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구 을) 2018년 새해 의정보고서
“귀가길 우편함에 똑같은 우편물이 한집도 빠짐없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확인해 보았는데 OOO의원의 의정보고서였습니다. (…)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이러한 행위를 중단해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
13일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에 ‘의정보고서’ 중단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지난 1월 초 광주에선 기초의원의 의정보고서를 불법선거홍보물로 판단해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도 있었으니, 집집마다 찾아드는 새해 첫 ‘의정보고서’가 반가운 손님만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의정보고서’는 지역민들에게는 지역구 의원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우편물입니다. 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주민등록 주소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단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선거가 있다면 90일 전부터 선거당일까지는 배포가 금지됩니다.) 현역 의원들에겐 가장 강력한 ‘홍보수단’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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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청와대에 올라온 의정보고서 관련 국민청원. 지역구 의원들의 의정보고서 배포는 공직선거법상 허용된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특히 연초에 의정보고서가 많이 뿌려지는 이유는, 지역구에 자신의 지난 한 해 동안 의정활동을 널리 알리고 설날 ‘밥상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정보고서를 통한 각 정당의 그 해 ‘전략’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총선이 있던 2014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설 의정보고서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대다수 등장했던 것과 달리, 다음해인
2015년엔 96개 중 51개에서 대통령 사진이 사라지고 김무성 당시 대표의 사진이 늘어나며 화제가 됐습니다. 2016년엔 더불어민주당에서 의정보고서 표지에 당명이나 로고를 넣지 않은 의원들을 두고
‘탈당설’이 일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의 의정보고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경남 김해 을) 의원의 의정보고서
그렇다면 집권여당으로서 2018년 첫 설을 맞는 더불어민주당의 2018년 의정보고서는 어떨까요? ‘단골손님’은 단연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의정보고서는 표지부터 ‘투대문’을 들고 있는 문 대통령과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을 내세웠습니다. 김경수 의원(경남 김해 을)의 경우 취임 첫날 문 대통령 내외와 함께 본관으로 들어서는 사진을 크게 의정보고서 한 면에 실었습니다.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도 의정활동 소개 페이지 첫머리에 대선 유세 때 모습과 문 대통령과 함께한 사진을 실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구 을) 의정보고서. 제1야당 대표로서 정세균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하는 사진이 실린 것이 눈에 띈다.
자유한국당 원내 정책위의장인 함진규 의원(경기 시흥 갑)의 의정보고서.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 갑)의 의정보고서. 동대구 고가교 준공, 포항 지진 피해지역 방문 등의 사진이 실려 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부산 북구·강서구 을)의 의정보고서. 2004년 시작됐고 2014년부터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송페스티벌(ASF)에 참가한 ‘뉴이스트W’와의 촬영 사진이 실려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의정보고서의 경우, 당장 지도부만 해도 원내대표인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구 을), 정책위의장인 함진규 의원(경기 시흥 갑)의 의정보고서엔 홍준표 대표의 사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1982년 중동 건설현장을 누비던 당시의 사진을 2면에 넣고, 지역예산을 반영한 표 위에 안전모를 쓴 자신의 모습을 크게 실어 ‘친 노동자’ 이미지를 부각했습니다. 함 정책위의장이 지난해말 낸 의정보고서도 지역 현안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홍준표 대표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대구 달서을이 지역구인 원내부수석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 을)의 의정보고서 10페이지였습니다. 홍 대표는 원외대표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지만, 최근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부수석인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 갑)의 의정보고서.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등과 함께 한 사진을 실었다.
꼭 수도권과 지역의 온도차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역구가 대구인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 갑)의 2018년 의정보고서 또한 지난 2년간의 특별교부세 확보 내용을 표지로 내세웠으며, 홍 대표의 사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결위원장을 맡은 김도읍 의원(부산 북구·강서구 을)의 의정보고서엔 홍 대표는 보이지 않고 한류스타 ‘아이돌’이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띕니다. 김 의원은 아시아송페스티벌 조직위원장입니다.
자유한국당은 14일 서울역 귀성 인사 때 귀성객들에게 나눠 준 2018년 설 정책홍보물에도 홍 대표의 사진을 쓰는 대신 포항 호미곶 사진을 썼습니다. 홍 대표의 이름은 딱 한번 언급되는 반면, ‘문재인’ 2번, 문 정권이나 문 실정 등은 36번, 모두 38차례나 등장합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2018년 설 정책홍보물에는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가 나란히 표지에 등장하며, 하단에 실린 추 대표의 인삿말 옆엔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도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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