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표 지지율 하락, 한나라 ‘대권후보 영입설’ 모락모락
‘박근혜 약발’이 끝나나? 지난해 대통령탄핵 뒤 몰락 직전의 한나라호를 맡아 121석의 거대정당으로 부활시켜내며 당 안팎으로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았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취임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박근혜 대표가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데에는 박 대표에 대한 비판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것이라면 박근혜 대표를 줄곧 비난해온 반대진영의 비판이라기보다, 박 대표와 정치적 이해를 같이 할 것으로 보이는 우호진영에서 비판이 전에 없이 거세다는 것이다.
1월31일 발표된 <조선일보>와 갤럽의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표는 지지율 면에서 정치권 밖의 ‘후보 선수’인 고건 전 총리에 크게 밀렸다. <조선일보>는 박 대표가 주요 지지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이회창씨에 이어 2위에 그쳤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또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도 ‘아니다’는 응답이 60.8%나 됐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1일자 <조선일보>는 “믿었던 텃밭에서 이회창전총재에 뒤지다니…박근혜 TK쇼크” 기사를 침울한 표정의 박대표 사진과 함께 5면에 실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알려진 이후 한나라 내부의 ‘박근혜 흔들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도부의 한축인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가 차기 후보와 관련해 박진·원희룡·고건·정몽준 등을 직접 거론하며 “후보군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말해 ‘박근혜 카드’의 폐기를 내비쳤다.
특히, 당내 소장파는 물론 중도 개혁파들도 3일로 예정된 연찬회를 계기로 ‘박근혜 카드’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여성 대통령’의 꿈이 본격적인 실험대에 오른 것이다.
<조선일보> 여론조사 대구·경북에서도 이회창에 밀려
“박근혜 대통령감 아니다” 60.8%, 지지세력 흡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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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표는 <조선일보>·갤럽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에게 크게 밀리고 ‘텃밭’ 대구·경북에서도 이회창씨에 이어 2위에 그쳤다.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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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자로 ‘다음 대통령, 누구를 생각하십니까’라는 특집 여론조사를 2면에 걸쳐 내보냈다. 이 여론조사는 갤럽과 함께 실시했으며 전문가 116명을 상대로 차기 대권후보로 유력한 인사 32명을 1차로 선정했다. 이를 토대로 2차 조사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이 되면 좋을 만한 사람’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 조사를 병행했다.
박근혜 대표와 관련해 <조선일보> 조사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차기 대권 후보의 지지도 조사다. 박 대표는 지지도에서 32.5%를 차지해 46.9%로 1위를 차지한 고건 전 총리에 크게 뒤졌다. 또 당내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29.4%)과도 오차범위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적인 것은 지역별 지지도 조사결과다. 박 대표는 지역구이면서 가장 확실한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회창 전 총재에 뒤졌다. 서울,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도 고건, 이명박에 이어 3위로 밀렸고 충청·호남에선 고건, 정동영에 밀려 2, 3위에 그쳤다. 박 대표가 1위를 지킨 지역은 강원과 부산·울산·경남 등 영남지역밖에 없었다.
이 결과는 그 동안 박 대표 지지율의 강점으로 꼽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 논리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성인 대구·경북에서도 정계은퇴한 이회창씨에 못미친다는 것은 박 대표와 지지자로서는 ‘충격’을 넘어 ‘경악’ 수준이다.
이번 조사에서 ‘박 대표를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는 응답이 60.8%로 ‘그렇다’(39.2%)를 크게 앞질렀다. 같은 조사에서 고건씨는 ‘그렇다’ 64.2%, ‘아니다’ 35.8%로 대조를 보였다. 당내 경쟁상대인 이명박 서울시장도 ‘그렇다’ 41.2%, ‘아니다’ 58.8%로 나타났다. ‘대통령감’질문이 후보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면 박 대표는 이 시장과 비교해 지지율은 높으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기대치는 오히려 낮은 결과로 해석된다.
이 조사를 놓고 보자면 절치부심 재집권을 꿈꾸는 한나라당은 ‘박근혜 카드’에 동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내부의 우려스런 시각을 대구·경북지역 한 초선의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과거사 정국’을 거치면서 ‘박 대표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일부 형성되고 있다”며 “일부 보수층은 ‘보안법 하나 지켜내지 못하나’라고 불만이고, 일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흔들기에 박 대표가 버틸 수 있을까’라고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남경필 “박진, 원희룡, 고건, 정몽준도 있다”
“누구든지 들어와 공정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흔들리는 ‘박근혜 카드’는 한나라당 내부의 ‘대권후보 영입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문수 의원은 이미 지난해 8월말 소장파와 지도부가 정면으로 충돌한 ‘연찬회 파동’ 뒤 ‘대권후보 영입설’을 주장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당시 “밖에서 대표를 모셔올 수도 있고, 대통령 후보나 보궐선거 후보도 모셔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대권후보 영입설’은 지난해 4대개혁입법을 둘러싼 당의 보수화와 박정희 과거사 문제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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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앞으로 (대권) 후보군을 더 넓혀가야 한다”며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에서 나아가 박진, 원희룡, 고건, 정몽준은 왜 안되나”라고 ‘대권후보 외부 영입설’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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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원내 교섭창구의 한축인 남경필 의원은 3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권) 후보군을 더 넓혀가야 한다”며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에서 나아가 박진, 원희룡, 고건, 정몽준은 왜 안되나”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과거에는 ‘창’(이회창)을 후보로 만들기 위해 나머지를 잘라내고 좁혀갔다면 2007년 대선은 후보군을 넓혀가는 과정일 것”이라며 “한나라당이라는 무대에서 누구든지 다 들어와서 공정한 검증과정을 거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카드’에 대한 견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대로 가다간 차기 대선에서 또 진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보수, 중도, 개혁파들이 활발한 노선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임태희, 이병석, 김무성…
중도파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선 임태희 의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강경한 보수의 이미지로 ‘2007년 대선승리’라는 미래가 없다”며 박 대표와 지도부를 향한 쓴소리를 내뱉었다.
‘원내 선임부대표’격인 이병석 의원도 1일 원내부대표직을 사임하면서 “한나라당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며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선 영남의 전통적인 근거지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충청, 호남, 강원의 전국적으로 지지기반을 확장하고 노장층의 지지를 공고히 하면서 젊은층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취임한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취임 첫마디로 “당이 바뀌지 않으면 재집권은 요원하다”며 “박근혜 대표까지 바뀌어야 한다”도 말했다.
이런 지도부 비판의 핵심은 재집권을 위해서는 박근혜 대표와 지도부가 당 노선의 혁신은 물론 새로운 지지기반을 창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동시에 이를 박 대표가 충족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인물을 대안으로 세울 수 밖에 없다는 압박도 포함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잇따르는 ‘박근혜 카드’에 대한 거센 도전이 어떤 방향으로 내달릴지 속단하기는 힘들다. 특히 한나라당 내부에서 노선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해 ‘박근혜 카드’의 검증을 들고 나온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차기 한나라당 대권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이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일방적 추대’로 끝났던 17대 대선과 달리 복잡한 당내 경쟁의 시험대를 거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표가 그 시험대에 누구보다 먼저 올라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험대 위에서 처음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