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역구도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조장한 지역감정은 ‘3김 시대’(김영삼·김대중·김종필)를 거치며 ‘지역주의’로 강화됐고, 1988년 13대 총선부터 시작된 소선거구제는 이를 더욱 고착시켰다. 특정 정당이 영남·호남·충청 등 지역 텃밭에서 의석을 싹쓸이하는 현상에까지 이른 것이다. 비례성 강화뿐만 아니라 지역구도 완화가 선거제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이유다. 지난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 지역구 낙선자, 비례대표로 구제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현행 총선에선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나설 수 없지만,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모두 후보로 나서는 ‘이중등록’(중복 입후보)이 가능하다. 석패율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1996년 중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 선출)에서 최다 득표자 1인만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전환하면서 현역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이 떨어졌는데 석패율제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부활의 기회를 줬다.
석패율제는 우리나라에서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2011년 4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 후보자’라는 이름의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내면서 석패율제 논의를 공식화했다. 선관위 안을 보면, 복수의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의 같은 순번에 동시에 올리고, 지역구 낙선자 중 석패율이 가장 높은 1인을 그 순번의 비례대표 당선자로 확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상대 정당의 텃밭에서 꽤 선전하고도 아깝게 떨어진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로 살릴 수 있게 된다. 단 광역단체 단위에서 3분의 1 이상의 지역구를 획득한 정당에는 이 제도를 통한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석패율 계산은 일본 방식이 단순하다. 지역구 낙선자의 득표수를 해당 지역구 당선자의 득표수로 나눈 뒤 100을 곱하는 방식이다. ㄴ 후보가 4만표를 얻었고 당선자가 5만표를 득표했다면 ㄴ 후보의 석패율은 80%가 된다. 만약 ㄹ 후보가 3만5천표를 얻고 당선자가 4만표를 득표했다면 ㄹ 후보의 석패율은 87.5%다. 어떤 정당이 두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 2번에 동시 배치했다면, 석패율이 높은 ㄹ 후보가 비례대표로 당선된다.(표 참조)
중앙선관위가 제안했던 석패율 계산은 다소 복잡하다.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의 득표수를, 그 지역구에서 3% 이상 득표한 후보자들의 득표수 평균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하는 방식이다. 1위 득표자에게 얼마나 근접해 득표했느냐보다 3% 이상 유효 후보자들의 평균 득표수와의 비율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석패율제는 ‘험지 지역구’에 도전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살려내 특정 정당의 텃밭 독식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로 돌리면서 정치적 소수자나 직능별 전문가를 충원하는 통로였던 비례대표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 비례대표제 배분은 권역별?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 단위로 쪼개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지역구도 완화 방안으로 거론된다. 권역별로 배분된 비례대표를, 해당 권역에서 받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누면 상대 당의 텃밭에서도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선관위가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안이 연동형을 기본으로 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선관위가 설정한 6개 권역은 △서울 △인천·경기·강원 △대전·충청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호남·제주권이다. 비례대표는 권역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된다. 당시 선관위는 서울에 20석, 인천·경기·강원에 32석, 대전·충청과 대구·경북에 각각 10석, 부산·울산·경남에 16석, 호남·제주에 12석(총합 100석)의 비례대표를 배정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현행 47석에 불과한 비례대표가 2배 이상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배분하는 방식은 전국 조직이 탄탄한 거대 정당에 유리하고 당세가 약한 소수 정당에는 불리하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은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정한다면 비례대표 배분 단위(전국통합 또는 권역별)는 중요한 논점이 아니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방점을 찍고 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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