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기무사령관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기 위해 발언대로 나오고 있다. 맨 앞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군기무사령부의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을 둘러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불투명한 처리가 또 도마에 올랐다. 송 장관은 앞서 공개된 기무사의 8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뿐 아니라 이번에 새로 공개된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도 3월 기무사의 보고를 받고도 청와대엔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20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67쪽짜리 기무사 문건을 송 장관에게 보고했는지 묻자 “지난 3월16일 8쪽짜리 문건과 함께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장관님께 보고드릴 때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보고하는 경우는 없다. 관련 문건을 다 보고드렸다”고 했다. 송영무 장관도 “보고를 받았다. (다른) 회의가 있어서 (기무사령관에게) 놓고 가라고 해서 놓고 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송 장관은 그동안 이 문건을 혼자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문건을 “국방부를 통해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이 문건은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찾아내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단도 이날 자료를 내어 “16일 가장 중요한 수사 단서인 유에스비(USB·이동형 저장장치)를 확보했다. 확보된 유에스비 분석을 통해 계엄 관련 문건 및 세부자료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논란이 이어지자 6월28일 기무사의 67쪽짜리 문건을 1장 분량으로 요약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6월28일은 보고받은 지 석달 만에 국방부가 기무사의 8쪽짜리 문건을 청와대에 늑장 보고한 날이다. 이날 8쪽짜리 문건을 있는 그대로 전부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67쪽짜리 문건은 굳이 1장 분량으로 요약해 보고했다는 것이다. 송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기무사의 계엄 문건과 관련해 군 내부에서 오간 모든 보고와 문서를 보고하라”고 지시한 뒤에도 이 문건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셈이다. 송 장관이 계엄 문건의 정치적 민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판단한 또다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이 문건에 대해 “처음부터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인식했다. 기무사가 이런 문건을 작성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 송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해, 송 장관과 대조를 이뤘다. 이 사령관은 이 문건을 알게 된 배경과 관련해 “작성자가 자진 신고했다”고 말했고, 어디까지 보고됐는지에 대해선 “기무사령관 이상이라고 보고 들었다”고 말했다. 기무사가 문건을 유에스비에서 작성하고 보관한 것에 대해선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청와대 보고 누락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계엄령 문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엄청난 고뇌를 했다. 패럴림픽이 막 끝나서 남북회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였고 정상회담도 앞에 있었고 6·13 지방선거에 폭발력이 너무 큰 것이어서 염려됐다”며 “(그 판단에) 후회 없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해명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이 여야 간사 합의를 거쳐 67쪽짜리 문건 제출을 요청했으나, 송 장관은 “2급비밀이다. 여야 합의가 있으면 열람은 할 수 있다”고 버텼다. 법사위는 청와대에 공문을 보내 문건 제출을 요구하기로 했다.
김태규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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