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산업사회는 성비(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에서 확실한 남성의 세계를 구축했다. 가부장 사회의 오랜 남아 선호 관념에 현대 문명의 성선택 기술, 늘어난 생존율 등이 가세한 결과였다.
여론조사업체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5년을 더 사는데도 1960년대 중반 이후 전체 인구에서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를 넘어섰다.
지난 7월 발표된 2022 세계 인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전 세계 인구는 남성이 약 4400만명 더 많은 상태다.
유엔은 그러나 2050년에는 남성 우위의 성비가 균형점에 이를 것이며 이후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유엔에 따르면 성비가 균형점을 초과하는, 즉 남성이 더 많은 나라는 지금의 86개국에서 2050년 67개국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물론 아직도 출생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106명으로 남성이 훨씬 많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과 함께 남아선호 관념이 퇴락하고 수명 연장으로 고령 여성이 더 늘어나면서 성비 불균형은 많이 완화되고 있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성비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낮아진다. 50살 이상 연령대에선 여성이 더 많은 구조로 바뀐다.
세계 인구는 1960년대 이후 남성이 더 많은 성비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픽사베이
숫자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남성이 더 많다는 걸, 그 이하는 여성이 더 많다는 걸 뜻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태아 성 감별 기술 등장 이후 성 선택을 위한 낙태가 횡행했던 인도에서도 성비가 완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출생 성비가 110명대에서 105명으로 크게 낮아졌다. 여아 낙태가 심했던 시크교도들의 출생 성비도 130명에서 110명 수준으로 내려왔다. 정부의 적극적인 태아 성 감별 금지 정책과 홍보, 교육, 소득 향상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퓨리서치센터는 분석했다. 이런 흐름은 점차 전체 성비의 불균형도 해소해주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엔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출생 성비가 가장 불균형했던 나라는 중국과 아제르바이잔이다. 연간 평균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이 태어났다. 중국에선 한 자녀 정책에 따른 성 선택 낙태의 급증, 아제르바이잔은 소련 붕괴 이후 정부를 대신해 부모를 부양할 아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점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 현재 남성과 여성 인구가 모두 2580만명대(2021년)로 성비 구조가 정확히 1 대 1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남아 선호의 퇴색, 출산율 감소 등이 어우러지면서 성비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1990년 116명까지 치솟았던 출생 성비도 자연 수준인 105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라면 곧 성비가 역전돼 2050년 성비는 98명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성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중동의 카타르다. 여성 100명당 남성 수가 266명이나 된다. 이어 아랍에미리트(228명), 바레인(164명) 차례다.
퓨리서치센터는 “중동 지역의 극심한 성비 불균형은 외국에서 온 남성 노동자 인구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엔 추정에 따르면 2019년 카타르 인구의 79%가 해외 출생자이며, 이 가운데 83%가 남성이다.
옛 소련에서는 정반대 현상을 보인다. 옛 소련에선 2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 수백만명이 전사한 이후 여성 인구가 훨씬 더 많았다. 예컨대 1950년 지금의 러시아 지역 인구를 보면 여성 100명당 남성 인구가 77명에 불과했다. 이 숫자는 1995년 88명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옛 소련에 속했던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성비가 가장 낮은 10개국 중 6개국이 옛 소련지역이었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출생 성비는 110명이지만 해외 이주 등으로 인해 전체 성비는 82명이다.
인도 정부의 여성 지위 향상 캠페인 ‘베티 바차오, 베티 파다오’(딸을 구하라, 딸을 교육하라) 로고. thehindu.com에서 인용
진화론에서 보는 자연 성비는 1:1에 수렴한다.
성비가 낮으면(수컷이 더 적으면) 수컷을 낳는 것이 자손 번식에 유리하고, 그 반대면 암컷을 낳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 장기적으로 1:1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피셔의 원리라고 한다. 진화론 시각에서 보면 20세기 후반 이후 진화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던 성비가 출산율 감소 국면을 맞아 다시 자연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지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성비 균형이 성 평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7월 발표한 성별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성평등 달성률은 68%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지금의 추세라면 전 지구적으로 성별 격차가 사라지는 데는 132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이 지난 7일 발표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 보고서는 “지금의 변화 속도라면 법적인 제한과 차별을 없애는 데 286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