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부고발의 역사’를 만든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이 기획재정부 근무 시절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을 폭로한 신재민 전 사무관을 ‘인신공격’하는 일부 여당 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폭로 내용의 진실성·공익성을 차분히 따지지 않고 개인을 공격하는 식으로 대응하면 향후 공익제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여야를 불문하고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느 정권이든 내부고발은 있을 수 있다. 사회 흐름으로는 내부고발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역할은 제보 내용이 진실인지 공익에 맞는지 따져보는 것”이라며 “일반인도 아니고 공당의 국회의원이 고발자 개인의 인격을 거론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잠재적 내부고발자들이 이 사태를 보면서 ‘내가 고발하면 인격적으로 당할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며 “내부고발은 상식과 원칙의 문제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좌우, 여야로 나뉘어 정쟁의 수단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달 29일부터 잇따라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케이티앤지(KT&G)’ 인사에 개입했고, 국가채무 부담을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려고 2017년 말 ‘적자 국채 발행’ 및 ‘국채매입 취소’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나오는 정당한 의견 제시”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주요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정부 부처에 제시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차분하게 설명하기보다 신 전 사무관 개인을 공격하며 폭로 내용과 의도의 진실성을 깎아내리는 데 집중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서면브리핑으로 “꼴뚜기(김태우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원)가 뛰니 망둥이(신 전 사무관)도 뛴다”고 표현했다. 이날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서영교·박범계 의원 등은 ‘신 전 수사관이 돈 벌려고 폭로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손혜원 의원은 2일 밤 페이스북에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 방법을 택했다. 계속 눈을 아래로 내리는 것을 보면 지은 죄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라며 과거 행적이 수상하다는 추측성 글을 남겼다. 3일 신 전 사무관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해당 글은 삭제됐다.
이지문 이사장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과 방식에 대해 “그 말이 사실이라도 공익제보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 부분은 차분하게 확인해야 한다”라며 “그분은 감사원이나 권익위원회를 통한 신고를 하지 않아서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제보자는 아니다. 제보의 공공성·진실성 등이 있지만 법적 보호가 안 되면 향후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다만 “신 전 사무관이 처음 폭로할 때 특정 학원을 유튜브 영상 배경에 넣어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잘못됐다.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발언을 입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잠재적 공익제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혼자 결정하지 말고 시민단체나 변호사 등과 충분히 협의해 공익제보로서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1992년 군인 신분으로 군 부재자 부정 투표를 폭로했다. 이후 국가청렴위원회 전문위원,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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