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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앗! 설 선물을 조심해…세상 뒤집었던 정치권 ‘명절 선물’ 역사

등록 2020-01-24 09:34수정 2020-01-27 10:27

화해도 협치도, 차곡차곡 상자 속으로

화해도, 협치도, 논란마저도 이 상자 속에 담겼다. 명절 ‘떡값’, ‘과일상자’로 불리며 금품으로 등치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보다는 고도의 함의를 담은 정치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정치적 ‘예술’에 가까운 이 상자는 올 설 반가운 이들과의 밥상머리서도 입길에 오를 것이다. 바로 정치권의 ‘명절 선물’ 이야기다.

■ 피해야 할 선물, 있습니다!

올 설 명절에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육포 선물’이다.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명의로 대한불교 조계종에 쇠고기 육포가 배송되어 논란이 됐다. 한국당에선 불교계엔 따로 한과를 보내려던 계획이었으나, 배송업체로 명단을 넘기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한다. 육포를 받아본 조계종은 그야말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연락을 받은 한국당 쪽에서 즉시 찾아가 사과하고 육포를 회수했지만, 파장은 일파만파다.

지난 추석에는 간장 등을 보냈던 터라 별도의 선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엔 육류라 주의가 필요했다. 과거 인편으로 해 왔던 배송 작업을 배송업체에 위탁한 것도, 한번 더 거르지 못한 배경이 아닐까 싶다. 황 대표는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거듭 사과했다. 선물엔 상대를 향한 배려와 정성까지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실수는 뼈아프다.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서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결례라는 지적을 받았던 일화나, 극우강경보수론자인 전광훈 목사와의 인연까지 다시금 상기시키게 됐다.

황 대표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뻔 했었다. 대통령은 매 명절마다 사회 지도층 인사나 원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였던 2008년 추석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연산 대추, 전북 부안 재래김, 경남 통영 멸치 등 전국 특산물을 담아 ‘화합’을 상징하는 선물을 계획했다. 하지만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내부 지적에 부랴부랴 다기세트로 교체해 불교계에 보낸 일화가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2019년 5월 12일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2019년 5월 12일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 불교계와 ‘전쟁’ 중 보낸 ‘다기’ 세트

별도의 선물을 전한 데엔 간절한 화해의 바람이 녹아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정부 관계자들의 잇단 종교 편향 발언과 조계종과의 갈등으로 ‘종교 전쟁’을 치렀다. 그해 8월 광화문 광장에 종단과 종파를 뛰어넘어 분노한 불교인 20만이 뭉쳤을 정도였다. (▶관련기사 보기 : 범불교도 대회 20여만명 참여 종교 차별 규탄) 특히 보수정권의 텃밭인 영남 지역은 유독 불교세가 강하다는 점에서, 정권 내부의 우려가 컸다. 당시 불교계에 보내진 ‘다기세트’를 다룬 여러 언론의 보도를 보면 선정 전후 이명박 정부의 ‘고심’이 느껴진다.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으로 불교계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 작은 실수라도 발생할 경우 불만 표출의 또다른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마땅한 것을 고르지 못해 고민중”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경향신문, 2008년 8월30일자)

불교계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 선물 선정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자칫 선물이 또다른 ‘잡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류와 육류를 제외해야 하다 보니 선정에 꽤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국민일보, 2008년 9월6일자)

이번에 하필 불교계로 보내 문제가 됐지만, ‘육포’ 자체만 보면 우리 축산물 애용의 뜻도 담겨 있고 비교적 고급스러운 선물에 속한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부터 육포를 명절 선물로 즐겨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 추석 선물에도 전남 장흥 육포, 경기 가평 잣, 대구 유가 찹쌀 3종 세트를 선택했지만, 불교계에는 육포 대신 호두를 보냈다.

얼핏 무난해 보이는 다기세트도 논란이 된 적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6년 추석에 전국 9곳의 특산 차와 다기세트를 보냈는데, 선물을 받는 이들 가운데 그 해 여름 집중호우 피해자들이 포함돼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차를 마실 여유가 있겠느냐’는 비판이 일면서 선물을 바꿨다.

■ 박근혜 당 대표 시절 ‘홍어’ 선물… 화해와 협치 뜻 담은 선물도

정치권에서 독특하기로 화제가 됐던 명절 선물이 있으니 바로 ‘홍어’다. 2005년 2월4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새천년민주당 한화갑 대표에게 설 선물을 겸한 대표 취임 축하 선물로 큼직한 홍어 2마리를 보낸다. 마포 민주당사로 이성헌 사무부총장이 직접 축하 난과 함께 홍어를 들고 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갈라선 뒤 민주당이 야당이던 때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론이 일고 있던 시기, 박근혜 대표가 각별한 선물을 민주당에 보낸 것은 야권 공조를 공고히 하려는 ‘러브콜’로 해석됐다. 최근 ‘일간베스트’ 등 극우성향 커뮤니티에선 ‘홍어’가 지역 비하의 뜻으로 쓰이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때 김영삼 정부의 ‘멸치’, 김대중 정부의 ‘홍어’, 노무현 정부의 ‘도다리회’, 이명박 정부의 ‘과메기’ 등 인수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인기 어종의 교체’는 세간의 소소한 화젯거리였다.

같은 당 내에서도 ‘협치’의 수단이 됐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설 선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4색 가래떡을 낙점했다. 대선 후보를 둘러싼 치열했던 당 내 경선 뒤로 친박-친이계 간 그득했던 ‘앙금’을 풀자는 뜻이자, 여권 내 협치를 바라는 제스춰였다.

■ 사회적 ‘약자’ 잊지 말아주세요

청와대가 보내는 명절 선물은 대체로 지역 특산품을 고루 담으면서, 그 안에 정치적 메시지를 녹이는 형태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뒤 첫 명절 선물로 전북 고창 복분자주와 경남 합천 한과를 더해 동서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던 이후부터다.

2014년 9월 추석엔 정치권이 앞다퉈 명절 선물로 진도 특산물을 선택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진도 지역 경제를 돕기 위해서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8월21일 최고위에서 이주영 당시 해수부 장관이 보낸 메시지를 소개하며 추석 선물로 진도산 특산물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도 의원들에게 진도산을 포함한 농수산물 세트를 선물로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쌀 소비 부진이 문제가 되면서( ▶관련기사 보기 : “설렁탕 사리를 쌀 국수로” ) 2009년부터 매년 4색 가래떡, 쌀국수, 5색 떡국 떡 등 종류만 달리한 쌀 선물을 보냈다. 2012년엔 전북 완주·경기 안양 떡국 떡에 경북 안동 참기름, 경기 양평 참깨가 배송됐는데, 사회적 약자 배려 메시지를 담아 “장애인 생산품에 대한 홍보 및 판로에 도움을 주고자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한 떡국과 참기름 등의 제품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평창 올림픽 유치 및 개최 전후로는 강원도 평창의 특산물들도 종종 역대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생일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보낸 ‘축하 난 거절 사건’이 화제가 되자 청와대는 “축하 난을 받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정연국 대변인은 “처리가 합의된 법안조차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하 난을 주고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서 정무수석이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 “VIP(박 대통령)가 나중에 보고를 받고 크게 질책을 하셨다고 한다”고 경위를 해명했다. 사진 국회기자단.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생일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보낸 ‘축하 난 거절 사건’이 화제가 되자 청와대는 “축하 난을 받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정연국 대변인은 “처리가 합의된 법안조차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하 난을 주고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서 정무수석이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 “VIP(박 대통령)가 나중에 보고를 받고 크게 질책을 하셨다고 한다”고 경위를 해명했다. 사진 국회기자단.

■ 안 줘도 문제 안 받아도 탈? ‘갈등 폭발’ 도화선도

선물 내용만 문제가 아니다. 줄 사람과 받을 사람의 마음도 같아야 한다. 정치인들의 기부를 제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선물의 액수에 한도를 둔 김영란법이 도입되기 전, 정치권 명절 선물이 부패한 정치 문화로 간주되던 시절 추석을 앞두고 이런 일도 있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5일 운영위원회에서 먼저 선물안주고 안받기를 선언하고 나왔다. 박 대표는 ‘경기가 너무 안 좋고 국민 살림살이도 어렵다’며 ‘이럴 때 한나라당이 솔선수범하는 의미로 의원들끼리 선물 주고받지 말고 그걸 불우이웃 돕는 데 쓰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은 직후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대표님의 건투를 빈다’는 내용의 글을 각별히 병에다 새겨넣은 와인을 선물하려다가 취소했다. 김 의원은 10일밤 실제 이같은 문구가 적힌 와인을 지인들과 나눠 마셔버렸다. 김 의원은 ‘이미 돈들여 선물을 만들었지만, 박 대표가 주지 말라는데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문화일보, 2004년 9월11일자)

명절 선물을 계기로 그 사이에 쌓여 온 감정들이 폭발하는 일도 잦았다. 2003년 추석을 앞두고 정대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과거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선물은 한국 문화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선물이 없어 자칫 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 “철두철미한 판단 때문이겠지만 내 정서엔 맞지 않는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겉으로는 선물을 거론했지만, 당시 민주당 내 분당 위기가 커지면서 청와대를 향한 우회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2016년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9명 의원들과 달리 자신만 박근혜 청와대가 보낸 추석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공개하자, 청와대에서는 발송이 지연됐을 뿐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고 아예 발송을 취소해 버린 적도 있다. 조 의원은 ‘정윤회 문건 사건’ 유출자로 지목된 터라 그를 보는 박근혜 청와대의 시선이 고울 리 없지만, 세간에선 ‘뒤끝 정치’라는 수군거림을 샀다. 그해 2월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보내 온 축하 난을 세 차례나 거절해 되돌려 보냈다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받은 일도 있었다. (▶관련기사 보기 : 박근혜 생일에 ‘부치지 못한 난’ )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설 명절을 맞아 각계 원로와 의사상자,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계층을 비롯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등에 대응했던 관계자, 독도헬기 순직 소방대원,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관계자 등 1만4000여명에게 선물을 보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설 명절을 맞아 각계 원로와 의사상자,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계층을 비롯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등에 대응했던 관계자, 독도헬기 순직 소방대원,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관계자 등 1만4000여명에게 선물을 보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 ‘술’ 피한 이명박 대통령, ‘꿀’ 보낸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올해 설 선물은 전북 전주 이강주, 경남 김해 봉하 떡국 떡, 강원도 양양 한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발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봉하오리쌀’로 만든 떡국 떡이 처음으로 선물 안에 들어갔다. 이강주는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명절 선물로 등장했기에 이번이 두번째다. ‘술’이 들어 있는 것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른 점이다. 각 지역 전통주를 두루 소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서 술을 보내지 않아 종교적 색채 탓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집권 뒤 첫 명절 선물 시안을 받아본 뒤 “예전엔 우리 술도 주고 해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편리하더라”며 술이 빠진 점을 가장 아쉬워했다고 한다. ( ▶관련 기사 보기 : 문 대통령 추석 선물에 ‘봉하오리쌀’ 빠진 까닭은… ) 그 다음해 설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선물엔 강원도 평창의 감자술과 충남 서산 편강, 경기도 포천 강정, 경남 의령 조청유과, 전남 담양 약과가 담기는 등 술이 빠지지 않는다. 다만 종교계와 청소년에는 술 대신 꿀을 보낸다. 지난 추석엔 충남 서천 소곡주를 대신해 충북 제천의 꿀을, 올 설에는 이강주를 대신해 전주 토종꿀을 담았다. 정유경 성연철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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