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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디제이 적자론’ 정치적 효과도 ‘적자’

등록 2005-11-11 23:46수정 2005-11-12 17:53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예방한 열린우리당의 정세균 의장(가운데), 박병석 의원(왼쪽) 등과 환담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예방한 열린우리당의 정세균 의장(가운데), 박병석 의원(왼쪽) 등과 환담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분석] 디제이 후계자 발언 다툼이 퇴행적인 이유

바야흐로 ‘디제이 전성시대’다. 그리고 정치인 디제이는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8월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당시 병원에 입원해 정치권을 화들짝 놀래게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디제이)이 최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고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표현해 또다시 ‘적자논쟁’을 불렀다.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호남권을 의식한 듯 “디제이가 열린우리당을 정치적 계승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반겼다. 반면 민주당은 “우리는 그런 말 10번도 더 들었다”며 “덕담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비아냥거렸다. 한나라당도 “신체 멀쩡한 여당 당직자들이 막 퇴원한 분을 찾아가 도리어 심신의 위로를 받다니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민주당 한화갑 대표도 14일과 16일 나란히 동교동을 방문할 예정이다.

 우리당 지도부에게 “전통적 지지표 복원에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갖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여당 일부에선 “민주당과 우리당의 통합의 메시지”라며 민주개혁세력 통합론의 명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제이가 자의든, 타의든 정치의 중심에 다시 거론되는 것에 비판도 만만치 않다. ‘3김정치’와 지역주의 정치로 한국정치가 회귀한다는 비판이 우선 나온다. 또 디제이를 두고 벌이는 적자논쟁은 현 정치권의 무능력을 반영하는 것이란 목소리도 높다.

 

디제이 덕담 한마디에 무너진 여야…동교동 삼거리 북적 ‘유산에만 눈독’ 


디제이는 8일 정세균 원내대표를 비롯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고 “나는 여러분들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제이는 또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최저인 것은 전통적 지지표의 이탈 때문이므로 전통적 지지표의 복원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박근혜 한나라당대표가 지난해 8월12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대통령과 악수하고있다. 박대표는 14일 다시 김 전대통령을 방문한다.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한나라당대표가 지난해 8월12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대통령과 악수하고있다. 박대표는 14일 다시 김 전대통령을 방문한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런 발언은 디제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묘한 파장을 불렀다. 디제이는 2003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후 ‘정치적 계승자’라는 명시적 표현을 쓴 적은 없었다. ‘정치 9단’ 디제이가 ‘계승자’라는 말을 쉽게 꺼냈을 리도 없다는 평가였다.

 10·26 재선거 참패 뒤 정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열린우리당은 반색했다. 우리당은 디제이 면담 뒤 바로 전병헌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디제이 면담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정치적 계승자” 발언을 강조했다. 정세균 대표는 9일 “(김 전 대통령의) 가르침과 격려 말씀으로 좋은 기회를 가졌다”며 “잘 새기고 돌아왔고 자신감과 용기를 얻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디제이의 덕담 수준의 발언을 여권이 이처럼 홍보하는 것은 디제이의 후광에 기대, 추락한 지지율과 이미지를 만회하려는 의도에서다. 정당은 정책과 활동을 통해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정치에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나이든 정치인의 후광과 정치적 유산에 기대어 위기를 돌파하려는, 비자립적 정당의 행태이다. 열린우리당이 관심을 갖는 디제이의 정치적 유산은 민주화세력의 정통성, 평화적 대북정책이다. 그리고 ‘호남 표’다.

 이러한 디제이의 정치적 유산과 철학과는 크고작은 차이를 보이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도 ‘유산’에 관심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두 당은 열린우리당의 “디제이 계승자” 주장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박 대표와 한 대표가 나란히 14일과 16일 동교동을 방문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스 정치를 넘어섰다고 자랑해온 ‘민주정당’ 맞나? 

‘전통 지지세력 결집’ 발언을 놓고도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민주당과 통합론은 큰 힘을 받고 있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8일 오후 “민주, 평화세력이 손을 잡으라는 당부”라며 통합론을 직접 거론했다. 주승용 의원(전남 여수 을)은 10일 BBS 인터뷰에서 “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통합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386세대인 임종석 의원도 CBS 인터뷰에서 “수구보수가 결집하는 위기상황을 놓고 민주개혁 평화세력이 서로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결국 가능하다”고 통합론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과 통합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디제이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화통화한 것을 놓고 민주대연합론까지 정치권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디제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통합론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도 보스 정치를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민주정당으로서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외과)는 “단지 디제이가 다시 합치라고 한다고 통합한다는 것은 너무 웃기지 않느냐”며 “두 당이 통합해야 하는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에서 진다’는 정치공학적인 이유를 빼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정치공학적으로 보더라도 선거에 승리하려면 디제이피 연합처럼 정책연합도 있고, 후보 단일화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많다”며 “갑자기 통합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3김 원로 정치, 지역주의 부활 부추겨
디제이 잘못 아니라 현 정치 무능 탓

지난 9월6일 오전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 개관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개관식에 앞서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연합
지난 9월6일 오전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 개관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개관식에 앞서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연합

디제이가 정치의 중심으로 거론되는 상황의 근본적 문제는 한국 정치가 3김정치, 지역주의 정치로 다시 뒷걸음질 친다는 데 있다. 디제이가 민주화와 대북정책 등의 정치적 성과에도 1인 보스 정치를 상징하는 3김정치와 지역주의에서 한 발도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3김정치와 지역주의 부패정치를 벗어나겠다고 선언해놓고 스스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는 디제이의 잘못이 아니다. 현 정치의 무능 탓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디제이를 포함한 3김이 국가 원로로서 사회적 대접을 받는 것은 좋은데, 최근 양김의 화해 움직임이나 김종필의 국민중심당 찬조연설 등은 한국정치가 과거로 회귀하는 퇴행적인 모습”이라며 “이는 3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현재 정치와 정당이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김성희 부대변인도 9일 논평에서 “정치의 길은 옛 정치인의 후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속에 있고 민생과 개혁이 요체”라며 “우리 정치가 옛 정치인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퇴행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호남은 디제이가 정치개입해 망가지는 것 바라지 않는다” 

 

적자론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손 교수는 “디제이로 회귀하는 것은 마이너스 효과”라며 “영남 등 반대지역을 포기한다는 전략이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3김정치와 지역주의 탈피라는 정치 슬로건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개혁세력의 이탈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또 “호남민심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대북특검과 도청사건에서 현 정부가 디제이를 부정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며 “새삼스럽게 디제이 적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이중적 태도로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제이=호남민심’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유효한지도 의문이다. 광주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백리서치 김남수 대표는 디제이에 대한 호남 정서를 지적한다. 김 대표는 “호남사람들은 디제이가 성공한 정치인,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며 “디제이를 현실정치로 불러내거나 디제이가 현실정치에 개입해 망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디제이의 정치개입을 바라지 않는 호남 민심을 지난 총선 당시 디제이의 호남 방문을 반대한 것에서 찾았다. 17대 총선 당시 호남 유권자들은 디제이 방문에 대해 ‘정치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 높았다. 당시 한백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디제이의 호남방문을 반대하는 의견이 40%가 넘었다. 총선이 아니더라도 퇴임 뒤 디제이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호남 방문을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40년 동안 ‘정치적 공동운명체’였던 호남과 디제이는 그렇게 ‘이심전심’이었다.

 류동훈 광주전남 개혁연대 사무처장은 “디제이의 계승자 발언은 큰 틀에서 ‘화합하라’는 노 정치인의 메시지가 아니었겠느냐”며 “디제이 발언은 유권자들에게 의미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류 사무처장은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로, 본인들의 능력과 목소리로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퇴임한 대통령에 기대어 민심에 호소하려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며 “디제이 발언과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누가 민생을 더 잘 챙기고, 누가 더 지역발전에 적임자인가를 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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