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한겨레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소엔 ‘직격’ 인터뷰 안 하셨나?”
질문이 좀 까칠해도 이해해달라는 요청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응수했다. ‘직격 답변’을 작정한 듯, 서울시장실 큰 탁자에 마주 앉아 날 선 질문을 받아쳤다. 제로페이 성과에 대한 비판 여론에 “그건 어불성설”이라고 반격했다. 도로 위 인공부지에 공공주택을 짓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지도자에겐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며 세계 주요 도시에선 이미 ‘명품’ 건축의 대세로 자리잡았다고 역설했다. 지난 7년간 마을공동체, 옥상양봉, 서울로 등 수많은 정책이 반대에 부닥쳤지만 결국 시대적 흐름이 됐다면서 “(반대는) 리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하락 추세인 지지율, 특히 국가지도자로서 자질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다 알면서 왜 묻느냐”고 말을 잘랐다. “예의가 아니다” “내가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인데 봐주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한겨레> 창간 초기인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비상근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진솔했다. “아직 유능한 정치인은 못 되는 것 같다”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고 ‘약점’을 인정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정치 입문엔 “도대체 국민을 어떻게 보는 거냐”며 “대통령의 실패는 총리의 실패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17일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이뤄졌다.
도시양봉·서울로 등 반대 극심했던 정책, 지금은 대세
정책 설득 잘하다보니 시민들은 내가 뭘 했는지 잘 몰라 ―성패를 평가하기 아직 이르다는 건가요? “그럼요. 결제 시스템의 엄청난 전환이 이뤄지는 거잖아요.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한 시범사업 기간에 그걸 갖고 공격·비판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요, 처음 신용카드가 정착하는 데도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몇년의 세월이 걸렸거든요. 시작되자마자 모두가 다 쓰는 것으로 서둘러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가장 간편하고, 미래로 가는 확고한 추세이기 때문에 이건 대세가 될 수밖에 없어요. 워낙 신용카드 시스템이 정착돼 있었기 때문에 저항도, 여러 어려움도 있는 게 당연한 일인 데 너무 과대(비판)하는 것은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려는 태도 아닌가요” ―지난달 26일 공공주택 8만호를 도심에 공급하겠다며 북부간선도로 위 인공부지에 주택을 짓는 대책을 내놨어요. 발상의 전환이긴 한데 안전과 소음·매연 우려 때문에 주거권과 생활인권이 보장 안 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는, 미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적어도 지도자에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도로나 철도 위에 복합개발하는 것은 외국이 다 하고 있는 일입니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하고 제가 친해요. 지난번 자기 방에 데려가더니 설계도를 보여주며 자랑하는 게 딱 하나, 그게 바로 ‘레앵방테(리인벤터·재발견) 파리 프로젝트’예요. 이미 100개 정도가 진행되고 있어요. 단절된 도로나 철로 위에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명건축물이에요. 서울도 공간개선단이라는 팀이 있는데 이미 10개 정도 준비해왔어요. 도심 안 명품 건축 프로젝트죠. 지난번 제시한 중랑 신내 나들목(IC) 부근에 2500가구를 넣겠다는 건 그런 측면에서 획기적인 거죠. 늘 제가 말씀드리는 새로운 현상, 새로운 실험, 새로운 혁신에는 어떤 기존의 관념, 우려와 불안과 반대와 저항이 있기 마련이에요. 저는 만 7년 동안 그런 수많은 일을 겪어왔어요.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심지어 옥상양봉에 서울로까지, 반대가 얼마나 심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몇년이 지나면 다 사회적, 시대적 대세가 됐죠. 이게 다, 리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죠. 해보니까, 반대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사회적 합의나 이해관계자를 잘 설득해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제가 뭘 했는지 잘 몰라요.” ―억울하신가요? “억울하다기보다, 요즘은 제가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게 필요하구나 생각합니다. 저를 유능한 행정가라고들 하는데 유능한 정치인은 아직 못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자기 자랑 같지만, 어쨌든 무리 없이 상당한 논란 있는 것도 잘 잠재우고 해결하니까 사람들은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생각해요. 그나마 서울로가 논쟁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서울로는 좀 알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1300만명이 왔다가고.” ―공공주택 공급 확대엔 공감하는데, 두번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공급한 게 13만호예요. 약속대로 하면 4년 동안 32만호를 더 지어야 하는데, 가능해요? “저의 과거를 한번 보시라니까요. 지난 7년 동안 13만호 공급했는데, 그건 서울시가 시작된 이후에 만들어진 것의 거의 절반 정도 돼요. 절반을 제 임기 동안 다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물이 오른 것이죠. 처음 시장 돼 8만호 공급하기로 한 게 과연 가능한가 그랬는데, 전 했죠.”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약속이란 거죠? “네. 그렇게 되면 약 10%가 공공임대주택이 됩니다.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9%인데 그 걸 넘어서구요, 그래도 더 가야해요. 가장 삶의 질이 높은 도시 비엔나가 40%입니다. 싱가포르는 70%, 이런 도시들도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신년사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지금 우리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전부 시민들 개개인에게 짊어지우고 있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세상이다. 그 각자도생의 세상을 넘어 공동체적 삶에 기반한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열겠다고. 그게 아까 말씀드린 돌봄과 공공주택 이런 것이죠. ―‘2019년 공공책임보육시대 원년’을 만들겠다며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50% 확대 정책 등을 제시하셨죠. 취지는 좋은데 올해 3조원, 4년간 15조2천억원의 재원이 문제입니다. “살림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살림 잘하기로…. 한번 볼까요? 시장 되기 전 만든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다 사옥 있습니다. 제가 떠난 다음에도 여전히 잘되고 있습니다. 저는 늘 재정적·재무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거든요. 서울시에 처음 와서 제일 먼저 재정 혁신부터 했습니다.” 박 시장은 갑자기 일어나 오른쪽 벽면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 ‘디지털 시민시장실’로 다가갔다. “이거, 한번 보시죠. 딱 나오잖아요. 취임 전 서울시 채무가 19조원을 넘었는데 취임 후 11조7800억원으로, 그동안 채무가 약 8조2천억원 정도 줄었잖아요. 서울시는 정말 탄탄합니다. 오히려 정부가 갖고 있는 굉장히 많은 연기금들, 이런 걸 공공임대주택 등에 대규모로 투자해야죠. 돈을 갖고 있어 뭐 합니까, 미래를, 시민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낼 일에 투자해야지. 심지어 민간 유동성 자금이 지금 1100조원, 유동성이 넘치니까 그걸 투기에 쓰고 있단 말이에요. 저는 여러가지 펀드로 모아내서 창업, 벤처, 신재생에너지, 미래 산업에 국가가 가진 재정뿐 아니라 민간 재원까지 건강하게 투자할 수 있는 여지와 공간을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한겨레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지율 등락은 늘 있는 것, 결국 시민 믿는 게 중요
아직 유능한 정치인 못 돼 … 정무감각 부족한 게 사실 ―2022년이면 임기도 끝나고 시장 4연임은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선에 나가실 거죠? “언론이 왜 그렇게, 맨날 대선에만 집착하는지…. 아니, 서울시가 이렇게 엄중한데. 저는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음 대선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을 돌이켜보면 처음에 부모님이 판검사 하라고 해서 열심히 공부해 검사 했는데 창조적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6개월 만에 사표 냈어요. 다음에 변호사 해서 돈은 잘 벌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인권변호사 됐고, 외국 유학 가서 시민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 정말 중요하구나, 그래서 참여연대 시작했고 하다 보니 너무 성공적인 일이 됐죠. 그러다 보니 재미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일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를 해봤고 정착이 되니….” ―서울시장도 재미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시장은 보세요, 무진무궁하더라고요. 그다음은, 제가 뭘 하겠다거나 뭐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그다음이, 딱딱 설정되고 하더라고요.” ―요즘 지지율이 하향 추세입니다. 하는 일, 언론 노출도 누구보다 많은데 왜 내려간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것도, 이미 답을 갖고 계시잖아요.” ―저는 답을 모르겠는데요. “뭐, 지지율은 깃털과 같은 존재라 이미 얘기했고, 여론이야 늘 등락이 있죠. 선거 때마다 내가 될 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사실 서울시장 세번 선거 하면서 때로는 상대에게 추월당했죠. 재선 때도 정몽준 후보에게 추월당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번(3선)에도 경선해야 하는데 당내 세력도 없는 박 시장이 과연 되겠냐, 그런데 제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본선도 이겼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제가 시민들에 대한 신뢰를 못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반성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한겨레신문사와 인터뷰 도중 재정현황판을 보면서 서울시 부채감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황교안 전 총리, 대통령에게 직언했나…먼저 자신 돌아봐야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 입당하고 정치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제가 남을 평가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세 분을 국무회의에서 늘 뵈었잖아요. 그런데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더군다나 온 국민이 동의해서 탄핵한 그 대통령 마지막 임기에 총리 했던 사람이 다시 정치하겠다고 등장하는 것은, 정말 국민들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그러는가, 이런 실망감을 가집니다. 그때 저도 국무회의 가서 많이 싸웠죠. 그러던 시기에 저도 목격한 게 있는데….” ―뭘 목격하셨나요?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게 총리 책임 아닙니까? 대통령의 실패는 총리의 실패죠. 그러면 대통령에게 바른 직언을 하고, 오류를 지적하고, 개선을 얘기하고, 그랬냐 이겁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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