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엇갈려 잡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정성호, 백혜련, 진선미, 박범계 의원, 김태년 정책위의장, 우원식 원내대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금태섭 민주당 의원,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 10월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이 ‘연말국회’ 최대 현안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6일 우원식 원내대표 등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를 초청해 점심을 함께한다. 얼마 남지 않은 임시국회 회기 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여서 법제화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
공수처, 문재인 정부의 존재 이유와 직결 청와대가 공수처법 통과를 당면한 과제로 삼은 이유는, 공수처 설치가 권력기관 개혁을 첫번째 공약으로 삼은 문재인 정부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지난해 촛불 혁명을 거듭 강조하면서 “권력기관의 개혁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선결과제”라며 “법무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방안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국회에 공수처 법안의 조속한 논의와 법제화를 당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2년4개월 동안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당인 민주당의 의석수(121석)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이번 임시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주요 의제로 삼아 다시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이 법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성 여론은 문 대통령의 지지도 보다 10% 포인트 가량 늘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강한 반대 의사를 천명하면서 공수처 법안이 개혁과 반개혁을 가르는 척도로 부상한 만큼, 입법을 더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보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공수처법 처리를 위해 특별감찰관 임명도 뒤로 미루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경우를 보더라도, 수사권이 없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며 “공수처가 설치되면 특별감찰관의 기능은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이라며 공수처법 통과가 먼저라는 뜻을 밝혔다.
■
민주, 자유한국당과 주고받기식으로라도…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는 박범계(민주당)·이용주(국민의당) 의원이 공동발의한 법안과 양승조(민주당), 오신환(바른정당), 노회찬(정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총 4건의 공수처법이 상정돼있다. 공수처장을 국회가 선출하고 수사검사의 수를 최대 25명으로 제한하는 법무부 안을 심사 과정에서 반영시키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닥쳐 지난달 29일 법안심사소위를 마지막으로 공수처 논의는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민주당 일각에서는 재적의원 (297석)의 5분의 3 이상(179석)을 모아 ‘패스트 트랙’ 방식으로 공수처법을 통과시키자는 구상도 나왔다. 민주당(121석), 국민의당(39석), 바른정당(11석), 정의당(6석), 민중당(1석)에 무소속인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모두 더하면 간신히 179석을 만들 수 있지만, ‘단일대오’를 이루긴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공수처법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더욱이 국민의당은 최근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로 내홍을 겪으면서 공수처 법안 처리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 “공수처법 처리를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주고받기식 협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자유한국당 “공수처 말고 특별감찰관 임명부터” 공수처 설치를 당론으로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와 여당은 현실성 없는 공수처 논의보다 장기간 공백 상태인 특별감찰관 임명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수처는 여야 간에 워낙 이견이 큰 사안이어서 남은 임시국회 기간 접점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당장 눈앞의 현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능성 없는 공수처를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다.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자유한국당)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공수처안을 정부·여당이 가져와야 하는데 여당과 청와대는 무조건 자신들의 공수처안이 금과옥조라며 받으라는 식이니 협상이 불가능하다.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선 대통령이 인사권을 내려놓으면 된다”고 했다.
한편, 홍 대표가 검사를 직접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는 것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대표는 지난 22일 대법원 무죄 확정으로 성완종 리스트의 족쇄에서 풀려나자 “검사들이 수사와 재판에서 증거를 조작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튿날엔 페이스북에 “나같은 사람을 수사할 때도 증거조작을 서슴없이 하는데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수사는 오죽하겠느냐. 정권의 충견으로 청부수사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검찰을 맹비난하면서도 공수처 등 제도적 측면의 검찰개혁이 아닌 ‘내부 감찰’ 요구와 ‘법적 대응’을 주장하는 데 그쳤다.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의원은 “공수처가 설치되면 (여러 수사 대상 중에) 여야 정치인만 보고 있을 것이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정치인”이라고 했다.
김보협 김태규 김남일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