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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임신 중지, 빅테크 ‘디지털 흔적’으로 남아 있다

등록 2022-07-11 09:00수정 2022-07-11 11:55

임신중지 기소때 디지털증거 활용관행
위치 정보, 문자메시지, 검색 기록 등
“공권력의 디지털정보 요청을
빅테크가 판단·결정할 수 있는가”
빅테크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부각
지난 6월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전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지난 6월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전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한 이후 21세기 빅브라더로 부상한 빅테크의 정보 독점과 감시 통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포함해 민감한 내용이 담겨있는 디지털 정보들이 임신중지 행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공권력이 관련 정보를 요구할 경우 빅테크들이 정보를 제공해 불법 임신중지 행위 기소를 도울지도 주목된다.

■ 디지털 증거

디지털 증거는 미국에서 범죄 수사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으며 임신중지 관련 수사 및 처벌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60명 이상이 법규를 위반한 낙태를 하거나 도운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체포·기소되었는데, 임신중지 관련 검색 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이 증거로 활용되었다. 2018년 미시시피 자택에서 사산한 후 2급 살인죄로 기소된 래티스 피셔는 낙태를 위한 약의 구매 관련 인터넷 검색 결과가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2015년 인디애나주에서는 프루비 파텔이라는 여성이 임신 30주 때 임신 중절을 한 후 기소되어 처음에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관련 약 복용에 대해 친구와 문자메시지로 상의한 것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었다.

포드재단 시민권 변호사 신시아 콘티 쿡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문자메시지, 사이트 방문, 구글 검색은 검찰이 원하는 증거 형태”라며 디지털 흔적을 남길 경우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구글의 위치 정보 서비스다. 구글은 지도와 위치정보서비스(GPS)를 이용해 지도 타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러한 디지털 흔적은 수사에서 처벌 근거로 활용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구글은 2021년 상반기 경찰로부터 5만9천여 건의 정보 제공을 요청받았는데 이는 2016년 상반기의 네 배에 해당한다. 실제 정보를 제공한 비율도 82%에 이른다.

위치정보외에도 구글은 검색정보 수집을 통해, 페이스북은 ‘좋아요’ 기록으로, 아마존은 구매내역 분석을 통해 이용자들의 선호와 특성 등 신상 정보를 수집해왔다. 애플도 아이폰 위치 추적 기능과 앱 설치 기록을 통해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이용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정치인들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서한을 보내 구글이나 애플의 개인 데이터의 무단 수집과 판매, 온라인 광고가 낙태 시도자들을 기소하는 데 남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연방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임신중지가 불법인 주에서 공권력이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은 게 ‘지오펜스 영장’(geofence warrants)이다. 낙태 수술을 하려는 사람에 대한 정보나 특정 의료기관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위치정보를 구하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범죄 발생 지역과 시간대를 특정한 뒤 그곳에 있던 모든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 영장이다. 최근 미국에선 이 영장 사용이 부쩍 늘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 빅테크와 민주적 정당성

빅테크기업이 소유한 데이터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데이터 수집 절차를 재검토하는 등 이용자 보호 조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업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에 구글은 인공 임신중절 수술 의료기관을 포함해 상담센터, 가정폭력 보호소 등 이용자들이 민감해할 수 있는 기관의 위치 정보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인권 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EFF)등 시민단체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용자가 익명으로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고, 행동 추적을 중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서비스 이용 시 정보가 필요한 경우엔 이용자의 거부권 등 선택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민감정보는 자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구글 등의 선제적 조처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빅테크의 거대한 권한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김현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권력이 요청할 때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거부할지를 빅테크가 판단하고 있다는 점, 즉 빅테크가 룰세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이를테면 임신중지 사안은 거센 비판 여론 때문에 위치정보 기록을 삭제하기로 했지만, 마약 수사나 다른 수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빅테크가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정보 독점과 감시, 통제 권력으로 21세기 디지털 빅브라더로 불리는 빅테크의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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