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고양시 일산동구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JTBC·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자한국당 홍준표(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예정보다 앞당겨진 이번 대선에서 방송사 티브이(TV)토론의 위력이 확인되고 있다. 활주로가 짧아진 조기 대선에서 후보자의 역량과 태도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형식으로 티브이 토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과거 대선에서 유력 정당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그해 4월에서 9월 사이에 후보를 선출했기 때문에 당내 경선 기간까지 감안하면 후보는 대략 1년 동안 국민적 검증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경선과 본선까지 2개월 안에 치러지는 매우 촉박한 일정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여론과데이터센터 센터장은 “예전에는 1년 동안 후보들이 토론도 하고 출판기념회도 하면서 유권자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았다. 티브이 토론도 그런 기회 중의 하나였고 영향력도 엔(N)분의 1이었다”며 “이번엔 대선이 단거리 경주처럼 진행돼 다른 기회가 생략된 상황에서 과거보다 티브이 토론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 강한 후보들이 모인 다자구도 속에서 법정 선거기간(22일) 안에 6차례나 토론이 이뤄진 것도 특이점이다. 1997년 대선 이래 5년마다 실시된 티브이 토론 횟수는 선거법이 정한 최소치인 3차례였다. 과거엔 사전에 의제를 주고 정해진 틀 안에서 의례적으로 진행됐으나, 이번엔 후보 간 난상토론을 허용하거나 스탠딩 방식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 것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였다. 하이라이트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십만회 조회 수를 기록했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유통됐다. ‘본방을 사수’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도 토론회의 핵심 장면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한국갤럽이 한국지방신문협회의 의뢰를 받아 4월30일과 5월1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5.7%가 5차 티브이토론을 시청했고 7.2%가 티브이 토론회를 보고 지지 후보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는 “언론에서는 이 수치를 보고 티브이 토론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분석했는데 한 번의 티브이 토론으로 7.2%가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건 엄청난 수치”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선 토론에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로 꼽힌다. 박원석 정의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2일 <한겨레TV> ‘더정치’에 출연해 “심 후보의 정치경력이 13년인데 티브이 토론 이전에 인지도가 50%가 안 됐다”며 “심 후보 홍보 효과로 따지면 티브이 토론의 광고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티브이 토론을 빼고는 심 후보 지지율 상승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티브이 토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관성 있게 신념과 공약을 보여줬고 그런 영향으로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손해를 크게 본 사람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다. 안 후보가 보여준 토론 태도의 미숙함과 함께 햇볕정책·사드 등의 안보 의제와 여러 정책에서 모호함이 노출되면서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는 “지지층이 다양하고 견고하지 않은 안 후보에게 티브이 토론은 기회 요인이기도 했고 위험요인이기도 했다”며 “토론을 통해 안 후보에게 실망감이 커지면서 지지율이 쭉쭉 빠졌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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