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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고담대구’ 부자는 많은데 일자리가 없다

등록 2018-06-05 14:35

[한겨레21]
모순적인 경제지표들 속에서 찾은 지역경제 침체의 진짜 이유
‘신천’이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천’이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엔 부자가 많다. 2017년 1월 국토교통부 자료 기준, 수입차 등록 대수가 서울 강남구(6만8420대)·서초구(4만5259대) 다음으로 많은 자치구가 대구 수성구(4만2152대)다. 대구 중구 9위(2만2229대), 달서구 10위(1만8257대)까지 합하면 전국 229개 자치구 가운데 외제차 수입 상위 10곳 중 3곳이 대구에 있다. 지난해 대구 지역 백화점 판매액은 2조1551억600만원으로 대형소매점 판매액 조사가 시작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점과 동시에 이 지역 백화점 매출 1위를 기록한 대구신세계의 영향이 컸다. 수성구 아파트값은 제2도시 부산의 부촌 해운대구를 넘어섰다. KB국민은행 시세를 보면, 5월18일 기준 수성구의 3.3㎡당 아파트 매매가는 사상 처음 1200만원을 돌파한 1201만원으로 조사됐다.

대구 경제 위기의 지표들

부자가 많고 씀씀이가 큰 대구에서 웬일인지 최근 ‘고담대구’라는 말이 회자된다. 영화 <배트맨> 속 ‘고담시티’처럼 암울한 도시가 됐다는 자조다. 부자들뿐 아니라 대구 전체적으로 봐도 2016년 1인당 개인소득은 17개 시·도 가운데 6위(1668만6천원)였다. 지역 총지출에서 정부 소비를 제외한 1인당 민간소비도 7위(1462만4천원)다. 희망이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대구에선 ‘고담대구’란 수사가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실제 <한겨레21>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5월25~26일 대구 성인 804명에게 한 여론조사에서도 열에 아홉이 대구 경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대구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매우 나쁜 상황”이 52.1%, “비교적 나쁜 상황”이 37.1%였다. 보수 성향(91.7%) 응답자와 진보 성향 유권자(89%)의 인식차도 별로 없었다. 특히 대구 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자영업자 가운데 93.9%(매우 나쁨 70.6%, 비교적 나쁨 23.3%)가 지역경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부자가 많고 소득·소비 수준이 높은 대구 경제를 빼도 박도 못하게 ‘위기’로 각인시킨 강렬한 경제지표가 하나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다. 지역내총생산은 특정 지역에서 해당 기간에 생산한 부가가치를 합산한 지표다. 이를 인구수로 나눈 게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다. 대구에선 “1992년 이후 2016년까지 25년째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꼴찌”라는 통계가 가장 악명 높다. 통계청이 2017년 12월22일 발표한 ‘2016년 지역소득(잠정)’을 보면,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2014만8천원으로 가장 낮았다. 지역내총생산 역시 49조7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국 평균 증가율 4.5%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낮다. 대구 경제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이 이 수치를 ‘고담대구’의 강력한 근거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지역내총생산이 높으면 지역경제가 활발하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구 경제에 활기가 없다고 볼 수는 있다. 다만 ‘생산지표’만 보고 ‘소비도시’ 대구의 경제 상황을 ‘전국 최악’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대구 시민 가운데 경북과 울산 등 타지에서 자동차나 조선업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그렇게 번 돈을 대구에서 쓰는 사람이 많다. 통계청 지역소득 통계 담당자는 “대구의 생산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소득이 많기 때문에 지역내총생산만 갖고 대구 경제가 침체됐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와 경북 등은 지역 간 생활 경계가 모호해서 대구 시민의 실제 생산 활동이 지역내총생산에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섬유산업 쇠퇴, 사라진 자부심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득과 소비 수준이 높으니 최하위 지역내총생산은 괜찮고 ‘고담대구’는 기우인가? 그렇지는 않다.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위기론’ 쪽에 기우는 것을 막연한 불안감으로 보기 어려운 지표들도 눈에 띈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이 작성한 ‘IMF 20년 대구·경북의 변화’를 보면, 경제위기 뒤 대구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997~2007년 2.5%, 2007~2015년 2.6%로 약화됐다. 1987~97년 대구 지역 평균 경제성장률이 6.1%였다. 물론 외환위기(IMF 사태) 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전반적으로 둔화됐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다만 1997년 우리나라 전체 경제성장률은 5.9%였고 2016년엔 2.8%로 3.1%포인트 하락했다. 대구는 외환위기 때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성장률이 더 많이 떨어진 셈이다.

대구엔 제조업이 없다. 섬유산업이 쇠퇴한 뒤 대구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이자 ‘3대 도시’의 자부심도 함께 잃었다. 대구는 ‘기형적’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로 제조업 비중이 낮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다. 2015년 기준 제조업 비중이 22.6%밖에 되지 않는데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거의 없고 99% 가까이가 직원 50명 미만의 작은 업체다.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서비스업인데 그 비율이 77.1%에 이른다. 대구 경제가 고전하는 배경엔 이런 근본적인 산업구조 문제가 있다.

섬유산업이 쇠락한 뒤 대구는 자동차·조선업 등 해안선에 위치한 대기업 중후장대 산업의 후방기지로 위신이 낮아졌다. 대구의 주력 업종은 2000년까지 폴리에스터직물(29.1%)이었으나, 2016년엔 자동차부품(15.8%)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제조업도 주로 자동차 2·3·4차 밴드업체(협력업체)다.

대구와 인근 경북의 자동차부품산업도 자연스레 울산과 부산의 완성자동차산업에 크게 의존한다. 대구경북연구원 자료를 보면, 대구는 경남과 울산에 각각 4.8%와 4.5% 생산 의존 효과를 보인다. 경북은 울산과 부산의 자동차산업에 각각 14.8%와 10.8%의 생산 의존 효과를 나타낸다. 대구의 산업구조는 자체 해결 능력이 없고 외부 의존적이기 때문에 외부적 요소에 민감하다. 지난해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보복으로 인한 자동차 수출 감소는 대구 지역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대구엔,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 비중이 낮다보니, 대구는 고용률이 낮고 실업률이 높다. 소규모 하청업체가 많아 임금수준이 인근 경북 지역 동일 업종 대비 80%로 낮다. 서비스업 비중이 높지만, 대다수는 1인 자영업자다. 직원을 고용해도 직업 안정성이나 임금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7년 전국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는데, 대구는 되레 0.6% 줄었다.

청년 고용은 제조업 생산 증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제조업 비중과 제조업 생산 증가율이 낮은 대구의 경제 상황은 한창 일할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이 5월11일 발표한 ‘서울 및 광역시별 청년 고용 현황 및 시사점’을 보면, 올해 1분기 대구의 청년(15~29살) 실업률은 14.4%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전국 평균치인 10.0%는 물론 대전 11.5%, 서울 10.1%, 부산 9.3%보다 훨씬 높았다. 대구의 청년 실업률은 2000년대 8~10%를 유지하다 2014년 이후 급격하게 높아지는 추세다. 2014년 1분기(14.3%)와 2016년 2분기(14.3%)에 14%를 넘어섰고, 올해 1분기 또다시 0.1%포인트 높아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구는 섬유산업이 부진한 가운데, 자동차·전기전자 산업의 생산 증가도 상대적으로 낮아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청년 고용이 악화된 대구·부산·서울에선 제조업 연평균 생산증가율이 각각 1%대를 기록했는데, 청년 고용이 개선된 대전·광주는 3%대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구 제조업 생산증가율은 1.2%에 그쳤다. 청년 실업률이 악화된 부산과 서울의 1.3%보다 낮고, 광주의 3.5%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일자리가 없다

2014년 9월15일 대구 무역회관에서 열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네 번째)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9월15일 대구 무역회관에서 열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네 번째)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자리 부족은 빈곤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과거 섬유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자산가와 법률가, 의사 등 부자가 많은 대구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도 많은 이유다. 2016년 12월 기준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비율인 수급률은 전국 평균 3.2%다. 대구의 수급률은 4.3%로 전국 평균보다 1.1%포인트나 높고,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4.7%)와 전남(4.4%)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임규채 팀장은 “부동산 가격 급등이나 신세계백화점 매출 증가 등 대구의 소비가 눈에 띄지만, 사실 대구 전체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거나 소비심리가 살아난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임 팀장은 “빈부 격차로 돈 많은 사람들이 고가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는 것뿐이고, 자본가들이 대구에 투자를 안 하고 돈이 순환되지 않는 게 대구의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낮은 경제성장률, 빈부 격차 등 ‘고담대구’의 원인을 ‘정치’에서 찾는 목소리도 높다. “여당은 원래 잡아놓은 물고기니 신경 쓰지 않고, 야당은 아무리 애써도 잡을 수 없으니 신경 쓰지 않는다.” 강민구 대구시의원 후보(더불어민주당)가 지난 3월 출간된 <대구,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다>에서 대구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라며 소개한 말이다. 역대 5명의 대구·경북(TK)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고,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세력의 ‘1당 독점’을 지지해준 결과가 ‘대구 경제 낙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자조다.

10여 년간 지역 갈등을 조장하다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영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대표적이다. ‘친정’ 대구에 신공항을 안겨주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대구 민심을 달래려 ‘대구공항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6·13 지방선거에서도 대구 최대 논쟁거리는 여전히 공항 이전이다. 김정모 <경북일보> 논설위원은 같은 책에서 “머슴이 일을 못하면 새경(임금)을 줄인다. 더 못하면 고용이 잘린다. 그러나 우리 지역(대구)은 일당 독점, 정치적 다양상 부족으로 딴판”이라며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지방분권이 강화돼야 한다. 귀족화하고 부패한 중앙 정치세력의 지배에서 지방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당 독점의 부메랑인가

대구의 경제 문제를 정치 탓으로만 돌리는 시각을 경계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재경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대구 경제지표가 전국 지표보다 떨어지는 이유는, 현재 뜨고 있는 화학과 반도체 산업이 없는데다 대기업이 없고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라며 “대구시가 추진하는 물산업 클러스터, 첨단의료복합지구 스마트시티 등이 자리잡으면 대구 청년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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