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식저장장치(USB) 내용 전체를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맞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상 간 오간 문서를 공개하면 안 된다는 뜻을 1일 밝혔다. 유에스비에 담긴 ‘한반도 신경제구상’ 에너지 협력 대책도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졌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의 ‘북 원전 건설’ 관련 문건 공개와 맞물려 야당의 의혹 제기가 타당성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만나 “싸움을 하더라도 룰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며 “정상 간의 관행을 깨고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밝혔다. 정상들이 만나 주고받은 문서는 일방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외교 관례’를 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정 총리는 유에스비에 원전 건설이 담겨 있지 않다는 정부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원전을 짓는다는 것이 자동차 한대를 보내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아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도 있고, 미국과 협의도 선행돼야 하는 등 (원전 건설이)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걸 잘 아는데 이런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와대에선 야당의 ‘이적 행위’ 공세에 맞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검토하자는 쪽과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 쪽은 외교 관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야당에 공격할 거리를 던져주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관련 부처와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해 이르면 2일 공개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북한에 제안한 발전소는 화력·조력·풍력·태양열
유에스비 전체 공개 여부와는 별도로, 여기에 담긴 에너지 협력 대책은 좀 더 자세하게 드러났다. 이날 통일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에너지 협력 내용은 ‘○○지역 등에 대한 화력발전소 설비 개선과 함께 서해안은 조력, 동해안은 풍력과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구축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자료를 확인한 관계자는 “에너지 지원 관련한 분량은 한쪽에 8~9줄 정도였고 이 중 발전소 관련한 것은 두서너줄이었다. 설비를 개선해주겠다는 화력발전소의 구체적 숫자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 에너지 협력 부분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이 담겼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5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연결 사업인데, 여기에 북한도 포함해 전력망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중단된 개성공단의 송전을 다시 재개하려면 몇년이 걸린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 31일 통일부는 기자들에게 입장 자료를 배포해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는 원전이라는 단어나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노지원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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