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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형으로 갈아타거나 좀비로 떠돌거나…‘권불 14년’ 친박 생존법

등록 2017-12-13 10:14수정 2017-12-15 11:51

“동대구역서 할복” 제 발등 찍기
‘좌장’ 최경환은 결백 주장하지만
권력에 있을 때와는 상황 달라져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 시간문제
‘맏형’ 서청원도 정치인생의 겨울

누님서 형님으로 갈아타고 ‘자기정치’
‘한때 실세’ 윤상현은 ‘친홍’으로
윤 “‘누나’ 부른 적 없어…홍과는 원래 친해”
김태흠·이장우 지역서 ‘각자도생’
“시점되면 ‘판단’해야할 때 올 것”
홍문종, 원대 경선서 달랑 35표

친박 수장 출당됐는데 ‘영생의 꿈’
대통령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극소수는 여전히 음모론 제기
김진태·박대출·조원진 ‘좀비화’
디오에이(DOA). ‘도착 시 사망’(Dead On Arrival)의 약자다. 친박이 응급실로 실려가고 있다. 중증외상이다. 여의도엔 ‘이국종’이 없다. ‘살려야 한다’는 이타적 제스처도 없다. ‘살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본능만 번뜩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에는 성공했지만 친박의 상징적 존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 제명 앞에 주춤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이 주최한 관훈토론회에서 “두 사람은 자연소멸 절차를 가고 있다”고 했다. 친박을 겨냥해 “암덩어리가 맞다”고 했다. 지난달에도 “자동사망 절차로 가고 있다”고 했다. 홍 대표가 꼽는 인생의 책은 <삼국지>다. 홍 대표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을 앞에 두고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삼국지>엔 삼십육계 중 하나인 차도살인계가 즐비하다. 당내 친박을 일소할 힘이 달리는 홍 대표가 검찰의 적폐청산 칼날을 내심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2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선 친박 중진 홍문종 의원이 3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정치사 최악의 정치세력으로 기록될 친박의 근황이 어지럽다. 일부는 회생이 어려워 보이고, 일부는 죽은 줄 모르는 좀비가 되어 여의도를 서성인다. 친박 부활을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가 되거나 화를 피해 지역으로 돌아가 후일을 도모하는 이들도 있다.

■ 자동사망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 최경환 의원의 말이 화제가 됐다. 지나치게 과격한 언사로 결백을 주장하는 그의 태도보다, 왜 자기 지역구도 아닌 ‘대구’냐는 힐난이 먼저 쏟아졌다. 이번에도 대구를 팔아서 뭘 해보려는 걸로 비친 거다. 서울에서 최 의원 지역구인 경북 경산으로 곧장 가는 케이티엑스(KTX)는 하루 두 편뿐이다. 동대구역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나온 말인데, 사람들은 쉽게 ‘대구=박근혜=진박’이라는 자동 연관검색 기능을 작동시켰다. 최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티케이 진박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실을 돌며 축사 지원을 하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12일 오후 최 의원의 체포동의 요구서가 국회로 넘어왔다. 두 차례 출석 거부 끝에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나타난 최 의원은 포토라인에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해서 저의 억울함을 소명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21일 박 전 대통령도 최 의원이 섰던 그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실세로 군림했던 최 의원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던 2014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 “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읍소와 경고를 섞은 도움을 구한 뒤 검찰 출석을 거부했다가 불체포 특권 뒤에 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은 이병기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이헌수 전 기조실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최 의원에게 특수활동비 전달을 승인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 의원 쪽은 돈을 받았다는 명목과 장소, 시간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임시국회는 오는 23일까지다. 체포동의안 보고와 표결을 위한 두 차례 본회의 일정이 잡힐 경우 무기명 투표에 부쳐야 한다. 정치권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무기명 투표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체포동의 요구서를 내준 판사의 시각과 정치인은 다르다. 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정치권의 시각은 이번엔 좀 다르다. 티케이(TK, 대구·경북) 쪽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최 의원을 옹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예상보다 반대표가 많이 나온다면 ‘자유한국당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고 몰아가려는 “민주당의 역공작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분위기는 냉랭한 편이라고 한다.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친박 맏형이자 이 의원을 측근으로 두고 있는 서청원 의원에게까지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아직은 할 일 많아서 또 출마한다고 전해라”라며 트로트 ‘백세인생’을 즐겨 불렀던 서 의원에게도 정치인생의 겨울이 오고 있다. 이 의원은 12일 검찰 출석을 거부하며 병원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 자기정치 “누님에서 형님으로 갈아탔다.”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 적이 있다는 얘기가 번지면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윤상현 의원은 한때 친박의 새로운 실세가 되는 듯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여야 협상 실무를 담당하는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그의 출판기념회에 사람이 몰리며 국회 경내 교통을 마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친박에서 친홍으로 갈아탔다고 한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이제는 누님 대신 형님을 부르고 다닌다더라”며 여의도의 염량세태를 꼬집었다. 윤 의원은 대통령 탄핵 이후 지역구와 상임위원회 활동에 집중할 뿐 당내 민감 현안에는 침묵하고 있다. 홍 대표가 ‘박근혜 출당’을 결정했을 때 김태흠·이장우 의원 등 19대 국회 ‘충청 친박 초선 돌격대’가 잠시나마 반발할 때조차도 윤 의원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김무성 죽여버려”란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져 공천 배제됐지만, 그간 갈고닦은 인천 남구을 지역구에 무소속 출마해 48%가 넘는 득표율로 무난히 3선에 오른 그다. 당 관계자는 “윤상현은 지역을 열심히 파고 있다. 윤상현이 정치의 흐름을 잘 본 것”이라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여의도를 떠나 지역구로 돌아가서, 지역을 보고 정치를 해야 오래간다는 것을 생리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 사람은 한선교 의원이다. 그게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친홍으로 갈아탔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홍 대표가 원내대표(2008년) 시절 원내부대표를 맡았었다”며 원래부터 친분이 있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윤상현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했던 초선의 민경욱 의원도 친박에서 친홍으로 갈아탄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자유한국당 인천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재선의 김태흠·이장우 의원 등도 거론된다. 이들은 친홍으로 갈아타는 대신 지역을 중심으로 ‘자기 정치’에 집중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으로 뭉쳤던 이들과의 도의적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당 최고위원인 김태흠 의원은 공개회의 자리에서 ‘홍준표 사당화’ 논란 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친박으로 불리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당 관계자는 “의원총회 등에서 ‘샤우팅’이 센 사람들은 여전히 친박 관계망에 있다. 그들도 어느 시점이 되면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했다.

■ 좀비친박, 친박영생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대권을 향하고 있는데 무슨 계파냐. 친박은 모두 물러나고 나도 당직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겠다.” 2011년 12월 최경환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친박 해체를 선언했다. 최 의원은 친박 해체를 선언한 지 4년여 만인 지난해 4월 또다시 친박 해체를 선언한다. “앞으로 당은 친박, 비박으로 패거리를 지어선 안 된다. 계파가 있으면 해체해야 한다. 이건 친박 해체 선언이라고 해도 좋다.” 친박 패권 공천 후폭풍으로 4·13 총선에서 패한 직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패배 충격에 “사실은 제가 친박을 만든 적은 없다”고 발을 뺐다.

친박 스스로 계파 해체나 2선 후퇴를 선언한 뒤 다시 살아난 것만 따져도 다섯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박근혜’ 이름 석 자가 사라진 뒤 친박의 생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홍준표 대표는 “친박 계파 수장이 출당됐는데 어떻게 계파가 있을 수 있느냐”고 했다. 친박 중진들도 “대통령도 계시지 않는다. 친박 활동에 앞장서고,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들도 다 흩어졌다”며 “자유한국당에 친박이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극소수는 ‘좀비 친박’이 됐다. 대통령 탄핵 사태의 핵심 조연인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 조작을 여전히 주장하는 김진태·박대출 의원 등이다. 김진태 의원은 자유한국당 태블릿피시 진상조사 태스크포스의 팀장이다. 대구 친박의 계보를 잇는 듯했던 조원진 의원은 ‘박근혜 무죄’를 신봉하는 대한애국당 대표다. 대한애국당은 각종 공식 입장을 낼 때 “거대한 정권 찬탈 음모”를 주장하는데, 조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씨’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으로 부른다. ‘박근혜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매주 토요일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을 주장하며 태극기를 흔든다.

친박의 후기지수는 없다. “친노든 친이든 친박이든 한 번 힘을 가졌던 권력이 지고 나면 다음 세력이 오게 돼 있다. 대통령까지 사라진 친박이 다시 권력을 잡을 일은 없다. 한식이냐 청명이냐, 시기의 차이일 뿐 자동 사망한다. 그게 권력의 생리다.”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거친 나이가 지긋한 당료는 권력의 사망진단서를 본 게 여러 번이라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친박의 탄생에서 쇠락까지

2012년 12월~2016년 4월
박근혜 당선 뒤 ‘최전성기’

친박(親朴, Pro-Park, 2004~2017)

따지고 보면 친박은 공룡이다. 작은 머리는 문재인 정부에, 커다란 몸통은 영남 지역주의에, 긴 꼬리는 망한 박근혜 정부에 걸친 채 죽어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한나라당 대표로 있는 동안 주요 당직에 기용했던 인사들이 그 기원이다. 이 기간 대표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이성헌, 당 사무총장 김무성, 대변인 전여옥, 정조위원장 이혜훈·유정복, 여의도연구소장 김기춘, 영남권의 유기준·주성영·곽성문, 부대변인 이정현·구상찬 등이다. 애초 10여명 정도로 출발했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거치며 서청원, 홍사덕, 허태열, 최경환, 홍문종, 김재원, 한선교 등이 합류하며 빠르게 세를 확장하고 단단해졌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親李, Pro-Lee, 2007~2012)라는 최상위 포식자 밑에서 김무성·김재원·유기준 등이 대거 공천 탈락했지만, 친박연대라는 돌연변이를 통해 높은 순도를 자랑하는 친박계 의원 60여명을 성공적으로 복제하며 이후 보수정당 내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다.

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2012년 12월19일을 기점으로 3년4개월 정도가 최전성기다. 친박 패권 공천의 후폭풍으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2016년 4·13 총선에서 패하고,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박 전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과 새누리당 분당,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박 전 대통령 구속기소를 거치며 급속히 개체수가 줄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친박을 바퀴벌레, 기생충 등 하등생물로 재분류하고 암덩어리, 고름 등 꼭 제거해야 할 고질병증으로 규정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호 당원 박근혜 출당을 결정한다.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인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친박 비리를 정면에서 다루기 시작하자 동교동계·상도동계처럼 계(系, Kingdom)의 지위에 오르기를 바랐던 친박은 사실상 멸종 단계로 접어들었다. 유승민 등 극소수는 독자적인 정치적 사고체계를 갖추며 ‘탈박 진화’에 성공했지만 하위 포식자인 친홍(親洪, 도쿠타이, 2017~?)과 경쟁하며 보수의 빙하기를 견뎌내야 한다.

친박은 21세기 한국정치사에서 보수정당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성공적으로 번성했으나 정치적 진화를 포기한 채 박근혜와 티케이(TK, 대구·경북)라는 오래된 숙주에만 기생하는 단세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운석 충돌에 버금가는 대통령 탄핵 충격으로 갑작스러운 대절멸을 맞이하며 14년 만에 여의도에서 자취를 감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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