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요즘 더불어민주당에 ‘스피커’가 잘 안 보인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당권 도전자들이야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팍 꽂히는 메시지가 드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사이다’ 발언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지만, 외곽에서다. 냉랭해진 민심이 두려워서일까. 중진들은 의견 내기를 꺼린다. 말의 파장을 경계해서겠지만, 부동산 정책 등 국정 현안에 대한 여당의 생각이 궁금한 국민 처지에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기묘한 침묵에 싸인 민주당에서 개중 우원식 의원의 행보는 돋보인다. 그래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제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난달 말 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 단장을 맡았다. 이후 ‘노무현과 박정희의 꿈을 우원식의 꿈으로 이어가겠다’며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문제 등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 501호 우 의원 방에서 인터뷰를 했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과 민주당-미래통합당 지지율 역전 등에 대한 생각도 함께 물었다.
—서울 지역구(노원을) 4선 의원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하는 데 부담 느끼진 않나?
“수도권 과밀과 국가 균형발전 문제는 너무도 심각해서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05년 조사에선 2023년에 수도권 인구가 전국 절반이 된다고 예상했는데, 올해 이미 50%를 넘었다. 반면에 기초자치단체 중 97곳은 지역 소멸 우려를 느낀다. 나라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해결하고 가야 한다. 또 하나, 행정수도 이전은 비대해진 수도권의 살을 내리면서 그 빈 부분을 근육으로 채우는 일이다.”
—서울을 근육으로 채운다?
“제가 진짜 서울 토박이다. 외할아버지가 일제 때 서울청년회란 걸 만드신 분이다. 그런데 서울이 과밀화, 비대화로 너무 힘든 상황이다. 지금 서울 출산율이 0.7이다. 이런 서울을 국제적 경제도시로 만드는 일, 이것도 내가 해야 될 일이다 싶었다. 행정수도는 워싱턴, 서울은 뉴욕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복안이 있나?
“이를테면 여의도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간다면 여기에 뭘 할 거냐? 본청은 4차 산업혁명 캠퍼스를 만들자는 거다. 300명 의원실이 있는 의원회관은 4차 산업 스타트업을 들어오게 하고, 도서관은 데이터 거래소로 만들고. 국회를 4차 산업혁명 상징 건물로 만드는 것이다. 여의도는 앞에 금융가가 있다. 금융과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꿈과 아이디어가 이뤄지는 곳이 되지 않겠나.”
—내려간 자리를 미래 산업으로 채우겠다?
“그런 색깔의 서울을 만들어보고 싶다. 서울이 지역에 있는 것들을 다 빨아들여서 지역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울은 인천공항이라는 세계의 창이 있고 ‘케이 방역’의 신뢰도가 있다. 그걸 가지고 미래 산업의 전진기지, 국제적인 금융과 경제 중심지로 만드는 구상이다.”
—행정수도 이전이 ‘노무현의 꿈이자 박정희의 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순시 하면서 서울 과밀과 안보 문제를 풀기 위해 행정수도를 만들자고 했다. 그해 7월 법안 통과 뒤 전문가 150여명을 모아서 집중 연구하도록 했다. 그러나 10·26 뒤 전두환 정권에서 취소됐다. 이건 여야나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그런 표현을 썼다.”
—행정수도완성추진단 구성 뒤 국회 특위를 제안했지만, 야당 반응은 신통찮다.
“야당이 정략적으로 보면 서울 여론에 안 좋을 수 있으니까 내버려두자, 이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서울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서울시민을 설득해가면 그런 태도도 바뀌지 않겠나. 국가 균형발전도 책임있는 정당, 정치인이라면 무시하지 못하리라고 본다.”
—야당도 호응할 것이다?
“충청지역 의원뿐 아니라 부산 장제원 의원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같은 분들이 의미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불가능하지 않다.”
—통합당이 원하는 특위와 주고받기 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그건 다 원내대표 협상 능력에 달려 있는 거지.”
—청와대·정부와는 어떤 식의 협의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나?
“일단 당의 의제이자 국회 의제다. 우리가 해가면서 국민 여론도 환기하고 정부가 참여할 수 있게 해나가야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회와 제2청와대를 세종시에 설치하고 그곳 중심으로 활동하면 저절로 수도 이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으냐’는 얘기를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이미 임시 집무실이 있다. 국민 여론은 청와대가 다 옮겨가는 건 아직 부정적이고, 국회 옮겨가는 건 그보다는 지지도가 높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국회 오가는 비용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지난 3년 동안 세종과 국회 사이 출장 건수가 80만건, 쓴 돈만 900억이 넘는다. 행정비용으로 보면 2조~4조 정도로 본다.”
—비효율로 인해 파생되는 전체적인 비용 말인가?
“그렇다. 그런 비효율을 극복해야 한다는 요구가 굉장히 높다. 그래서 우선은 국회 이전부터 검토할 수 있다. 위헌 결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치가 국회의장과 본회의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가는 것이다. 국회를 통째로 다 가자고 하면 특별법을 만들든지 위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느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여야가 특위에서 합의하자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방법으로는 개헌, 국민투표, 특별법 제정이 거론된다.
“다 장단점이 있다. 개헌은 권력구조 등 개헌 쟁점이 워낙 많다. 수도 이전만 원포인트로 하자고 해도 잘 안될 수 있다. 국민투표는 가령 서울시 무상급식 문제로 주민투표 하면서도 갈등이 얼마나 컸나. 특별법은 제정하고 나서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위헌심판을 받아봐야 한다. 다만 ‘관습 헌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행정 비효율을 극복하자는 요구도 크다는 관점에서 보면 특별법이 가장 빠르고 부작용도 작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특위에서 합의하자는 것이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서울의 비전, 미래를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울을 채우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도 있지 않나?
“19일 추진단 전체 토론회, 23~24일 부산·울산·경남권에 이어 28~29일쯤 서울에서 토론회를 한다. 그때 내놓을 것이다.”
—야권은 부동산 문제 불 끄려고 들고나온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거 들고나왔다고 부동산 불이 꺼지나.”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이라는 건데?
“행정수도 이전은 상당히 미래의 문제인데 부동산은 당장 닥친 문제여서 이것 들고나온다고 이슈 전환이 안 된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가?
“전혀 아니다. 우리 철학이고 지금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다시 꺼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제기한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부동산 문제로 넘어가보자. 민주당과 통합당 지지율이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역전됐다. 가장 큰 요인이 뭔가?
“부동산 문제가 가장 크다. 부동산 안정은 정말 중요한 민생 문제인데, 그사이에 많은 정책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상당히 훼손됐다. 이게 민심을 끌어내렸고, 여당에도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여당에 위기라고 보나?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다. 정책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다만 위기로 보기 때문에 우리도 대응 노력을 한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이전 국회 여건상 미뤄왔던 부동산 3법과 임대차 3법을 드디어 통과시킨 것이다. 부동산법은 한순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서 이번에 통과된 법의 효과가 나타나면 차츰 민심도 나아지리라고 본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불을 끄기 위한 대책은 대부분 나온 건가?
“그렇다. 사실 이걸 좀더 빨리 했어야 한다. 이걸 시간을 이렇게 끌어서 했다는 게 잘못이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부동산 3법을 통과시키면서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안전핀을 다 뽑아버렸다. 종부세 완화,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재건축 규제 완화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새 정부 들어와서 이 안전핀을 빨리 다시 꽂는 일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 여건도 잘 안 맞았고, 우리도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
—좀더 일찍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는 지고 새 출발을 모색할 때 아닌가?
“저는 정책라인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법안도 기존 정책라인에서 추진한 것이다. 그 성과 여부는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건가?
“이번 대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까지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이제 문재인 정부 3기로 들어서지 않나. 그런 과정에서 이런 것까지 다 판단되겠지.”
—보수언론과 야당은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 월세로 전환돼 서민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우리 당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공포가 커졌다. 그러나 ‘갭투자’ 전세 끼고 하는 비율이 강남 72.7%, 서울 52.4%다. 한꺼번에 갭투자 전세비용을 돌려주며 월세로 전환할 수 있겠나. 처음 몇몇 건은 몰라도 급격한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반전세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전환율 조정이다. 전환율이 지금 4%다. 월세나 반전세를 통한 인상을 막으려면 전환율 자체를 떨어뜨리면 된다.”
—그것도 할 건가?
“해야 한다. 이번에 통과시킨 법이 전월세 서민들한테 확실히 이익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게 될 것이고, 정책도 안착될 것이다.”
—부동산법 처리 과정의 ‘거여 독주’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부동산 3법, 임대차 3법은 오래 논의해왔고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시급한 일이었다. 그걸 독주라고 할 수 있나? 한편으로 이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제외하면 급하게 처리할 건 대개 다 처리했다. 야당도 협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 수석들이 일괄 사표를 냈는데, 노영민 실장은 유임됐다. ‘쇄신’ 통한 국면 전환의 기회를 못 살린 것 아닌가?
“청와대 비서실도 좀 안정이 필요하지 않겠나. 수석을 많이 바꿨는데, 실장까지 바꾸면 많이 흔들릴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본다.”
—‘3기 청와대’라고 하기 애매해진 상황인데, 언제쯤 3기 진용이 짜질까?
“국민 민심에 가장 민감한 분이 대통령이다. 현재로선 변화와 안정을 다 고려한 것이고, 3기로 어떻게 넘어갈까 하는 건 대통령이 판단하시겠지.”
—노영민 실장과 ‘절친’(두 사람은 연세대 76학번 동기로, 학생운동을 함께 했다)인데, 상의하진 않았나?
“에이, 대통령이 판단하실 문젠데.”
—노 실장 만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하, 만나서 직접 해야지.”
—김조원 전 민정수석의 처신을 비판했다.
“당과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에서 특히 청와대 참모들 처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부적절한 모습에 섭섭함을 얘기한 거다.”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당 지지율 역전은 우리 실책이 크다. 통합당이 뭘 잘했다기보다는 실수를 덜 했다.”
—새 정강정책 1번에 ‘기본소득’을 올리고 ‘5·18 정신 계승’을 밝힌 건 어떤가?
“바뀐 느낌을 주는 건 맞다. 본질이 어찌 됐든. 그래도 지금 지형은 우리 실수가 크다.”
—페이스북에 ‘고밀도의 1만세대 공급은 노원구민에게 큰 실망’이라는 글을 올렸다. 공공주택 공급 대책에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억울하다. 그 지역이 너무 밀도가 높은 만큼 교통 대책을 세우고 밀도는 좀 낮추면서 최대한 녹지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노원이 밀집도는 높은데, 일자리가 없다. 교통 문제 해결하려면 자족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육사나 한전연수원에 일자리를 만들 계획도 같이 짜자고 한 거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무릎을 꿇고 손을 땅에 대면 비로소 야생동물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고 한다. 겸손하자. 민심에 귀 기울이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