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임정기념관 건립위 이종찬 위원장
“박근혜 정부에서 법인 등록도 안 해줬는데 이제 정부기구가 됐네요.” 이종찬(82)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이하 건립위) 위원장 위촉장을 받았다. 그가 2015년부터 회장으로 이끌었던 민간기구인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가 이제 국무총리실 산하 건립위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를 포함해 12명이 임기 2년의 건립위원으로 위촉됐다. 이 위원장을 2일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에서 만났다.
그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은 일제 강점기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냈다. 작은할아버지 이시영 선생은 임시정부 법무총장, 재무총장을 지냈고 1948년 정부 수립 뒤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2004년 출발한 임정 기념사업회가 내건 첫 사업이 기념관 건립이었어요. 임정 수립 100년이 되는 2019년에 다 끝냈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 보훈처가 질질 끌다가 늦어졌죠.”
2015년 추진위를 만든 뒤 그는 바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지원 약속을 받았다. 그렇게 2016년 예산 10억원을 확보했으나 보훈처는 그해 2천만원만 쓰고 나머지는 반납했다. 그는 2017년 다시 예산을 살리기 위해 여야 정치인을 두루 만났다. “(박근혜 정부 보훈처에서) 나에게 ‘모금해서 지어라’란 말까지 했어요. 그래서 ‘헌법 전문은 임시정부 법통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모금해서 하라니, 도대체 이 정부는 어디서 탄생했냐’고 면박을 줬죠.”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대문구 의회 자리를 기념관 부지로 내놓은 게 ‘격려’가 됐다고 했다. “의회 이전 비용으로 230억원이 든다고 하니 박 시장이 큰 결심을 했죠.” 문재인 정부도 기념관 건립에 의욕을 보이면서 큰 고비를 넘었다.
완공 시점은 2020년 8월로 잡고 있다. 건립 비용으로는 360억원이 책정됐다. 그는 기념관과 인접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보행 터널로 이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현재 연간 70만명이 서대문 독립공원을 찾아요. 대부분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형무소와 그 안의 고문 장면 등만 봐서 그렇죠. 기념관에서 임정 인사들의 투쟁 의지를 엿보면 희망이 생길 겁니다.” 그는 “터널과 승강기 설치로 동선을 잇는 데 120억원이 더 필요하다”며 “예산 확보에 정성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추진위를 맡은 뒤 서둘러 이화장을 찾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기념관은 이승만, 김구, 안창호, 여운형, 김원봉 등 진영을 떠나 임정에 관여한 독립운동가는 모두 품어내겠다는 뜻을 밝혔단다. ‘이승만 건국대통령론은 1948년을 건국절로 만들려는 세력이 만든 함정’이라는 말도 했단다. “이승만 박사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어요. ‘48년 건국절론’을 펴면 임정 대통령 경력은 빠집니다. 두 경력을 같이 말해야 한다는 내 말에 이인수씨도 동의했어요.”
지난달 31일 위원장 위촉받아
민간서 추진위 출범 3년 만에
총리실 정부기구로 재탄생
‘임정 101년’ 내후년 8월 완공
6월 정율성·한유한 ‘통합 음악회’ “조부 이회영 생가 복원했으면” 그는 임정 정신의 핵심은 ‘통합’이라고 했다. “임정의 4대 정신은 자주독립과 통합, 평화, 민주주의입니다. 임정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도 있었어요. 그런데 갈등 없는 곳이 어디 있나요. 정과 반을 거쳐 합이 되는 것이죠. 임정엔 합이 있었어요.” 이승만부터 월북한 독립운동가 김원봉까지 두루 품겠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념사업회의) 많은 분들이 김구 선생을 선호합니다. 이승만 박사를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내가 물타기를 합니다. 이 박사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러면 내 뜻에 따라옵니다. 내 의도가 불순하지 않고 뭔가 바로잡아가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죠. 김원봉 선생도 품어야 한다는 내 뜻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보수 우파인) 김동길 박사도 내가 기념관 일을 하는 것을 찬성하고 있죠.” 오는 6월 항일음악가인 정율성과 한유한 음악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여는 것도 통합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정율성은) 북 정권에 참여했지만 버림받았죠. 한유한은 우파였죠.”
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한 김원봉을 두고는 “양해받아야 할 사항”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원봉은) 김일성에게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어요.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어요. 우리가 받아줘야 합니다.”
그의 조부는 임정 활동보다는 무장투쟁에 힘을 쏟았다. “우당은 우리끼리 싸우다 항일 힘이 약화된다고 생각했죠. 항일 싸움에 집중한 것이지 임정을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조부가 주도해 31년 상하이에서 만든 (아나키즘 조직) 흑색공포단은 임정 산하 한인애국단과 같이했어요.”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국가 지원 얘기가 나오자 이런 말을 했다. “지방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사저는 복원되고 있지만 서울은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우당 생가가 명동성당 앞 와이더블유시에이 자리입니다. 이 땅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죠. 대신 남산 한옥마을에 복원하면 어떨까요. 그곳엔 친일 행각을 한 윤덕영, 윤택영, 민영휘의 고택이 있죠. (생가 복원으로) 나라 팔아 먹고 떵떵거리고 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당 같은 선생도 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요.”
그는 단재 신채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단재는 일관되게 우리나라를 사랑한 인물입니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의 연장선 위에 우리 상고사가 있습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이종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장이 조부인 우당 이회영 선생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임시정부 기념관 준공식 때는 고유제를 지낼 생각입니다. ‘안창호, 이시영, 이동녕 선생 등에게 이제 구천에게 더이상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고 알려야지요.”
민간서 추진위 출범 3년 만에
총리실 정부기구로 재탄생
‘임정 101년’ 내후년 8월 완공
6월 정율성·한유한 ‘통합 음악회’ “조부 이회영 생가 복원했으면” 그는 임정 정신의 핵심은 ‘통합’이라고 했다. “임정의 4대 정신은 자주독립과 통합, 평화, 민주주의입니다. 임정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도 있었어요. 그런데 갈등 없는 곳이 어디 있나요. 정과 반을 거쳐 합이 되는 것이죠. 임정엔 합이 있었어요.” 이승만부터 월북한 독립운동가 김원봉까지 두루 품겠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념사업회의) 많은 분들이 김구 선생을 선호합니다. 이승만 박사를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내가 물타기를 합니다. 이 박사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러면 내 뜻에 따라옵니다. 내 의도가 불순하지 않고 뭔가 바로잡아가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죠. 김원봉 선생도 품어야 한다는 내 뜻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보수 우파인) 김동길 박사도 내가 기념관 일을 하는 것을 찬성하고 있죠.” 오는 6월 항일음악가인 정율성과 한유한 음악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여는 것도 통합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정율성은) 북 정권에 참여했지만 버림받았죠. 한유한은 우파였죠.”
이종찬 위원장 뒤로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이 보인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최근 조부 흉상을 3D로 스캔해갔습니다. 오는 3월께 육사 박물관에 독립운동가 이회영 지청천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선생의 흉상을 세우고, 전시에도 광복군과 독립군 내용을 포함시킨다고 합니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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