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를 예방한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 바른미래당 공보실 제공
“지역에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국민의당으로 선거를 치렀으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것 아니냐’다. 민주평화당이고 바른미래당이고 성적이 다 잘 안 나와서….”
호남을 지역구로 둔 민주평화당의 한 의원은 지난 15일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국민의당 뿌리에서 시작한 평화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번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을 1석도 얻지 못했다. 그나마 평화당은 기초단체장 5석을 확보했지만 바른미래당은 0석으로 고개를 들기 어려운 정도다. 이 의원은 “안철수가 자기 손으로 다당제를 일궈놓고 자기 손으로 닫아버렸다”고도 말했다.
두 당의 어려움은 선거 초기부터 예상됐다. 눈치 빠른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선거 막판 그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호남에서 유세를 하면서 “6·13 선거가 끝나면 엄청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라며 “안철수와 살고 있는 6인방이 돌아온다”고 외친 것이다. 6인방은 국민의당이 둘로 쪼개질 때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선택한 호남 의원들이다. 4선의 박주선·김동철·주승용, 재선의 김관영·권은희, 그리고 비례대표이지만 전남 여수 출신인 최도자 의원을 의미한다. ‘어게인(again) 국민의당’에 가까운 구상이다.
선거 뒤엔 더 적극적이다. 평화당 쪽은 언론에 “6인방과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며 연일 ‘군불때기’를 하고 있다. 이같은 ‘구애’는 평화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반영한다. 소속 의원이 14명인 평화당은 현재 교섭단체 구성(20명)을 위해 정의당(6명)과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바른미래당 호남 의원들과, ‘옛 국민의당 식구’인 손금주·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다시 모이면 정의당과의 연대가 없어도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해진다.
6·13 지방선거에서 유세중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박지원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어게인 국민의당’ 구상은 바른미래당 일부에서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선거 직전 “(바른미래당 중) 국민의당 출신들과 평화당 의원들이 다시 뭉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닥칠 수 있는 바른미래당 분열 상황에 대한 ‘대비용’에 가깝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바른정당 출신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보수 재건’을 외치며 자유한국당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경우 당 내부 호남 의원들이 결국 떨어져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비해 사전에 ‘물밑’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구상이 현실이 되기까진 남은 변수가 많다. 유 전 대표가 실제 ‘움직여’야 하는데, 그 앞에는 자유한국당의 혁신과 변화 과정이라는 더 큰 전제 조건이 놓여 있다. 또 국민의당이 쪼개질 때 생긴 앙금도 무시 못한다. 바른미래당으로 온 한 호남 의원은 “평화당을 (다시) 선택하는 것은 단 한번도 고민의 대상이 안 됐다. 박지원 대표와는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시 바른미래당을 택한 다른 의원은 “(분당을 겪으며)박지원 대표에게 다신 아는 척 하지 말자고 얘기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다시 국민의당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일부 있는데 단, 박정천(박지원·정동영·천정배)을 제외할 경우”라고 말했다.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들은 야권 재편 논의에서 마음대로 당적을 선택하지 못하는 점까지 감안하면 논의는 더 복잡해진다.
두 당의 지도부는 18일 이와 관련해 일종의 탐색전을 벌였다.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동철 의원이 조배숙 평화당 대표를 찾았는데 이 자리에서 조 대표는 “과거 헤어지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가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며 “여러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추구하는 가치나 노선이 대동소이하다”고 화답했다. 물론 김 위원장은 “양당의 통합이나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또 인위적인 정계 개편이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논의는 여건이 성숙되고 국민들이 동의해주실 때 할 사항”이라며 전제를 달았고, 조 대표는 “호남 정신과 평화의 가치, 이런 부분에서 (바른미래당과) 간극을 느꼈다”며 가시를 추가하는 걸 잊지 않았다.
두 당 사이 설왕설래하고 있는 ‘어게인 국민의당’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 경우 통합과 분당을 겪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민주평화당의 지난 몇 달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지방선거 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분란을 지켜보는 두 당도 덩달아 뒤숭숭한 분위기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