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고 육영수씨가 즐겨하던 올림머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다.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서울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간 날에도 그는 올림머리를 고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는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간 순간에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 들어가 올림머리를 해 준 정송주 토니앤가이 원장과 메이크업 담당으로 정 원장 동생인 정매주씨는 지난 14일부터 검찰 소환 당일까지 일주일동안 매일 아침 7시께 서울 삼성동 자택을 방문해 1시간 가량 머물렀습니다. 최순실·순득 자매가 소개해주었다는 정 원장 자매는 자택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들보다 더 자주 대면한 인물들입니다.
▶관련기사: [한겨레] 박대통령 미용사 최순실 자매가 소개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73563.html)
■ 20~30대 때도 같은 헤어스타일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시절 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은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무죄의 항변” 이라며 “내일 아침 더 큰 올림머리를 하고 더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이다. 마치 여왕님께서 가엾은 백성을 바라보듯 아련한 미소를 날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예측대로 박 전 대통령은 잘 손질된 올림머리를 하고 나타났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 기원은 1974년, 어머니 육영수씨 작고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를 닮은 큰딸은 어머니와 비슷한 헤어스타일과 투피스 차림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요. 1979년 10·26이 터진 뒤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의 14주기를 이틀 앞둔 1988년 8월13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나타난 37살 박근혜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세월이 멈춘 것처럼’ 청와대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향신문> 1988년 8월23일치) 한때 단발을 하기도 했으나, 주위 성화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며 “헤어스타일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푸념했습니다.
1988년 언론에 포착된 박근혜의 모습은 1979년 청와대를 떠날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88년 8월23일치 <경향신문> 4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화면 갈무리.
■ 오래가지 못한 웨이브 단발
그가 정치인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헤어스타일 덕분이기도 합니다. 1997년 당시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는데요. 변함이 없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은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표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국회의원 같지 않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00년대 들어 그는 앞·뒷머리를 내리는 등 미세하나마 헤어스타일을 바꾸었습니다. 모든 머리를 올리는 것보단 관리하기 편한 스타일이었죠. 긴 치마 대신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요. 이렇게 박 전 대통령이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줄 때마다 언론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2007년 1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선보인 단발이었습니다. 올림머리를 어깨 위까지 풀고, 파마를 한 것이죠.
‘웨이브 단발’ 수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해 5월 올림머리로의 복귀가 이뤄지죠. 2007년 6월4일치 <국제신문>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대선후보 정책토론회를 앞두고 주요 시청자가 주부나 고연령층으로 올림머리 선호자들이 대부분인 만큼 토론회에서는 올림머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문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박근혜 전 대표 원래 스타일로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00659.html)
2007년 1월 노종면 당시 와이티엔 앵커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와 생방송 대담을 하고 있다.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는 올림머리를 내린다. 방송 화면 갈무리
■ 머리 모양은 운명?
앞머리는 부풀리고, 뒷머리는 다수의 실핀을 이용해 ‘올리는 머리’는 손이 많이 갑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 대통령이 청와대로 미용사를 호출해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시민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올림머리를 향한 ‘굳건한 의지’는 10여년 전 보도에서도 나타납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난 9월 말 육군본부 국정감사를 위해 계룡대를 찾아 실탄 사격을 했을 때다. 박 대표는 철모를 쓰지 않았다. ‘머리’ 때문이었다. 차 안에서 잠시 노루잠을 청할 때도 좌석에 머리를 기대지 않을 만큼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경향신문> 2005년 12월6일치)
그에게 올림머리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요? 천영식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문화일보> 기자로 일할 당시 박근혜에 대해 펴낸 책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박근혜는 살아생전 어머니가 ‘너는 뒤로 머리를 묶는 게 어울린다. 어쩌면 그것까지 나하고 닮았냐’는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머리 모양만큼은 운명이라고 생각고 있는 듯하다.”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향은 올림머리에도 드러나 있는 듯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까닭도 부모와 연관이 깊습니다. 1997년 신한국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60∼70년대 국민이 피땀 흘려 일으킨 나라가 오늘 같은 난국에 처한 것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 목이 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때 정치에 참여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한겨레] “오매불망 아버지를 위해”…박정희를 극복 못한 유신공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6983.html)
지난 12일 파면 선고를 받고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 9일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 퇴거 9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으로 돌아올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올림머리를 한 채 남색 코트를 걸쳤고 여유롭게 행동했지요.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6월20일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서울시장 선거 지원 유세를 나갔다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는데요. 입원한 지 9일 만에 피습 당할 때 옷차림 그대로 병원 문을 나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는 ‘퇴원하기 전 옷이 두세 벌 병실로 들어갔는데 대표가 피습 당시 입었던 옷을 골랐다. 뜻하지 않은 일로 중단했던 유세를 이어간다는 의지 표명이 아니겠느냐’는 측근의 전언을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중앙일보] 박근혜 피습 당시 옷차림 그대로 대전행 (http://news.joins.com/article/2307459)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한 박 전 대통령의 ‘파면 불복’ 의지도, 흔들리지 않는 올림머리만큼이나 굳건해 보입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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