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권에서는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정의당은 오래전부터 불공정한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했고,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도 여야 협치의 전제조건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내걸었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올해가 선거제도 개혁 적기”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6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더 힘을 실었죠.
현재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 선거에서 1표라도 더 얻은 1등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에 정당에 찍은 득표율을 토대로 비례대표 의원을 추가로 나누지만,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어 보완효과가 낮습니다. 이로 인해 낙선한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표심이 상당 부분 버려지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정당득표율보다 의석수를 더 가져가는 정당도 있고, 의석수에서 손해를 보는 정당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가져가고(비례성), 그래서 정당에 대한 민심의 지지를 정확히 반영(대표성)하는 국회가 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입니다.
■ ‘비례성’이 훼손되는 현행 선거제도
2년 전 치른 20대 총선 결과를 보면 정당득표율로 드러난 민심과 실제 선거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득표율 25.54%→실제 의석점유율 41.0%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당득표율 33.5%→실제 의석점유율 40.67%
정의당: 정당득표율 7.23%→실제 의석점유율 2.0%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정당득표율로 보면 전체 300석 가운데 각각 76석, 100석을 얻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각각 123석(+47석), 122석(+22석)을 확보했습니다. 반면 정의당은 정당득표율대로라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까지 구성할 수 있는 21석을 얻어야 했지만, 실제 6석을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거대 양당에는 유리하고 소수정당에는 불리한 선거 결과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목소리 커
정치권에선 민심을 왜곡해 반영하는 현 선거제도를 보완할 방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요하게 거론하고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유권자가 지지 정당에 찍은 정당득표율에 맞춰 의석수를 각 정당에 할당한 뒤, 먼저 지역구 당선자로 정당에 배정된 의석수를 채우고, 그래도 모자라면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충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당득표율과 실제 의석수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제도’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한 방식인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국회에 권고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2012년 대선과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은 2년 전 총선에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공약했습니다. 이 제도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전국을 서울권, 영남권, 호남권 등 몇몇 ‘권역’으로 분할해서, 그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을 실시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권역의 전체 의석수가 50석이라고 했을 때, ㄱ정당이 총선에서 40%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면, 우선 ㄱ정당에 20석(50×0.4)을 배정합니다. ㄱ정당이 서울에서 지역구 후보 8명을 당선시켰다면, 나머지 12석은 ㄱ정당의 서울권역 비례대표 명부에 오른 1~12번의 후보에게 비례대표로 채워주게 됩니다. 선관위는 전국을 서울, 영남, 호남 등 6개 권역으로 나눠 시행하자고 권고했고, “지역주의 완화, 유권자 의사의 충실한 반영”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20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다면?
만약 2년 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선관위는 현행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 비율을 ‘지역구 200석-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한 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방식을 적용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실제 선거 결과보다 각각 21석과 14석이 줄어들고, 정의당은 실제 6석보다 17석을 더 얻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이 정당득표율에 좀 더 가까운 결과라는 겁니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 불공정한 현행 선거제도를 개선할 수 있고, 나아가 여성·노동자·청년·농민 등 그간 과소 대표돼온 이들이 지금보다 국회 입성이 더 쉬워지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의석수 확보를 위해선 정당득표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회가 정당의 실력을 보여주는 ‘정책 중심 경쟁’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큽니다.
■ 쟁점들…의원정수 확대, 의석 비율 등
선거제도 개혁은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화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루게 됩니다. 주요 쟁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입니다.
현재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제도 도입의 열쇠는 거대 양당이 쥐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선 연동형 비례제가 사실상 당론이지만, 민주당은 정개특위 가동 이전에 다시 입장을 재정리할 예정입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연동형 비례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 의견이 한데 모아진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행 선거제도를 고치는 데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또 다른 쟁점은 의원정수 확대 여부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현재 300명인 의원정수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려면 253석인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다른 방법은 지역구 의석수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죠. 하지만 의회 불신이 큰 국민들이 의원정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에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의원정수를 353명(지역구 253석 유지,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증가)으로 늘리되, 기존 300명에게 주는 세비(월급)를 353명이 나누는 방식으로 국민의 이해를 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5.38:1인데, 이를 2:1이나 3:1 등 어떻게 조정할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할지 ‘전국 단위’로 할지도 쟁점입니다. 또 지역구 선출 방식의 경우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 선출),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실시하는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로 갈지를 두고도 격론이 예상됩니다. 김규남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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