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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마을정치의 힘으로 ‘세월호 이후’ 희망찾기

등록 2018-04-04 18:40수정 2018-04-05 11:33

[더 나은 사회]
6·13 지방선거 출사표 던진
마을공동체 활동가들

아이들 못 지킨 죄책감
‘가만히 있으라’에 분노 등
출마 결심 이유 제각각이지만

삶을 바꾸는 게 먼저라는 인식과
생활정치의 권력 교체에 ‘공감’
6·13 지방선거에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을 거치며 정치의 힘에 주목하게 된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다수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에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을 거치며 정치의 힘에 주목하게 된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다수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며칠 뒤면 세월호 참사 4주기다. 세월호가 준 충격은 무책임한 국가를 향한 분노를 거쳐 우리 삶이 변해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졌다. 삶의 터전인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졌다. 세월호와 ‘촛불’을 겪으며 정치의 힘에 주목한 마을활동가들은 6·13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촛불에서 시작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국가권력의 교체를 넘어 일상의 변화로 이어질지를 가늠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정치의 문을 두드린 마을활동가들의 도전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눈길이 쏠린다.

‘마을 후보’로 더불어민주당 안산시의원 후보 공천 신청을 한 이진경씨.
‘마을 후보’로 더불어민주당 안산시의원 후보 공천 신청을 한 이진경씨.
경기도 안산에는 세월호의 아픔을 딛고 성장한 일동마을 공동체가 있다. 이진경(48)씨는 이 지역에서 ‘주민들이 직접 추천하고 함께하는 마을 후보’로 안산시의원에 도전한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았던 일동마을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육아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자 방과후 교실 등 돌봄공동체를 만드는 시도가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내 아이 하나 잘 키우기를 넘어 더불어 잘 사는 지역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기 시작할 무렵,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더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마음들이 모여 4·16 동네촛불로 이어졌어요. 우리 삶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마을공동체로 모였고요.” 4·16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을에 협동조합 마을사랑방 카페를 만들었다. 4·16 기억모임, 4·16 공방 등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씨가 시의원 선거에 나서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로 한 마을에서 내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을 다 잃어버렸지만, 진정성을 갖고 함께하는 정치인은 찾기 어려웠어요. 결국 우리 손으로 우리의 정치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겁니다.” 이씨는 더불어민주당에 후보 공천 신청을 했지만 당내 기반이 거의 없다. 그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촛불을 살려가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묵묵히 노력해온 지역과 시민사회의 흐름을 민주당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감 후보로 나서려는 구희현씨.
경기도교육감 후보로 나서려는 구희현씨.
‘4·16 교육감’을 표방하며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준비하는 이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 출신이자 416교육연구소 이사장인 구희현(58)씨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반대하는데도 경기도교육청이 단원고 존치 교실을 이전하기로 한 것을 지켜보면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빚어졌는데, 정말로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씨가 보는 4·16 교육감의 역할은 “돈, 물질보다 아이들의 생명,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지향을 통해 경기도를 교육 변화의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서울 마포구청장 예비후보로 나선 유창복씨.
서울 마포구청장 예비후보로 나선 유창복씨.
서울 마포구청장 민주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유창복(56)씨는 성미산마을의 활동가이자 산증인이다. 마을에서 ‘짱가’라는 호칭으로 알려져 있는 유씨는 서울시에서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협치자문관을 지내면서 “행정의 힘, 좋은 정치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20년간 못 하던 일이, 행정이 움직이니 며칠 만에 움직여요. 단체장의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포에서는 과거에도 마포파티와 같은 지역정당, 무소속 출마 등 다양한 정치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꾀하던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와 촛불을 거치면서다. “(현실) 정치에 들어가 권력을 잡지 않으면 마을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유씨도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진짜 풀뿌리 정치를 위해서는 행정의 단위가 구에서 동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이야말로 쓰레기, 주차, 방과후 돌봄 등 일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이고, 대면적 관계가 일어나는 단위다. “구청장은 생활 단위인 마을, 동의 활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역할을 하면 된다.” 유씨는 구청이 각 동의 연방정부 같은 기능을 하는 ‘마을정부’를 제안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로 경기도 파주시의원에 도전하는 박은주씨.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로 경기도 파주시의원에 도전하는 박은주씨.
세월호 이후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 활동이 더 활발해진 경기도 파주에서는 지난해 말 ‘6·13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2018 파주빅뱅’(파주빅뱅)이라는 연대조직이 만들어졌다. 파주시장 후보들의 정책 검증을 거쳐 정책협약을 체결해 지방권력 교체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하는 후보가 민주당 파주시의원 비례후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지역에서 다양한 시민사회활동을 해온 박은주(51)씨가 비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씨의 지역활동 이력은 아파트에서 돌봄공동체를 모색하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에서 출발해, 2006~2010년 파주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제정 참여, 세월호 직후 출범한 시민단체인 파주시민참여연대 초대 대표까지 이어진다. 박씨가 지방선거 출마까지 결심하게 된 데는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이었다. “큰아이가 단원고 아이들 나이였어요. 내 묵인과 방조가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참여하고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박씨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기존의 정치적 관행을 바꿔보고 싶어요. 시민사회가 해왔던 일의 전문성을 시의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풀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주 광산구청장 선거에 도전하는 윤난실씨.
광주 광산구청장 선거에 도전하는 윤난실씨.
광주 광산구청장 예비후보인 윤난실(53)씨는 노동운동가로 진보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마을공동체 활동을 거쳤다. 이번엔 민주당 소속으로 지방정치에 도전한다. 진보정당 운동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자본과 국가에 대한 요구투쟁에 집중하는 노동운동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시민의 힘, 자치의 힘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마을공동체 활동에 주력했지요.” 하지만 공동체적 자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역시 정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작은도서관 하나 만들려면 주민들이 무진 애를 써도 쉽지 않지만, 정치를 통해 인구 몇 만 명 이상 지역에는 공공도서관이 반드시 들어서야 한다고 법과 제도로 만들면 쉽게 풀립니다. 자치와 정치의 두 날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윤씨가 광산구 공익활동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한 지난 5년은 마을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공동체 활동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3~4년 수행하자 변화가 보였다. 이전에는 “정치 말고 공동체 활동을 하자던 시민들이 이제는 정치 참여를 통한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정치를 재발견하게 되면서 “가치와 신념이라는 미래 정치보다 현실에서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책임 정치의 가능성” 쪽에 희망을 걸게 되었다.

그는 정치의 무게중심이 생활거점인 동과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광산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마을의 자치, 재정, 행정의 자립을 실현하는 마을 3권을 도입해 동과 마을이 지방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서울시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유정희씨.
서울 관악구에서 서울시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유정희씨.
서울 관악구에서 서울시의원에 도전장을 낸 유정희씨(55)는 ‘도림천 똑순이’로 불린다. 1994년부터 관악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환경단체, 그리고 서울대 총학생회와 함께 도림천 살리기 운동에 참여했고, 30년째 서울대 근처에서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인 ‘그날이 오면’을 운영해왔다. 유씨는 1998년부터 생활정치를 표방하며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구의원을 지낸 베테랑 지역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역에서 환경주민모임을 이끌기도 했는데 “참여한 주민들이 도림천 복개화사업 반대, 강남 제2고속도로 건설반대 등 굵직한 지역 환경현안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역의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며 생활정치의 주제로서 환경을 강조했다. “촛불과 대선을 통한 정권 교체는 한국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이야말로 지역정치를 제대로 세울 때라고 생각해요.” 유씨가 밝힌 포부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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