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크로스 회원들이 2015년 5월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민통선 지역을 걷고 있다. 미국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앞줄 왼쪽 다섯째 안경 쓴 이)이 이끈 이 행사는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를 포함해 미국·영국·일본 등 세계 15개국에서 온 30여명의 여성이 참가했으며, 크리스틴 안도 이에 동참했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국가정보원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러 한국에 오려던 평화운동가의 입국을 거부했다가 비판적 여론이 일자 18일 철회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평화운동을 벌여온 크리스틴 안은 ‘사드배치철회 미국시민평화대표단’의 일원으로 오는 2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미국 녹색당 대선후보였던 질 스타인과 반전단체 ‘코드 핑크’의 미디아 벤저민 대표 등과 함께 사드 포대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소성리를 방문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도 잡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틴 안은 지난 13일 국내 항공사 항공권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자신을 입국 거부 대상자로 올려놓은 사실을 알게 됐다.
<한겨레> 취재 결과 크리스틴 안에 대한 입국 거부는 국정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크리스틴 안의 입국 거부와 관련해) 국정원이 의견서를 낸 건 맞다. 그러나 (입국 거부 결정은) 법무부 사안”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출입국관리법 입국 금지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입국 거부 ‘처분'은 출입국관리본부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지만 입국 거부는 대부분 행정기관의 요청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틴 안에 대한 입국 거부에는 국정원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크리스틴 안에 대해 입국 거부 조처가 내려진 이유는 2015년 5월께 한국에서 열린 위민크로스 행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세계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북한에서 출발해 비무장지대를 거쳐 한국으로 오는 ‘위민크로스 디엠제트(DMZ)’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신문>이 “북한 만경대를 방문한 크리스틴 안이 김일성을 찬양했다”고 보도해 ‘종북 논란’이 벌어졌다. 크리스틴 안은 “<노동신문> 기자가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항일투쟁을 한 사실은 알고 있다’고 답했으나 내 말을 악용해 정치적으로 선전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국내 여성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입국 거부 조처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지난 17일 <뉴욕 타임스>가 이를 보도하는 등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정부는 크리스틴 안의 입국을 허용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18일 “(입국 거부를) 요청했던 기관의 해제 요청이 있어서 크리스틴 안에 대한 입국 거부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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