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왼쪽에서 두번째) 이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카피라이터 정철씨, 양 전 비서관, 개그우먼 김미화씨, 작곡가 김형석씨.
“대선 캠페인 할 때 워낙 생각이 비슷해서 척하면 삼천리, ‘툭’하면 호박떨어지는 소리처럼 서로 말 안 해도 마음이 잘 맞고 늦게 끝나도 대포 한 잔하는 맛에 힘든지 모르고 했는데 많이 그리워요. 타지에 있으니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낙관주의와 건강, 두 가지 부탁드릴게요. 몸 잘만들어두세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북콘서트 현장 객석에서 깜짝 등장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양 전 비서관에게 한 말이다. 양 전 비서관은 북콘서트 진행 중에 객석에 앉아있던 임 실장을 확인하고 무대에서 내려가 임 실장에게 향했다. 양 전 비서관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기 와도 되느냐”며 농담하듯 말하며 “엊그제도 임 실장과 폭탄주를 한잔 했다. 그날이 가슴 아픈 밀양 참사 직후였는데 임 실장이 과로로 어깨가 뭉쳐 옷을 못 갈아입을 정도였는데 괜찮아지셨느냐”고 물었다. 임 실장은 “(집권한 지) 8개월이 넘었는데 (양 전 비서관이) 잠깐 들어올 때마다 몇 번 코가 삐뚤어지게 술 한 잔씩 하곤했다. 많이 외로울 텐데 양정철 형이 씩씩하게 잘 견뎌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임 실장의 참석을 반가워하면서도 “임종석 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기해야하는 중책에 있는 분인데 빨리 돌아가서 대통령을 잘 보좌하시라”며 애써 임 실장을 서둘러 떠나보냈다.
이날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는 관객 3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양 전 비서관의 책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출간한 메디치미디어 주최로 북콘서트가 열렸다. 작곡가 김형석 씨가 사회를 봤고, 개그우먼 김미화씨, 카피라이터 정철씨,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 자문위원인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기자 등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정치권 인사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영선·민병두 의원, 김병기 의원, 양향자 최고위원과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탁현민 선임행정관 등이 참석했다.
양 전 비서관은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의 대선승리 후 백의종군하겠다며 해외로 떠났다. 이후 뉴질랜드, 영국,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를 떠돌다 지난 17일 출간한 저서 홍보를 위해 귀국했다.
양 전 비서관은 이날도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이 근처에 얼씬도 않고 공직에도 나가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을 재차 강조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거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제 스스로에게 다짐이기도 하고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이 9년간 정치를 하면서 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고 제가 중간에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정권교체 단심으로 도와줬지만 세상일이 그렇지 않지않은가. 제가 공직에 있으면 그분들에게 도리를 다해야하는 의무를 갚을 방법이 없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저는 권력에 갈 일이 없다, 저는 끈 떨어지는 사람이다라는 다짐이자 간절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양 전 비서관은 또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4년 동안 방랑자로 저를 비워놓고 끊임없이 부유하다가, 문 대통령의 퇴임 뒤에는 비서관으로 문 대통령을 지키는 게 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청와대 동지들에게 전할 조언이나 격려를 해달라’는 주문에 대해 양 전 비서관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는 있는데 이 자리에 기자들도 많이 와 있어 수위를 조절해야겠다”며 답변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 그는 “요새 지지율이 초미의 관심사인 거 같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원래 낙천적이고 멀리보는 분인 걸 잘 안다. 청와대에 있는 분들도 국민을 보고 멀리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참모들이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고 신념있게 뚜벅뚜벅 가길 바란다”는 조언을 내놨다.
양 전 비서관은 이번에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당황스럽다”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하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손을 잡자고 내미는 손이고, 문을 열고자 하는 분들에 대한 노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양비’라는 호칭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관으로 임명해줘 ‘양비’가 됐는데 노 대통령이나 권양숙 여사, 같이 일한 분들이 ‘양비, 양비’라고 불렀다. 노 대통령이 비서관직을 면직해주지 않고 떠나서 양비로 남았다. 저는 양비가 좋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자신의 책을 딱 3명에게 선물한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냐는 질문에 “책 머리말에 썼듯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께 꼭 바치고 싶어 권양숙 여사께 보내드렸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고 싶어 전해드렸다. 직접 가진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이 책을 쓰라고 가장 열심히 등떠밀어준 안도현 시인에게 보내드렸다”고 했다.
외국 생활은 어떻게 유지하는지에 대해 양 전 비서관은 “제가 졸업하면 외국 많이 나가는 대학을 나와서 미국 동부든, 서부든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후배들이 있어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주고 한다. 뉴질랜드에는 작은형이 있고, 영국에는 처제 내외가 살고 있다. 이렇게 동가식서가숙하고 있고, 참여정부 때 재산신고 한 거 보면 제가 모아둔 재산도 형편없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는 올해 계획에 대해 “설은 가족들과 보내다가 3월이 되면 외국에 나가서 지방선거 전후까지는 머무는 게 낫지 않나싶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이어 “지난 8개월은 정처없이 떠돌았는데 이번에 외국 대학에서 초청 비슷하게 와서 초빙교수, 초빙연구원으로 적을 두고 국제적 안목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지방선거 이후에는 청와대든, 정부든 한텀이 끝나고 한텀이 열리는거니까 불필요하게 저의 복귀설, 역할설이 잦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 상황 가서 봐야할 거 같다”고 했다. 그는 말미에 “이 모진 운명을 숙명이라고 생각해야할 거 같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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