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 전 대통령에게 증원계획 보고할 때도 배석한 ‘키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보수언론에 유출한 의혹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군 사이버사령부 증원 관련 지시를 받은 뒤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과 주로 실무회의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김태효 전 기획관은 최근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수사의뢰를 권고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에도 연루돼 이명박 정부 군 사이버사령부, 국정원의 불법 심리전을 규명할 ‘키맨’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지난 7일 김 전 장관을 피의자로 소환해 15시간 넘게 조사했다. 조사에서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른 부대 증원에 관심을 갖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는데, 사이버사령부 증원만 독특하게 지시했다”며 “이후 증원계획을 한두 차례 보고했더니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승인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 전 장관이 이 전 대통령에게 증원계획 등을 보고하는 자리에도 김 전 기획관이 배석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 지시 뒤 김 전 기획관과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과 함께 사이버사령부 증원 회의를 진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사이버사령부는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7월 예년의 10배 가까운 79명의 군무원을 선발해 이 중 47명을 ‘530 심리전단’에 배치했다. 검찰이 확보한 관련 문건에는 ‘브이아이피(VIP·대통령) 강조사항’으로 “우리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 뽑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김 전 장관은 “브이아이피 지시 때문에 군무원을 무리하게 증원한 것은 맞지만, 당시 디도스 공격 뒤 국가의 주요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자신의 짐작을 말했을 뿐, 이 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증원 지시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군과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 개입을 규명할 핵심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김태효 전 기획관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대선 캠프 때부터 이 대통령을 도운 인물이다. 2008년부터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 파문으로 물러났던 2012년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외교안보 분야 실세로 통했다. 지난 6일 국정원 개혁위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언론 등에 유출한 사람으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관계자를 지목한 바 있어, 그가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 전 기획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공식적으로 가서 사실관계를 얘기하겠다. 언론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김 전 기획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열린다.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 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의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며 질문하는 취재진을 뿌리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찰 “국고손실 과정 우선 수사
비자금 관리방식 등도 순차 규명”
박근혜 추가 기소 불가피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과 관련해 남재준 전 국정원장도 청와대 지시에 따라 특수활동비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지난 8일 소환한 남 전 원장을 상대로 19시간 동안 조사를 벌였으며, 남 전 원장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지시로 매달 5000만원씩 특수활동비를 전달했다’는 내용을 진술했다고 한다. 이날 아침 7시50분께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남 전 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신문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답변했다”고 말했다. 남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으로 2013년 3월~2014년 5월까지 일했다. 남 전 원장이 받는 혐의는 크게 세 가지로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상납 △‘화이트리스트’ 단체 지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당시 수사·재판 방해 활동 개입 등이다. 앞서 검찰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을 통해 매월 국정원장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사실을 파악한 바 있다. 이 돈은 합법적으로 관리되는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전혀 별개의 돈으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금고에 따로 관리하며, 박 전 대통령이 비자금처럼 썼다는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남 전 원장이 국정원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상납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향후 박 전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장의 지시로 돈을 직접 전달한 이헌수 전 기조실장부터 현금을 직접 건네받은 ‘문고리 3인방’까지 모두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만 전 비서관 등은 ‘통치를 잘하기 위해 대통령이 쓴 것은 문제가 없지 않으냐’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가 예산을 사용 목적과 다르게 유용한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추가 기소 수순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의 본류는 국고손실 과정인 만큼 이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다만 비자금 관리방식 등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남 전 원장에 이어 오는 10일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소환해 특활비 상납 관련 부분을 조사할 방침이다. 다음 주께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 차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과 관련해, 그가 재직 중일 때 청와대에 건너가던 특수활동비가 기존 월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어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국정원장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비자금 사용처 등에 대해 확인작업에 나설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을 뇌물죄의 피의자로 보고 있어 조사는 필요하지만, 조사 방식이나 시기 등은 추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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