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인식은 ‘영원한 착각’에 해당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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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기성세대의 상당수는 과거 이런 말을 들으면서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자식 세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9일 갤럽이 발표한 미국인의 도덕적 가치관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미국의 도덕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런 느낌은 실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걸까?
미 뉴욕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연구진이 지난 70여년 동안 세계 60개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젊은이들이 과거에 비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종의 ‘영원한 착각’이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주저자인 애덤 마스트로얀니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심리학)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우선 1949년에서 2019년 사이 미국에서 실시된 177개의 도덕적 가치 관련 설문 조사 내용을 살펴봤다.
그 결과 전체 설문 항목의 84%에서 대부분의 응답자가 도덕성이 떨어졌다고 응답한 것을 확인했다. 응답자의 비율도 연도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1996~2007년 실시된 다른 59개국의 58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 비율도 86%로 미국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퓨리서치센터가 2002~2006년 실시한 조사에서 모든 조사 대상 국가(빨간색)의 대다수 응답자들은 도덕적 타락이 최소한 “어느 정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네이처
보수주의자가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
연구진은 기존 설문 분석과는 별도로 2020년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에서도 미국인들은 과거, 예컨대 자신이 태어났을 때보다 사람들이 덜 친절하고 덜 정직하며 덜 착하다고 답변했다. 정치적 이념이나 인종, 성별, 나이, 학력에 상관없이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만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도덕적 하락폭이 더 큰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의 갤럽 조사에서 미국 사회의 도덕성이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97%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73%보다 훨씬 높았다.
연구진은 또 “오늘날 미국의 도덕적 가치는 전체적으로 어떤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처럼 자신과 동시대인의 도덕성이 어떤 수준인지를 평가하는 설문 조사를 분석했다. 시간 경과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도록 10년 간격으로 2번 이상 실시한 설문 조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만약 세월이 흐르면서 도덕성이 실제로 타락했다면, 과거에 같은 설문에 응답했던 사람들보다 지금의 응답자들이 매긴 점수가 더 낮았을 것이다. 그러나 응답자들의 동시대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세월과 관계없이 변하지 않았다.
매사추세츠 보스턴칼리지의 리안 영 교수(심리학)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주의는 사람들이 자기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판단할 때 매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며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그룹간 편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자신의 선거 구호가 적힌 모자를 쓴 채 연설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도덕적 타락’이란 착각의 뿌리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되는 걸까?
연구진은 두 가지 심리적 현상이 개입된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는 부정적 기억은 긍정적 기억보다 빨리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불쾌한 기억보다 즐거웠던 기억을 더 잘 떠올리는 이런 경향을 ‘폴리아나 원칙’(Pollyanna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긍정적으로 포장돼 기억되는 것도 폴리아나원칙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바로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 두 요인이 어우러지면 과거는 장밋빛이 되고 현재는 잿빛이 된다.
도덕적 타락에 대한 착각은 그 자체로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컨대 연구진이 인용한 2015년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76%는 ‘국가의 도덕적 붕괴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런 인식은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환각은 그런 추락을 멈추게 하겠다는 지도자들의 호소력을 높일 수 있다”며 그 한 예로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16년 대선 구호를 언급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윈번공대의 멜리사 휠러 박사(사회심리학)는 <네이처>에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타락의 과정은 도덕의 기초가 가라앉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암흑기를 초래했다.”
연구진은 논문 서두에서 고대 로마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기원전 59~기원후 17)가 로마 시민들의 도덕성 타락을 한탄하며 썼다는 이 말을 인용했다. 2000년 전의 로마인에게 한 말이지만, 연구진이 이번에 확인한 현대인들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하다.
연구진은 논문을 끝내며 “이번 연구는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인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뿐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근거도 없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현상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