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건 전 국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영장실질심사 표정
15일 임동원(71), 신건(64)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은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전 원장들과 검찰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두 전직 원장은 검찰을 반박하기 위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국정원의 업무체계까지 거론하는 등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법원은 정보기관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 주변에 대한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예상 시간 넘겨가며 양쪽 치열한 법리 공방
“도청 알수없는 구조” “김은성이 음해” 주장
천법무 “구속 요건 해당한다고 보고받았다” 날카로운 신경전=검찰은 이날 3명의 검사를 법정에 들여보내 두 전 원장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폈다. 이날 심사는 오후 2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신씨와 임씨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신문이 예상 밖으로 길어져 저녁 7시50분께 끝났다. 신씨는 검사들의 질문에 “그건 검찰이 국정원 체계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황장엽씨는 국정원이 24시간 감시를 붙여논 인물인데 도청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등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 보고가 올라오는데 8국(과학보안국) 것만 따로 상세하게 보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오히려 검찰에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임씨도 “검찰이 김은성 전 차장의 진술에 많이 의존한 듯한데, 그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검사들은 10여쪽에 이르는 질문지 4권을 준비해 돌아가며 전 원장들을 압박했다.
치열한 공방=전 원장들은 “국정원장이 최고 책임자이므로 가장 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검찰의 논리에 대해 이례적으로 국정원의 업무체계까지 공개하며 반박했다. 임씨는 “원장은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회장과 같아 차장은 물론 국장들도 예산 편성 권한을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며 “차장들은 독자적으로 첩보 및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원장은 완성된 정보만 보고받는데다가 보고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읽어 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첩보 필요성 판단→첩보 수집→정보 완성→배포로 이뤄지는 정보 생산 과정에서 원장은 정보 완성 단계가 돼야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가 어떻게 생산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감청은 첩보 수집의 한 방법이고, 이는 과장급 직원(과학보안국)의 소관 사항이기 때문에 감청이 불법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원장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임씨는 또 “국정원 직원은 누구나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경우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실무자들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신씨도 “통신첩보 보고를 받았지만 해외와 북한 관련 정보만 봤고, 국내 정치인에 관한 내용은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인멸 시도에 대해서도 “김은성 전 차장 등을 만났을 때 김승규 원장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물었을 뿐 진술을 번복하도록 종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에서 의혹을 제기해서 감찰실에 지시해 진상을 파악했는데 불법감청이 없었다고 보고받았다”며 “미림팀을 해체하고 감청장비까지 없애도록 했는데, 불법감청을 시킬 리가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정배 “구속 요건 해당”=한편,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전 원장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률상 구속 요건에 해당한다고 봐서 그렇게 처리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건이 국민의 정부 전체 차원의 업적이나 도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양형일 열린우리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수사 결과에 따라 그런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천 장관은 “검찰로서는 범죄 혐의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어서는 안된다”며 “검찰이 이 문제에 관해 과거의 것이든 더 먼 과거의 것이든, 상대적으로 덜 먼 최근의 것이든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법무장관으로서 (그렇게) 지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춘재 고나무 임석규 기자 cjlee@hani.co.kr
겉으론 상사-부하…속으로 ‘앙숙’ 신건-김은성 ‘약연’ 다시 주목 검찰이 불법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신건(64) 전 국가정보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신 전 원장과 이미 구속기소된 김은성(60) 전 국정원 차장의 ‘악연’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의 악연은 1998년 3월 신씨가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국내 담당)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종찬(69) 안기부장 등 수뇌부는 김씨를 ‘문제가 많고 위험한 인물’로 보고, 그를 대전지부장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씨는 동교동계 쪽에 선을 대고, 요직에 가려고 로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99년 6월 국정원에서 나간 신씨는 2001년 3월 국정원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김씨가 요직 중의 요직인 국내 담당 차장을 꿰차고 있었다. 신씨는 ‘그냥 두면 사고를 낸다’며 김씨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정권 실세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어,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국정원장과 차장으로 일했지만 속내는 ‘물’과 ‘기름’이었다. 신씨는 김씨가 자신도 도청 등 감시한다는 의심까지 했고, 김씨도 신씨가 자신을 ‘쫓아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씨가 2001년 11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옷을 벗으면서 국정원에서의 인연은 끝났다. 신씨 쪽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은 완전히 척진 사이였다”고 말했다. 신 전 원장은 최근 김씨가 검찰에 구속되기 전 전화를 하고 연락을 취한 데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한 짓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도청 알수없는 구조” “김은성이 음해” 주장
천법무 “구속 요건 해당한다고 보고받았다” 날카로운 신경전=검찰은 이날 3명의 검사를 법정에 들여보내 두 전 원장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폈다. 이날 심사는 오후 2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신씨와 임씨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신문이 예상 밖으로 길어져 저녁 7시50분께 끝났다. 신씨는 검사들의 질문에 “그건 검찰이 국정원 체계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황장엽씨는 국정원이 24시간 감시를 붙여논 인물인데 도청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등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 보고가 올라오는데 8국(과학보안국) 것만 따로 상세하게 보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오히려 검찰에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임씨도 “검찰이 김은성 전 차장의 진술에 많이 의존한 듯한데, 그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검사들은 10여쪽에 이르는 질문지 4권을 준비해 돌아가며 전 원장들을 압박했다.
검찰과 임동원, 신건 쟁점
치열한 공방=전 원장들은 “국정원장이 최고 책임자이므로 가장 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검찰의 논리에 대해 이례적으로 국정원의 업무체계까지 공개하며 반박했다. 임씨는 “원장은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회장과 같아 차장은 물론 국장들도 예산 편성 권한을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며 “차장들은 독자적으로 첩보 및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원장은 완성된 정보만 보고받는데다가 보고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읽어 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첩보 필요성 판단→첩보 수집→정보 완성→배포로 이뤄지는 정보 생산 과정에서 원장은 정보 완성 단계가 돼야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가 어떻게 생산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감청은 첩보 수집의 한 방법이고, 이는 과장급 직원(과학보안국)의 소관 사항이기 때문에 감청이 불법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원장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임씨는 또 “국정원 직원은 누구나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경우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실무자들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신씨도 “통신첩보 보고를 받았지만 해외와 북한 관련 정보만 봤고, 국내 정치인에 관한 내용은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인멸 시도에 대해서도 “김은성 전 차장 등을 만났을 때 김승규 원장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물었을 뿐 진술을 번복하도록 종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에서 의혹을 제기해서 감찰실에 지시해 진상을 파악했는데 불법감청이 없었다고 보고받았다”며 “미림팀을 해체하고 감청장비까지 없애도록 했는데, 불법감청을 시킬 리가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정배 “구속 요건 해당”=한편,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전 원장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률상 구속 요건에 해당한다고 봐서 그렇게 처리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건이 국민의 정부 전체 차원의 업적이나 도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양형일 열린우리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수사 결과에 따라 그런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천 장관은 “검찰로서는 범죄 혐의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어서는 안된다”며 “검찰이 이 문제에 관해 과거의 것이든 더 먼 과거의 것이든, 상대적으로 덜 먼 최근의 것이든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법무장관으로서 (그렇게) 지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춘재 고나무 임석규 기자 cjlee@hani.co.kr
겉으론 상사-부하…속으로 ‘앙숙’ 신건-김은성 ‘약연’ 다시 주목 검찰이 불법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신건(64) 전 국가정보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신 전 원장과 이미 구속기소된 김은성(60) 전 국정원 차장의 ‘악연’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의 악연은 1998년 3월 신씨가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국내 담당)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종찬(69) 안기부장 등 수뇌부는 김씨를 ‘문제가 많고 위험한 인물’로 보고, 그를 대전지부장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씨는 동교동계 쪽에 선을 대고, 요직에 가려고 로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99년 6월 국정원에서 나간 신씨는 2001년 3월 국정원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김씨가 요직 중의 요직인 국내 담당 차장을 꿰차고 있었다. 신씨는 ‘그냥 두면 사고를 낸다’며 김씨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정권 실세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어,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국정원장과 차장으로 일했지만 속내는 ‘물’과 ‘기름’이었다. 신씨는 김씨가 자신도 도청 등 감시한다는 의심까지 했고, 김씨도 신씨가 자신을 ‘쫓아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씨가 2001년 11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옷을 벗으면서 국정원에서의 인연은 끝났다. 신씨 쪽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은 완전히 척진 사이였다”고 말했다. 신 전 원장은 최근 김씨가 검찰에 구속되기 전 전화를 하고 연락을 취한 데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한 짓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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