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재건축으로 대표되는 “집단적 개발 방식에 반대한다”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새로운 방식의 도시개발 형태를 찾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은 지난 2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박원순) 3기 시정 과제는 더욱 지속가능한 ‘사람 중심 서울’을 만드는 것”이라며 “도시재생을 통한 균형발전으로 서울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6·13 선거에서 완패한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그동안 한국당이 보수라기보다는 수구·냉전·극우적인 입장을 보여왔다”며 “유권자들이 그런 정당을 심판한 것이다. 한국당이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는 결코 혁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유권자들이 과거의 냉전·수구적 세력 대신에 평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열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표심으로 드러난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보수가 아니라 수구·냉전·극우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보수든 진보든 공유할 수 있는 상식적 기반이 있는데, 한국당은 그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걸 유권자들이 심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비대위도 만들고 사람도 바꾸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없다면 결코 혁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의회도 민주당이 석권하면서 서울시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시와 의회가 손발을 잘 맞춰서 일을 잘해 봐라’는 시민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다만, 지적한 바대로 (시의회의) 견제가 약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소수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협치하겠다. 녹색당, 정의당, 우리미래당 등과 하루빨리 만나 대화하고, 그들이 제시한 정책이나 공약 등도 수렴할 계획이다.”
―경기도지사, 인천시장도 민주당이 석권했다.
“서울, 경기, 인천은 하나의 생활권이자 ‘일상 공동체’, ‘호흡공동체’다. 수도권이 하나되면 시민 삶이 바뀐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남춘 인천시장과는 이미 선거과정에서 ‘원 팀’이 되기로 약속했다. 미세먼지, 교통, 주거, 청년일자리, 재난 대응 등 시민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행정구역을 넘어 협력할 방침이다. 특히 수도권 상생협의체 같은 것을 만들어 3개 시·도 공무원들이 상시 논의하고, 아젠다를 발굴하며 시도지사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방안을 제안하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용산 건물 붕괴사고를 계기로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에 변화가 생기나?
“저는 기본적으로 집단적 개발방식에 반대한다. 주택은 자기가 알아서 새로 짓고 수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구역을 정한 뒤 재개발에 찬성하는 주민이 조금이라도 많으면 바로 집들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왔다. 이런 방식은 굉장히 전근대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주민 51%가 재개발에 동의하고 나머지 49%가 반대해도 사업은 진행된다. (반대하는 사람이) 왜 자기 집에서 쫓겨나야 하나? 도시 빈민이나 중산층에게 재개발은 굉장히 불리한 제도다.”
―재개발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도시를 황폐화시키고, 가난한 이들과 스스로의 힘으로 겨우 집을 마련한 사람들의 삶을 짓밟는다. 낙후된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개발 방식으로 건설사들은 몇백억씩 벌어 가고 있다.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해서 임대하며 살아가려고 꿈꾼 이들의 집은 다 헐릴 수밖에 없다. 내가 시장에 취임했을 때 서울시내 뉴타운·정비사업 구역이 1300여개에 달했다. 이거 정리하는 데만 6~7년이 걸렸다. 이명박, 오세훈 전임 시장 시절의 유산이다. 서울시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식의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 지금 서울에 들어선 고층아파트가 몇십년 지나면 슬럼가로 변할 수 있다. 그곳에 100층짜리 아파트를 지을 건가?”
―대안은 무엇인가?
“지우고 새로 쓰는 재개발·재건축 대신,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재생 사업이 있다. 도시재생은 도심 공동화, 시설 노후화, 상권 침체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주민, 역사, 생태는 물론 마을공동체의 가치도 복원할 수 있다.”
―내세울 만한 사례는?
“현재 서울시 전역 131곳에서 ‘서울형 도시재생’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로7017’,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의 대표적 도시재생 사업이고, 저층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주거지 재생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양도성 주변의 22개 성곽 마을에 대한 재생 사업을 통해 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노후 주거지를 개선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모델을 만들었다. 부암동을 가보라. 과거 허름했던 마을이 도시재생을 통해 아름답게 변하고 있다.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도 그렇다. 6·25 직후에 지은 건축물이 많이 들어선 곳인데, 그 건축물들이 작은 카페, 박물관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박원순 3기 서울에서 꼭 해내고 싶은 정책은?
“1, 2기를 통해서 토건중심사회에서 사람중심사회로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반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변화를 더욱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가지 핵심 정책이 있는데, 첫번째로는 서울에서 마음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돌봄체계를 완성하겠다. 다음으로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카드 수수료를 낮추고 유급병가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마곡 스마트시티 등을 통해 지역형 혁신경제 모델을 꾸준히 만들어 갈 방침이다.”
―지금보다 더욱 보행 친화적인 도시 환경을 만들 계획이 있는가?
“사대문 안에는 주차장을 가능하면 짓지 않도록 유도해서 주차를 어렵게 만들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 승용차가 진입하기 힘들어져 시민들이 차를 갖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된다. 차로를 줄여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공간을 보행자와 자전거에 내주는 차로 다이어트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현재 2만대를 비치한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도 두 배로 늘릴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 차량 강제 2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세먼지가 몹시 나쁠 때는 비상저감조치로서 도입해야 한다. 올해 초 서울시가 미세먼지 대책으로 시행한 대중교통 무료운행 정책도 사실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승용차 운행을 억제하려는 조처였다. 지금 자동차 차량환경등급제도 준비한 상태다. 미세먼지가 나쁠 때는 배기가스 배출량이 많은 차량의 운행을 금지하려고 한다.”
―서울 사대문 안 혼잡통행료 도입 등 징벌적 방식은? 미세먼지 해결에도 도움이 될 텐데.
“고민해볼 순 있다. 사대문 안을 녹색교통진흥지구로 설정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조처가 가능하다. 차량 최고속도는 지금보다 더 낮게 제한해야 한다.”
―서울 대중교통요금 인상 계획은?
“고민이 깊다. 물가상승이나 대중교통 운영에 따른 서울시의 재정적자를 고려하면 당연히 인상해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의 적자폭이 1조원 정도 된다. 그러나 요금인상은 시민생활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시장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두가지를 꼽으라면, 대중교통 요금인상 문제와 재개발로 헝크러진 도시를 정비하는 일을 꼽겠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김경욱 김미향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