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하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는 “참여정부 들어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밤 늦도록 키보드를 치는 대통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
[분석] ‘키보드 치는 대통령’의 ‘댓글정치’를 어떻게 볼까?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홍보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에 잇따라 댓글을 남겨 화제다. 11월 들어서만 13건을 남겼다. 언론은 이를 대통령의 ‘댓글정치’라고 이름붙였다. 노 대통령이 댓글을 남긴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18일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인 국정브리핑(www.news.go.kr)에 댓글을 달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 대연정 등 정치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올리는 등 ‘온라인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윤태영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지난 3월21일 청와대 홈피 ‘국정일기’에 올린 글에서 “참여정부 들어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밤 늦도록 키보드를 치는 대통령”이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모니터 앞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시스템 대통령, 정보화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청와대 안에선 ‘키보드 치는 대통령’의 댓글정치는 일상의 한 풍경인 셈이다. 누리꾼들도 댓글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탈권위”라며 열광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노 대통령의 댓글을 청와대의 해석과 다르게 바라봤다.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중앙일보> 14일자 문창극 칼럼)거나 “그 바쁜 APEC 중에 인터넷 댓글 다는 대통령”(<조선일보> 20일자 사설) 등 사설과 칼럼을 통해 매섭게 비판했다. 한나라당도 “‘예스맨들과 하는 댓글놀이’, 지도자의 경박함”(전여옥 전 대변인)이라고 맹비난했다. 대통령의 댓글정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대통령 댓글정치 비판은 타당한가? 조기숙 홍보수석과 ‘소설 댓글’, ‘농담 댓글’ 논란
노 대통령은 8일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블로그 글에 “잘했어요, 그 소설 가만둘 건가요”라는 댓글을 올려 ‘소설 댓글’, ‘농담 댓글’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의 댓글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청와대 조기숙 홍보수석과 이른바 ‘소설 댓글’ 논란에서 비롯하였다. 조 수석은 지난 8일 청와대 홈페이지 안에 자신의 블로그 ‘이심전심’에 ‘애국에 관한 단상-워싱턴 출장 보고서’라는 글을 올렸다. 조 수석은 이 글에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인 고태성 기자의 기자칼럼을 문제삼아 “소설”이거나 “기자가 최소한의 성의만 있으면 취재할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을 가지고 이렇게 몰상식한 칼럼을 쓰는 것이 과연 애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고 기자는 5일 기자칼럼에서 조 수석의 워싱턴 출장과 관련해 “세미나 등에 미국의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불참해 김이 빠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조 수석의 칼럼이 게재된 지 3시간 뒤에 “잘했어요, 그 소설 가만 둘 건가요”라는 댓글을 올렸고, 조 수석은 다음날 오후 “대통령님 댓글로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같은 기사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대응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대통령-홍보수석 신문기사 비판 댓글 환담?’ 등의 제목을 달아 비꼬았다. 논란은 이어졌다. 고 기자는 11일자 칼럼을 통해 “이제부터라도 ‘소설에나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의 고위당국자다운 대응을 기대하겠다”고 비판했고, 한국일보는 14일자 가판에 조 수석이 고 기자에게 보낸 해명성 전자우편을 공개했다. 조 수석은 전자우편에서 “대통령의 댓글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질까 봐 농담으로 (내가) 다시 댓글을 단 것이 사건을 키웠다”고 밝혔다. 신문들은 이를 “대통령 댓글에 ‘농담 댓글’ 달았다니…‘농담한 건데’ 해명” 등의 제목을 달아 비판했다. 한나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여옥 전 대변인은 13일 논평을 내어 “청와대 홈피에서 비서진과 댓글놀이에 대통령이 정신을 빼앗길 때 어떻게 나라와 국민이 잘 먹고 잘살 수 있겠는가”라며 “‘예스맨들과 하는 댓글놀이’는 백성의 고통의 절규를 덮은 요란한 풍악을 울리게 했던 부덕한 군주의 언행보다 그 어느 하나 나을 것 없다”고 맹비난했다. 전 대변인은 또 “지도자의 경박함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 소설 제목 정도가 아니다”며 “지도자의 경솔함과 경박함은 민생을 지배하는 고통이며 민생을 관통하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조 수석의 블로그를 통한 댓글이 신문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정쟁의 중심에 놓였다. 민주노동당 김성희 부대변인도 대통령의 댓글이 탈권위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으나 “좋은 글, 홍보성 글에 대한 마음 편한 댓글이 아니라 노동자·서민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대통령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며 댓글의 내용을 문제삼았다. 11월들어 13건, APEC 정상회담 기간에도 ‘왕성’ ‘농담댓글’ 논란은 대통령의 ‘댓글정치’ 논란으로 증폭되었다. 노 대통령은 11월 들어 국정브리핑에 모두 13건의 댓글을 올렸다. 1일 교원평가의 필요성을 담은 ‘평가에 당당한 교사, 경쟁력 있는 학교 만든다’는 기사에 “대통령도 여기서 배우고 갑니다”라는 짤막한 댓글을 남겼다. APEC 정상회담 기간이었던 20일에는 <동아일보>의 내년 예산안 비판에 대한 반론 기사에 “자존심,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차분하게 실력으로 대응해 나갑시다. 그렇게 정부의 기사가 쌓이면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자!(아자의 오타인 듯)”라는 댓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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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매체로 키우려고 띄워주기?…“생산적 홍보로 전환해야”
노 대통령은 11월 한달동안 국정브리핑에 13건의 댓글을 달았다. 국정브리핑(www.news.go.kr) 사이트.
그렇다면 왜 노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 줄기차게 댓글을 올리는 것일까? 노 대통령은 지난 14일 모든 공무원에게 편지를 보내 ‘국정브리핑’을 애독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노 대통령은 편지에서 “적어도 공무원이라면 알아야 할 중요한 정책과 현안에 관한 주무부서와 우리 정부의 정확한 의견 정도는 알고, 언제 어디서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바로 이 곳(국정브리핑)에 그 답이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 5일 정부 토론회에서 “기존 매체에 맞서 대안매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국정브리핑 댓글은 ‘국정브리핑 띄워주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기성 언론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노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대안매체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가 “공무원들이 중요 정책 및 현안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정브리핑 읽기를 권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의도대로 국정브리핑이 ‘뜨는 매체’가 될지는 미지수다. 노 대통령의 댓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나 누리꾼들의 국정브리핑 방문수나 페이지뷰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이 댓글을 남긴 기사에는 예전같은 ‘열광’을 찾아볼 수 없다. 150여건의 댓글이 붙은 것이 고작이고 어떤 기사에는 대통령의 댓글 1개만 달랑 붙어 있다. 사이트 순위 전문기관인 랭키닷컴의 11월16일자 순위를 보면 전문신문분야에 등록된 국정브리핑의 전체 순위는 427위다. 일주일전 조사보다 31 계단이 상승했으나 하루 평균 방문자수는 3만8663명, 평균 페이지뷰는 18만3090명 수준이다. 같은 기간 주요 신문사이트의 평균 방문자와 페이지뷰의 10분1에도 못 미친다. 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는 “국정 홍보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 국민들은 청와대나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정책을 보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언론이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을 통해 정책을 흡수하는 것이 관행화 되어 있어 대안매체를 이슈화해서 대체한다는 발상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또 “국정 홍보는 좋은 정책과 아젠다를 만들어서 언론이 보도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에 사사건건 댓글을 다는 방어적 홍보가 아니라 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생산적인 홍보를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권위주의냐, 긍정적 권위의 실종이냐?
“댓글을 단 행위가 아니라 장소가 문제”
노 대통령이 지난 2월18일 국정브리핑(www.news.go.kr)에 댓글을 처음 달았을 때 ‘탈권위주의’라거나 ‘시대변화의 상징’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많았다.
대통령의 댓글이 가지는 ‘긍정의 힘’은 ‘탈권위주의’라는 데 모아진다. 누리꾼들이 “시대변화의 상징”이라며 노 대통령의 인터넷 참여에 ‘역사적 리플’, ‘인터넷성지’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인터넷정치가 전공인 이원태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대통령이 댓글을 통해 공무원과 대화하고, 국민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일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탈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노 대통령은 장·차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 더 많이 국민과 대화하고 정책을 홍보하라는 뜻에서 모범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공직자들이 국민과 대화하거나 접촉하는 새로운 형태”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댓글이 탈권위주의의 상징인 것은 맞지만 헌법적 지위로 보장한 대통령의 긍정적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황용석 교수는 “대통령이 댓글을 다는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댓글을 단 장소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황 교수는 “공무원들이 보는 인트라넷에 댓글을 올린다면 탈권위적 행위로 환영하고 박수를 받을 일”이라며 “그러나 국민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개인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댓글을 올리는 것은 국가의 최종적 의사결정자이자 집행자로서, 국민의 대표자로서 법적으로 부여받은 대통령의 긍정적 권위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 파격적인 모습을 통해 탈권위주의적 모습을 충분히 보여줬고 지나친 탈권위적 통치 스타일로 되려 불필요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탈권위와 긍정적 권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댓글놀이, 경망스럽다”는 비판은 타당한가?
“댓글을 하위문화로 보는 엘리트주의적 발상” 그렇다면 대통령의 댓글을 다는 행위에 대해 “댓글놀이, 경망스럽다”거나 “할 일이 그렇게 없느냐”고 비꼬는 전여옥 대변인이나 보수언론의 비판은 타당한가? 우선 전여옥 대변인 자신뿐 아니라 박근혜, 고건, 김근태 등 주요 정치인들이 온라인 정치를 보편화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의 댓글정치만 특정해서 비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게시판을 통해 쓰는 글도 대통령의 글 못지않게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고 “경망스럽다”는 평가는 마찬가지다. 또 댓글로 대표되는 인터넷문화를 하위문화로 규정하는 고상한 엘리트주의적 시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 대변인이나 보수언론의 비판에는 댓글문화에 대한 은근한 비아냥이 깔려 있다. 이원태 연구원은 “댓글을 다는 행위가 가볍고, 경망스럽고, 품위 없고, 저급하다는 인식을 노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려는 것”이라며 “인터넷 문화를 하위 문화로 취급하는 것으로 지금도 수많은 댓글을 달며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누리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이 연구원은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의 상위문화가 따로 필요하고, 인터넷을 매개로 상위와 하위문화로 구별하려는 엘리트주의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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