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소비자 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는 삼겹살로 63%였다. 픽사베이
그릇 위로 수북하게 높이 담은 밥을 고봉밥이라고 부른다. 농업사회 시절 우리 조상들은 이 고봉밥을 먹고 들판에 나가서 일할 힘을 얻었다. ‘밥심으로 산다’는 옛말은 이 고봉밥에서 나왔다.
그러나 서구화의 물결과 함께 한국인의 식습관이 그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제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사라져야 할 모양이다.
지난해 한국인의 고기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추월했다. 장구한 세월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져온 쌀이 고기에 주식의 자리를 내주게 된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농업전망 2023’에서 3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의 1인당 소비량이 2022년 58.4kg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56.1kg보다 2.3k 늘어난 것이다. 2002년 33.5kg과 비교하면 20년새 74%가 늘어났다. 연평균 2.8%씩 증가한 꼴이다.
보리, 밀 등 다른 곡물 소비량도 줄어
반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5.6kg으로 고기 소비량에 못미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원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함께 먹거리 다양화, 빵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편식 선호 증가를 쌀 소비 감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서도 1인당 쌀 소비량은 2021년의 56.9kg보다 0.2kg이 줄어든 56.7kg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2년 112.9kg과 비교하면 30년 사이에 1인당 쌀 소비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현재 한국인의 하루 쌀 소비량은 하루에 밥 한 공기 정도에 그친다.
쌀 뿐 아니라 다른 곡물의 소비량도 줄었다. 쌀을 포함한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 7대 곡물의 1인당 소비량은 2002년 167.2kg에서 2021년 137.9kg으로 연평균 1.0%씩 감소했다. 2022년에는 감소폭이 1.8%로 더 커져 135.3kg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한국인의 하루 쌀 소비량은 하루에 밥 한 공기 정도로 줄었다. 픽사베이
채소류 소비는 늘어…고기와 보조 맞춘 듯
쌀 소비 감소와 육류 소비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밥을 대체할 식품이 다양해지고 있어 육류 소비 증가세보다 쌀 소비 감소세가 더 가파를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3대 육류의 1인당 소비량은 연평균 0.8%씩 증가해 2027년엔 60kg을 넘어서고, 2032년엔 63.1kg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쌀 소비량은 2023년 54.4kg에서 2033년 44.9kg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2%씩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곡물류 소비량 감소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1인분 고기와 밥 한 공기 분량이 각각 200g이라고 치면 2032~2033년께엔 한 해 동안 고기는 지금보다 20인분 이상을 더 먹고, 쌀은 50공기 이상을 덜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소류는 육류 소비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연구원은 배추, 무, 마늘, 고추, 양파 5대 채소의 경우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1.1kg에서 2032년 111.6kg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육류 소비가 늘면서 고기와 곁들여 먹거나 고기 양념 재료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단감 등 국산 과일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픽사베이
과일 소비, 국산은 줄고 수입산은 늘고
과일의 경우엔 국산 과일 소비는 줄고 수입 열대과일 소비는 증가하는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단감 6대 과일 소비량은 2002년 1인당 47.1kg에서 2021년 35.3kg으로 연평균 1.5%씩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 열대과일 소비량은 3.2씩 증가했다. 과일 소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가격이다. 지난해의 경우엔 국산 과일 가격이 하락하면서 소비량이 7.2% 증가한 반면 수입 열대과일은 8.3% 감소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그러나 이는 일시적 현상이며, 중장기적으로는 곡물과 과일의 1인당 소비량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수입과일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