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운데)가 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우 원내대표 사무실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에게 내년도 정부 예산안 협상에 앞서 귤을 건네고 있다. 왼쪽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법정 시한을 넘겨 타결이 쉽지 않아 보였던 2018년도 예산안 문제는 더불어민주당(121석)과 국민의당(40석)이 손잡고 ‘주고받기’ 절충을 하면서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국민의당은 제3당 ‘캐스팅보터’로서 몸값을 높였고 민주당은 막판 국민의당에 정성을 쏟으며 예산안 지연 상황을 이틀 만에 종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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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민주당과 손잡으며 ‘실리’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핑크빛’ 기류는 4일 오전부터 더욱 도드라졌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조찬회동을 하며 의견 접근을 시도했다. 회동이 끝난 뒤 예산안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 사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김동철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편도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향후 선거제도 개편 등을 매개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예산안 연대’가 실현될 수 있다는 암시였다.
6일 전만 해도 예산안 처리를 앞둔 국민의당 분위기는 녹록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국민의당-바른정당의 연대·통합론 속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공무원 증원에 대해 “정부·여당이 원안을 끝까지 고집하고 합의되지 않으면 예산안을 부결시킬 수도 있다”고 하자 김동철 원내대표가 “우리도 그런 생각”이라며 호응한 것이다. 이러자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튿날 김동철 원내대표를 만났다. ‘호남케이티엑스(KTX) 공동정책협의회’였다. 두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무안공항을 경유해 전남 목포에 도착하는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예산안 부결’을 언급한 국민의당의 초강수가 호남 지역 숙원사업 해결로 이어진 것이다.
4일 여야 3당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굳건한 공조가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를 뚫고 합의 도출까지 이어졌다. 주요 쟁점이던 법인세 인상안과 관련해, 정부는 이날 기존의 과세표준 2천억원 구간 신설 및 세율 인상(22→25%) 대신 과표구간을 ‘3천억원 초과’로 상향한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를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받아들이면서 자유한국당을 무력화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공무원 증원 규모 역시 1만명대를 고집하던 민주당이 국민의당이 낸 9475명 증원의 ‘절충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진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당이 선도정당으로서 적절하게 대안을 제시했고, 큰 틀의 범위 안에서 타협을 유도해 핵심 쟁점에 타협이 나온 결과”라고 밝혔다.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이며 ‘실리’를 챙겼다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보편복지 원칙을 훼손하고 공무원 증원 규모 축소 등 일부를 내줬지만, 초거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핀셋증세’ 등 새 정부 국정철학 관련 예산을 지켜내는 데는 선방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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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잠정합의”라지만…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협상을 마친 뒤 당 의원총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내년에 3조원 이상은 못하도록 캡을 씌웠고, 누리과정 지원도 내년에 2조500억원 정도로 하고 내후년에는 그 이상은 지원할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재정지출 폭을 줄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날 의총에서 여야 합의문을 추인하지 않았다. 합의문 8개항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유보’라고 명시한 법인세 인상과 공무원 증원에 대해 당내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민주당은 끝까지 1만500명을 말했고 나중에 오후 4시에는 할 수 없이 1만명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국민의당이 9450명을 불렀고 (이게 최종) 수치가 됐다”며 “공무원 수 증가가 주먹구구식으로 가져와 흥정한 것이어서 받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으나, 의원들은 “그럼에도 ‘유보’라고 적어준 것은 동의한다는 의미 아니냐”고 지적했다. 의총 중간에 나온 이완영 의원은 기자들에게 “(정우택) 원내대표도 불쌍하다. 본인은 고군분투했는데 민주당이 국민의당과 짝짜꿍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에게 이날 합의를 “잠정합의”로 표현하면서 “5일 아침 9시 반에 전체 의총을 다시 열어 예산안을 받을 것인지, 받지 못할 것인지를 전반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석은 국회 재적의원(299명)의 과반인 161석으로, 자유한국당(116석)과 바른정당(11석) 등 나머지 야당을 합친 숫자보다 많아, 사실상 이날 합의안대로 본회의 처리가 가능한 상태다.
얼마나 급했으면… 4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발표한 ‘2018년도 예산 관련 3당 잠정 합의문’에 합의 시점이 2018년 12월4일로 적혀 있다. 합의문을 급히 작성하다 나온 실수로 보인다.
김태규 정유경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