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가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연수원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부터 김 위원장, 윤호중 기획분과 위원장, 박광온 대변인.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28일 “재벌들이 먼저 반성을 해야만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다”며 새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꼽는 노사정 대타협의 선결 조건으로 ‘재벌 우선 반성론’을 제기했다. 사회적 대타협은 김대중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 때 시도된 적이 있으나 노동계의 반발 또는 불참 등으로 그동안 중단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한 브리핑에서 “최근 10년간 보수 정권 때 추진된 가장 큰 개혁이 바로 노동개혁이었으나 제대로 성취된 것은 하나도 없고 사회적 갈등과 마찰만 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개혁을 위해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기득권을 지닌 집단이 조금씩 양보해야 풀리는 문제”라며 “(이를 위해선)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와 같은 개혁이 (노동개혁과 함께) 삼위일체가 되어야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에도 “재벌들이 기득권을 절대 못 내놓고 그대로 가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재계에 경고성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서유럽 국가들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거치면서 지혜를 모아 나온 것이 노사정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 노사갈등이 격화되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기업은 일자리를 보장하고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내용을 담은 ‘바세나르 협약’을 노사정이 체결하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한 네덜란드 사례나 2000년대 초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는 사회적 협약을 배경으로 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타협을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업무지시 1호는 ‘국가일자리위원회’ 설립이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장관급 인사만 11명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경영자총협회와 같은 경영계 대표 등 민간부문 인사 15명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 성격이 짙다. 문재인 정부는 이외에도 현재의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쪽을 대표하는 단체도 포함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이나 노사정 대화는 참여정부에서 무산된 이후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철도노조 파업을 빌미 삼아 민주노총 본부에 대한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을 진행한 데 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화하면서 노-정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노동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경영계에 보내는 강경한 메시지에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사회적 대화기구 복귀에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부에서 재벌 책임 문제를 먼저 얘기한 것은 진일보한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도 “먼저 정부가 노동계와의 신뢰를 회복하고 소통하는 노-정 교섭이 먼저 성사되고 사회적 대화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사회적 대화를 말하기 앞서, 정부가 행정조처를 통해 그동안 약속했던 공약을 먼저 이행해 노동계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김경락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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