도 보수 정부일 뿐만 아니라 관리 능력이 없어서 핵문제, 사드 문제, 한반도의 군사문제와 안보문제의 결정권이 일방적으로 미국·중국한테 넘어가 버렸다. 항상 한반도는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총이 최초로 사용된 전쟁도 임진왜란이었고, 쌍방 간 대포를 사용한 최초의 근대 전쟁은 청일 전쟁이었고, 쌍방간 제트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도 한국전쟁이었다. 이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공멸할 뿐이다. 그래서 여야 후보들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한 경고, 한반도 문제의 평화 관리에 대한 확고한 표시를 하지 않으면 선거 과정과 이후에도 국내 정치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단순하게 사드나 중국의 경제 보복이나 개성공단의 문제를 넘어서 봐야한다. 현재의 국면에서는 외교가 민주주의고 평화가 일자리이고 군사 대결의 완화가 정상적인 국내정치의 담보 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예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도 발언을 하고 대내적으로도 연대를 해야 한다. 탄핵 과정에서 보여줬듯이 대선 과정에서 세계를 향해서 한 번 더 우리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와 평화를 향한 의지를 표출했으면 좋겠다. 1차적으로는 대선 국면이지만 크게는 그걸 넘어서는 문제다.
신진욱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고민과 논쟁으로 들어가기 전, 그 질문을 제기한 주체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그 질문을 왜 던졌으며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사실은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개혁이냐 통합이냐’라는 질문은 지금 ‘개혁 대상’으로부터 나온 얘기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여기에 답할 필요가 없다. 개혁이냐 통합이냐를 놓고 봤을 때 개혁의 반대말은 수구다. 통합의 반대말은 대립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5 대 5는 아니지만 탄핵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이정도의 대립을 만들어 낸 것은 수구 세력이다. 대립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구체제의 적폐 대상들이고 지금 통합을 할 수 있는 주체가 개혁 주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혁이냐 통합이냐’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고 개혁을 통한 통합, 그리고 통합을 위한 개혁 이 두 가지가 서로 논리적으로 전혀 모순되지 않은 결합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제 조건이다.
‘개혁이냐 통합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쪽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합치면 새누리당, 즉 탄핵당한 세력이다. 탄핵당한 세력은 반개혁 세력이다. 이들이 통합을 말하고 있지만 이들이 사실 해야 할 것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지 않고, 용서를 받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사면받고자 하는게 이들이 이야기하는 통합의 본질이다.
차기 정권에선 ‘어떤 개혁이냐 어떤 통합이냐’를 물어야 한다. ‘어떤 개혁이냐’를 물었을 때 첫째, 정치학에서는 ‘합의 이슈’와 ‘갈등 이슈’를 구분한다. 둘 가운데 합의 이슈는 정치적 쟁점이 잘 형성이 안된다. 압도적으로 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에. 가령 지금 대선국면에서 제기된 정치 개혁과 적폐청산이다. 이 부분에서 분명한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탄핵 국면으로 환원되지 않는, 매우 뿌리 깊고 오래된 ‘갈등 이슈’의 부분에서는 아주 신중하게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 한마디도 매우 중요하다. 그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외교 군사와 대북 정책 부분, 그리고 그보다 약간은 강도가 약하지만 재벌 개혁의 부분이다.
충분히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고 다수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치적인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나 선명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성숙함에 대한 의구심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외교·군사 부분에서 지금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 상황이야 말로 박근혜가 던져놓고 사라져버린 너무나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이것은 딜레마 상황이고 리스크 상황이다. 딜레마라는 것은 어느 것도 딱 잡아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리스크라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거기에서 얻는 이득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위험이 동시에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해도, 저것을 선택해도. 지금까지 박근혜 정권이 미국에 붙어서 이정도의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일종의 꺾기, 반대 편향으로로 갈 수도 없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스탠스는 이미 너무나 복잡해진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시소 타듯이, 여기저기 널뛰기를 하듯 잘못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등 노동자들이 재벌 총수들의 처벌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재벌 개혁도 마찬가지다. 재벌 개혁을 해야 하고 산업구조를 바꾸고 정경유착을 없애고 중소기업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중소기업이 독일 중소기업들처럼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재벌한테서 하청을 받아 잘리지 않고 붙어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중소기업이다. 재벌을 약화시킨다고 해서 당장 중소기업이 이 성장 역량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혁신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그건 아니다. 재벌 개혁을 해야하는데 ‘그냥 해체하자’ 이러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다.
외교·군사·대북 정책, 산업 구조와 재벌 개혁 이와 같은 오래된 난제들, 갈등적 이슈들에 대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단순화된 개혁 노선을 함부로 표방하는 것은, 오히려 청산 대상이 된 세력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최고의 빌미를 제공할 그런 행동이 될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구체제 세력이 살아날 수 있는 하나의 출구가 있다면, 바로 이런 오래된 난제들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 세력들이 어떤 중대한 실수를 할 경우다. 그것을 계기로 해서 구체제 세력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그런 상황이다. 구체제는 2개월 이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박명림-신진욱 대담 ②편 이어보기)
정리/이유주현 오승훈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