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에서 주요 개혁법안들의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데에는 보수야당의 완강한 반대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일부 법안의 경우 여당 내부의 혼선도 법안 처리를 늦추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청와대의 ‘검찰개혁 1호’ 법안으로, 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제2 사정기관’을 신설해 비대한 검찰권을 견제하고 분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9월 일찌감치 공수처법 권고안을 내놨다. 공수처의 검사 수를 최대 50명으로 하고 국회 추천위원회가 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는 내용이었다. ‘슈퍼 공수처’라는 비판이 나오자 법무부는 한달 뒤 이를 대체하는 자체 개정안을 내놨다. 검사 수를 25명으로 줄이고 처장도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1명을 선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국회 통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법무부가 법무검찰개혁위의 권고안을 상당 부분 ‘톤 다운’ 했지만 자유한국당의 ‘공수처 신설 반대’ 당론은 요지부동이다. 홍준표 대표는 “야당에 공수처장 임명 추천권을 줘본들 하부 조직은 전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채울 것인데 검찰 개혁을 빌미로 국민을 현혹해 좌파 전위대 검찰청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음모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념적 대립이 더 극명한 법안은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다. 지난달 28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공개한 개정안은 국가정보원의 이름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게 핵심이다. 직무범위에서 국내정보 수집과 정치 개입의 근거로 악용된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 수집 개념을 삭제하고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행위도 엄벌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 간첩은 누가 잡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주에나 국정원이 발표한 개혁안을 기본으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어서, 연내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 5월 대선을 통해 여야가 교체된 뒤, 여야가 기존 입장을 뒤집으면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13명을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하고 이사회 3분의 2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당시 야3당(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162명이 공동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논의를 거부했다. 야당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교체가 시작되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11월에 해임되자 자유한국당은 갑자기 방송법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방송·문화방송·교육방송 이사회는 3개월 안에 새로 구성돼야 한다. 반면, 야당 시절 법 개정을 요구하던 민주당은 이사진 교체로 급물살을 탄 공영방송 정상화에 제동을 걸려는 자유한국당의 의도가 명확하기 때문에 방송법 처리 논의에 당장 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은 여당 내 이견으로 해를 넘기게 된 사안이다. 토·일요일에 하는 휴일노동에는 연장·휴일근로수당을 중첩해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는 것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의 여야 간사가 합의했다가, 민주당 내부에서 200% 지급 주장이 나오면서 논의가 멈춘 상태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12일 고위 당정청협의를 열어 내부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우원식 원내대표는 휴일노동 임금에 200%를 적용하되 사업장 규모에 따라 유예기간을 두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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