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지난달 27일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비선 논란 관련 정윤회는 깃털에 불과하며, 진짜 실세는 정윤회의 전처 최순실이라는 설 확산.”
2014년 12월, 당시 추명호 국가정보원 국장은 휘하의 국내정보 담당관(IO)이 수집해 작성한 ‘최순실 실세설’ 첩보를 보고받았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박근혜 정부 실세로 떠오르며 세간의 관심이 온통 정씨에게 쏠려 있을 때였다. 같은 시기 추 국장에게는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은 최순실의 개인 트레이너 출신으로 행정관에 임명”됐다는 첩보도 올라왔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감에서 윤 행정관을 옹호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개인 트레이너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인 2013년 2월 부이사관급 고위공무원인 3급 행정관으로 청와대 제2부속실에 전격 채용되면서 그 ‘뒷배’에 관심이 쏠렸지만, 지난해 9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순실씨 추천 인사”라고 주장하기 전까지 두 사람 관계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지난해 9월 <한겨레> 보도로 최씨의 존재와 국정농단 사실이 불거지기 1년9개월 전,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 보수진영 전체의 몰락을 가져온 국정농단의 실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추 전 국장은 국정농단의 핵심인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에 청와대가 무리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사실 역시 관련 언론보도가 나오기 몇달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해 1월 추 전 국장의 책상에는 “BH(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케이스포츠 설립을 추진하면서, 교문수석실로 하여금 문체부가 재단 설립을 신속 지원토록 요청”했다거나 “전경련·재계는 미르재단에 이어 케이스포츠에 300억 출연 관련, 계속되는 공익재단 출범 자금을 기업에 요구하다 보니 불만 여론이 상당”하다는 첩보가 속속 올라왔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우병우 수석, 최순실 통해 민정비서관 입성 소문”(2016년 9월), “삼성전자, 최순실 관련 계좌로 280만유로 송금”, “삼성, 최순실 모녀에 280만유로 지원 관련, 책임 소재 두고 신경전”(2016년 11월) 등 언론보도를 따라가는 첩보가 올라왔지만 이미 기울어가는 정권을 살릴 수 없는 ‘뒷북’이었다.
정치 관련 국내정보 수집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때였지만, 추 전 국장은 이런 중대한 첩보를 보고받고도 추가 팩트를 확인하라고 지시하거나 관련 기관에 이첩하지 않았다. 이병기(2014년 7월~2015년 2월), 이병호(2015년 3월~2017년 6월) 등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르재단 설립 출연금 등에 불만을 나타내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관련 첩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한 직원을 ‘복장 불량’ 등의 이유로 지역의 지부로 1년 만에 재발령 내는 등 첩보의 ‘맥’을 끊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첩보 뭉개기가 스스로의 판단이었는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의 교감 아래 이뤄진 것인지는 추 전 국장 수사를 하게 될 검찰이 확인해야 할 내용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우병우 라인인 최윤수 국정원 2차장(2016년 2월~2017년 7월)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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