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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밀리면 끝장” 여야 모두 4·7 보선 이겨야 사는 이유 있다

등록 2021-02-11 07:59수정 2021-02-11 10:28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풍향계

폭풍 몰고 올 재·보선 성적표
서울에서 패배하는 쪽은
대선가도에 치명상 불가피
일러스트 하재욱 작가
일러스트 하재욱 작가

시대정신이 선거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시대정신을 만든다. 어려운가? 이렇게 바꾸면 좀 쉽다. 선거는 수많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국가의 역사와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은 수많은 우연적 요소가 겹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와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시대정신을 만들어냈다.

2022년 3월9일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1년1개월밖에 안 남았다. 역대 모든 대통령선거가 그랬듯이 이번 대선도 건곤일척의 승부다. 여야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 과제를 이어가기 위해 재집권이 필요하다. 임기가 없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서도 재집권이 절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 짧다.

보수 야당은 이번 대선에서 지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어 전국 선거 5연패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분단과 자본 기득권이라는 보수 세력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면서 상당 기간 집권이 어려워질 수 있다. 야당보다 이른바 보수 성향 언론과 논객들이 더 악을 쓰는 이유다.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재집권 가능성이 큰 선거였다. 1987년 임기 5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김영삼 정부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잇는 대통령도 여권에서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2021년 4월7일로 예정되어 있던 재보궐선거 일정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포함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 4·7 재보선은 여당이 불리하다. 세가지 이유다. 첫째, 보궐선거 귀책사유를 여당이 제공했다. 둘째, 대통령 임기 말이라서 정권심판론이 작동하기 쉽다. 셋째, 전국 선거 못지않은 큰 규모로 판이 커졌다.

야당으로서는 2022년 3·9 대선에서 별로 희망이 없던 차에 4·7 재보선이라는 대선 디딤돌이 저절로 굴러들어온 셈이다. 게다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선주자들이 서울시장 후보로 체급을 낮춰 출전하면서 4·7 재보선의 판이 더 커졌다. ‘정권 10년 주기설’이 흔들리게 된 연유다.

물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긴다고 내년 3월 대선에서 자동으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는 선거 전날, 심지어 투표 당일에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 그랬다.

하지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는 쪽은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여야가 벌써 스크럼을 짜고 팽팽하게 대치하며 한 발짝도 밀리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배경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자를 3월1일, 부산시장 후보자를 3월6일 발표한다. 서울시장은 박영선 전 장관이, 부산시장은 김영춘 전 의원이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민의힘은 3월4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를 한꺼번에 발표한다. 서울시장은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부산시장은 박형준 전 의원이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른바 ‘제3지대 후보 단일화’에 나선 안철수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은 3월1일 단일 후보를 결정한다. 안철수 대표가 우세하다.

서울시장은 국민의힘과 ‘제3지대’의 야권 후보 단일화가 예정되어 있다. 재보선 후보 등록 신청일은 3월18일과 19일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지만, 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야권 지지 유권자들의 절박감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의 맞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여론조사 가상대결을 섣불리 믿으면 안 된다. 여론조사에는 표본오차와 언론사의 작위적 선정이라는 두개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가상대결에서 격차가 5~6%포인트라면 실제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

4·7 재보선은 결과가 어떻든 정가에 폭풍을 몰고 온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는 쪽은 태풍을 정면으로 맞는 정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여당이 지면 문재인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등산에 비유할 때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올라가서 정상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레임덕은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면 투지가 꺾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흔들리면 이낙연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의 차기 주자들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여당 차기 주자 선호도가 야권보다 훨씬 높은 것은 인물 경쟁력이 앞선 이유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평가가 40% 안팎에서 견고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평가가 낮아진다고 해서 여권 차기 주자들이 섣불리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설 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체질적으로 배신자를 싫어한다.

야권이 지면 후유증은 훨씬 더 심각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철수 대표도 큰 손해는 아니다. 본래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정치적 파산 선고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여당 체질’이다. 정치는 청와대에, 정책은 행정부에 100% 의존하던 관행이 몸에 밴 탓이다. 여당 체질로 야당을 하니 자생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을 때 아예 정당의 문을 닫거나 해산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 정당을 살려보겠다고 지금까지 홍준표, 인명진, 김병준, 황교안, 김종인이 차례차례 나섰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었다는 확인사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김종인 위원장의 실패는 국민의힘에 깊은 내상을 남길 것 같다. 강령 전면 개정,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무릎 사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적행위”라고 색깔론까지 제기하는 무리수를 뒀다.

국민의힘은 5~6월에 대표와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야 한다. 서울시장 패배의 후유증은 당내 선거의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결국은 당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것이냐,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티케이 자민련’으로 남을 것이냐를 의원과 당원들이 선택해야 한다. 후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분열의 시대다. 선동가가 득세한다. 정치도 분노와 증오를 먹고 산다. 통합은 인기가 없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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