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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남북한 올림픽 동시입장 감격 ‘평창서 다시 한번’

등록 2018-01-01 09:57수정 2018-01-01 14:13

[올림픽 휴전의 역사]
전쟁 자주 일어난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 앞 휴전이 기원

세계대전 여파 올림픽 3차례 취소
뮌헨 ‘검은 9월단’ 인질참사 비극

발칸반도 치닫던 1990년대
냉전시절 멈춘 올림픽 휴전 부활
잠시 무기 내려놓은 보스니아에선
어린이 1만명 예방접종 받기도

시드니 아테네 토리노 올림픽 때
남북 선수단 동시입장 성공사례
평창이 평화의 작은 씨앗 뿌릴까

2008베이징올림픽 코리아응원단이 지난 2008년 8월12일 오후 톈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독일의 여자축구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쪽 응원단 사이를 지나고 있다. 톈진/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08베이징올림픽 코리아응원단이 지난 2008년 8월12일 오후 톈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독일의 여자축구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쪽 응원단 사이를 지나고 있다. 톈진/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차라리 전쟁이 쉽다. 평화는 어렵다. 죽음과 삶이 그렇다. 오랜 세월 잊혔던 ‘평화의 제전’을 인류가 다시 깨워낸 이유다. 삶의 축제 올림픽이 열리는 때, 인류는 어떤 형태든 군사적 도발을 해선 안 된다. 분쟁도 테러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올림픽의 믿음이다.

■ 올림픽 휴전의 기원과 역사 ‘올림픽 휴전’은 기원전 776년 제1회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에서 유래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엘리스(현재는 일리아 현)의 올림피아(제우스 신의 제사를 지내던 곳)에서 신을 기리기 위한 경기, 곧 올림피아 제전을 열었다. 이 제전은 현대에 와서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겨울과 여름을 번갈아 가며 2년마다 열린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 여러 도시국가가 있었고, 국가 간 분쟁, 전쟁도 자주 일어났다. 제전 개최지인 엘리스에서는 대회 시작 전 그리스어로 휴전, 곧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를 선언했다.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 곳곳에서 오는 선수단, 관람객의 안전한 참가와 귀환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1개월 동안의 휴전 기간에는 모든 적대 행위가 중지됐으며, 사형 집행까지도 금지됐다. 휴전 기간은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나중에 3개월로 늘어나게 된다.”(김재홍, <근대 올림픽의 탄생>) 현대에 와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6일 동안을 포함해 개막 전 7일, 폐막 후 7일을 휴전 기간으로 한다. 392년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며 신 제우스를 섬기기 위한 올림픽은 393년 293회 대회를 끝으로 1100여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프랑스 교육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1892년 잦은 전쟁으로 유럽 지역에 팽배해진 긴장과 증오심을 극복하기 위해 올림픽을 되살리자고 주장했다. 1896년 올림픽이 부활했고, 국제기구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아이오시)가 대회를 총괄하기로 했다. 올림픽 휴전은 근대 올림픽이 부활한 지 약 100년 만인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 1993년 아이오시는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184개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서명이 담긴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다. 유엔은 총회를 열어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겨울, 여름 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에 올림픽 개최국이 유엔에 휴전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엔 가입국들은 총회를 열어 결의안을 심의·의결한다.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을 방문해 결의안을 제출했다. 지난 11월13일(현지시각)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평창 올림픽 개막 전 7일부터 평창 패럴림픽 폐막 뒤 7일까지 유엔 가입국은 올림픽 휴전을 지킨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됐다.

올림픽 휴전 결의안은 관행적으로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한다.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가 없으면 ‘박수를 치고 넘어가는 방식’(by acclamation)이다. 193개의 유엔 가입국은 올림픽 휴전 결의안에 대한 ‘지지 정도’에 따라 단순 찬성을 넘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개최국인 한국 정부가 제출한 결의안에는 모두 157개국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올림픽 휴전 결의안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결의를 준수할 ‘도덕적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 올림픽 휴전 결의의 계기가 된 발칸 분쟁 아이오시 차원에서 유엔 결의로 올림픽 휴전을 선언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냉전 붕괴와 발칸반도 분쟁이 있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미-소 중심의 냉전 구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대신 유엔 등의 역할이 커졌다.

이때 발칸반도에서는 민족, 종교 간 대립으로 전쟁이 났다.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연방공화국(유고 연방)에 속해 있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등이 독립을 선언하자 연방군은 이들을 연달아 침공했다. 전쟁은 보스니아, 코소보 등으로 퍼져 나갔다. 결국 유고 연방은 해체된 뒤 재편됐다. 자기 민족, 종교를 지키기 위해 독립하려는 세력과 이들을 막으려는 세력 간 다툼이 전쟁으로 번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오시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든 발칸반도 각국 선수단이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의 논문 ‘올림픽의 평화 및 통일 효과’를 보면, 199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독립 선언 국가들을 침공한 유고 연방을 제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제재 범위 안에 스포츠도 포함시켰다. 아이오시는 유엔에 제재 항목에서 올림픽을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결국 내전 중인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의 나라도 독립국가로서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이오시는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국제사회에 올림픽 휴전 준수를 촉구했다. 유엔에 올림픽 휴전을 건의했고, 1993년 유엔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재한 교수는 “이는 출범 100년을 1년 앞둔 아이오시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며 “1970년대 전후로도 유엔이 올림픽 휴전을 결의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미국-소련 등 강대국 간 냉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냉전이 깨진 뒤 유엔 등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과 더불어 발칸반도 등에서 국지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유엔과 아이오시 등 국제기구들이 올림픽 휴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올림픽 평화는 가능할까 “우리가 16일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국제올림픽휴전센터(IOTC)의 슬로건(구호)이다.

근대 첫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16년 만인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세계 5개 대륙에서 온 선수들이 참가하는 등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1·2차 세계대전, 미-소 냉전이 국제 평화, 나아가 올림픽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2년 뒤 열릴 예정이었던 베를린 올림픽이 무산됐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1940년 헬싱키 올림픽도 없던 일이 됐다. 독일군의 공습 때문에 1944년 런던 올림픽도 취소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막이 올라갔지만 그해 9월5일 ‘검은 9월단’이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극좌파 무장조직이 선수촌에 난입해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은 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서독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인질은 모두 숨졌다. 고대 올림픽은 1896년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했지만, 고대의 전통인 ‘올림픽 휴전’은 100년 가까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발효된 올림픽 휴전 결의는 성공적으로 지켜진 편이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릴레함메르 올림픽 기간 중 올림픽 휴전을 지켜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하며 직접 대표단을 이끌고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국제사회가 발칸 분쟁에 주목했고 전쟁이 멈췄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전세계에 올림픽 휴전을 촉구한 결과, 수단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인민해방군과 정부군 사이의 휴전을 성사시켰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에서 독립한 신생국가 그루지야와 이 지역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도 무력 충돌을 잠시나마 멈췄다. 당시 보스니아에서는 하루에만 어린이 1만명이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휴전을 깬 경우도 없지는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 옛 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야(현 조지아)는 친러시아계 남오세티야를 공격했고, 이에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분단 상태에 놓여 있는 남북한이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 깃발을 들고 동시 입장한 것도 올림픽 휴전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남북 선수단은 손을 맞잡고 함께 입장했다. 올림픽 기간을 전후로 한 일시적 휴전이 장기적·영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평화를 쌓다 보면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키울 수 있다.

한반도에선 긴장이 고조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한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도 격화하고 있다. 지구상 유일한 ‘냉전의 섬’, 한반도에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휴전’의 전통이 지켜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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