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사회학 강의 시간에 한 ‘대학생과의 솔직 대담’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 난항과 북핵·미사일 도발로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임 초 80%대이던 지지율도 넉달여 만에 60%대까지 내려앉았다. 반대로, 그동안 문 대통령의 인기에 눌린 채 반전을 모색해온 야권은 일제히 ‘문재인 때리기’를 강화하며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운명까지 손에 쥐고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의 발걸음이 꼬이고 야권의 목소리가 커지는 최근의 흐름은, 지난 5·9 대선에 출마했던 야권의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전면에 나선 상황과 겹친다. 홍준표(자유한국당), 안철수(국민의당) 전 후보가 당대표에 당선된 데 이어, 유승민 전 후보도 11월 바른정당 전당대회 출마 요구를 받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무대에 올라선 야3당은 밖으로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부딪치면서 혼돈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서서히 다가오면서, 이르면 올해 안에 야권 재편이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107석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와의 절연’을 놓고 내전이 시작됐다. 홍준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 핵심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탈당(또는 출당) 문제를 다음달 중순부터 논의하겠다고 했다. 최경환 의원은 “정치적 패륜”이라며 결사항전 태세다. ‘박근혜·친박 정리’는 ‘박근혜당’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조처이자, 바른정당(20석)의 복당 희망파에게 복귀 명분을 갖춰주려는 시도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13일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이 이뤄진 국회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자유한국당의 ‘박근혜·친박 정리’ 예고는 바른정당 내부를 교란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바른정당은 자강파의 ‘유승민 비상대책위원장 추대’ 주장에 김무성 의원 등 통합파가 반대하면서 ‘11월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로 절충해둔 상태인데, 자강파는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출당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통합파가 두달간 시간을 벌어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통합파는 “자유한국당이 친박 청산을 하고 나면 자강파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하고 있다. 바른정당의 명운이 절반쯤은 자유한국당에 달린 셈이다. 바른정당의 통합파와 자강파는 “유승민이 당대표가 되면 당이 쪼개질 것이다”, “유승민 싫다는 사람들이 당 떠나면 된다”는 말까지 주고받으며 깊은 골을 드러내고 있다.
안철수 새 국민의당 대표가 8월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등 참석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여당에 협력과 견제를 버무려가며 줄타기를 해온 40석의 국민의당은 ‘안철수-호남 공존’ 실험을 다시 하고 있다. 당 안팎의 강렬한 반발 속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해 다시 지휘봉을 잡은 안철수 대표는 ‘선명 야당’과 ‘중도통합’을 내걸고 문재인 정부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안 대표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품격있는 보수까지 포괄하겠다”며 바른정당과도 연대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사정들에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인사 난맥상이 더해질 경우, 야권에 ‘반문재인’ 경쟁이 고조되면서 보수통합이니 중도통합이니 깃발을 내세워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려는 경쟁 또한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야권 재편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 통합은 홍준표 대표의 친박 청산 완료가 최소조건이지만, 친박계는 ‘홍준표 대표 사퇴’까지 요구하며 저항할 태세다. 설령 박근혜·서청원·최경환 출당이 이뤄진다 해도 국민들이 ‘이제 자유한국당이 바뀌었고, 보수가 합쳐도 되겠다’고 곱게 봐줄 리 없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나 연대 또한 두 당 안에 희망자들이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상승효과를 내기에는 역사적 기반이 너무나 달라서다. ‘여소야대’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무리해서 국민의당에 ‘흡수’의 손을 뻗을 이유도 없다. 야권을 자극해 보수통합 움직임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여권이든, 이를 견제하는 야권이든 당장의 ‘생존 셈법’이 아니라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로 승부를 봐야 하는 이유다.
황준범 정치에디터석 데스크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