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재료 등 인공지능으로 신물질
연구기간 ‘20년’을 ‘48시간’으로 단축
“과학에 끼칠 영향이 산업 효과 능가”
연구기간 ‘20년’을 ‘48시간’으로 단축
“과학에 끼칠 영향이 산업 효과 능가”
인공지능과 과학기술 방법론
과학은 발견과 발명을 추구한다. 과학은 육안을 뛰어넘는 관찰 도구 덕분에 비약적 발전의 여정을 시작했다. 1609년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하고 지동설을 주창한 것은 근대 과학의 유레카 순간이다. 현미경과 엑스선, 동위원소 분석, 입자가속기 등은 베일 속 물질과 우주의 모습을 드러내 왔다. 인공지능이 연구개발에 속속 적용되면서 기존의 과학적 발견과 발명의 틀을 바꿀 혁신적 계기가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구글의 인공지능 발표회에서 릴리 펭 구글 인공지능제품 매니저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의학적 성과를 소개했다. 실명을 부르는 당뇨병성 망막증, 유방암의 림프절 전이, 피부암, 전립선암 등의 진단에서 인공지능의 효용성을 입증한 연구논문들이 다수 발표됐다. 방대한 데이터를 통한 상관성 분석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가설을 세우고 예측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는 딥러닝의 이미지인식 기술을 활용한 영상판독과 진단 위주였지만, 인공지능의 기여는 그에 그치지 않는다. 미 매사추세츠공대가 발행하는 과학기술 전문지 <엠아이티(MIT) 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는 인공지능이 과학적 발명에 가져올 변화를 소개했다.
과학적 발명의 최전선은 신물질이다. 존재하지 않던 유용한 신물질과 신약을 만들어내기 위한 발명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신약 개발에서 잠재적 분자구조의 숫자는 10의 60제곱에 이르는데 이는 우주의 원자 총수보다 많은 수다. 가능성이 많은 만큼 신약 개발은 대부분 실패하는,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은 모험 투자 영역이다. 어떠한 분자구조가 약물로 유용한 효과를 지닐지 연구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이에 비해 인공지능은 알파고의 이세돌 대국 사례에서 보듯, 빠른 속도로 연산과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뿐 아니라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사람이 떠올리기 어려운 인공지능의 기이한 상상력은 신약 개발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제약과 생명공학 분야에 엄청난 연구개발 자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새로운 분자구조를 지닌 신약은 수십년간 큰 변동이 없다. 재생에너지가 주목받고 있지만,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와 태양전지의 구조는 수십년째 구조적 개선이 없다. 제조 기술과 규모의 경제 덕분에 단가가 점진적으로 낮아졌을 따름이다.
레베카 헨더슨 하버드대 교수진은 지난해 3월 발표한 논문 ‘인공지능이 혁신에 끼치는 영향’에서 인공지능이 기존 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은 혁신 과정과 연구개발에 있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은 혁신 과정과 연구개발 조직을 재편하는 새로운 범용 ‘발명 도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논문의 핵심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앨런 아스푸르구지크 교수(화학)는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회견에서 “인공지능이 과학 연구에 끼치는 영향은 자율주행차, 의학진단, 개인화 쇼핑 등 인공지능이 적용된 다른 모든 영역의 영향을 능가하는 경제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힌턴이 세운 인공지능의 메카 벡터연구소의 주축인 그는 신물질 개발의 신기원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의 신물질을 개발하기까지는 평균 15~20년이 걸렸다. 몇 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기업은 꿈도 꿀 수 없고, 웬만한 대학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간이다. 아스푸르구지크 교수진은 생성적 대립 신경망(GAN)을 활용한 자동화된 인공지능실험실을 설립해 48시간마다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년을 이틀로 단축한 셈이다.
혁신과 발명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지만, 과학 발달로 낮은 곳에 달려 있던 열매는 모두 땄고 새로운 수확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구조로 바뀌었다. 연구 영역은 점점 더 전문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거대한 조직과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이러한 구조를 노스웨스턴대 경제학자 벤 존스는 ‘지식의 부담’이라고 말한다.
의약학, 화학, 재료공학만이 아니라 천문학과 우주탐사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잇따르고 있다. 인공지능이 특정한 분야에 한정한 도구가 아니라 산업에서의 전기처럼 과학적 탐구방법 전반을 혁신할 도구가 될지 주목된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지난 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 발표회에서 릴리 펭 구글 AI 프로덕트 매니저가 ‘의료서비스를 위한 AI’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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