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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된 생물학자

등록 2019-04-24 06:00수정 2019-04-24 10:07

미 분자생물학 원로 매슈 메셀슨 박사
생명의미래연구소, 숨은 영웅에 선정
1972년 생물무기금지협약 이끌어내
2014년 이중나선 메달을 받을 당시의 메슈 메셀슨 박사. 유튜브 갈무리
2014년 이중나선 메달을 받을 당시의 메슈 메셀슨 박사. 유튜브 갈무리
생물무기금지 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분자생물학자가 `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선정됐다.

미국의 민간연구단체 생명의미래연구소(Future of Life Institute)가 주관하는 `생명의 미래상'(Future of Life Award)은 올해의 수상자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매슈 메셀슨(Matthew Meselson, 1930~) 박사를 선정하고 상금 5만달러를 수여했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이 상은 위험을 무릅쓴 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나아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영웅적 행위를 했음에도 그동안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라이프 3.0> 저자인 MIT의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 교수가 주도해 2014년 설립한 생명의미래연구소는 2017년부터 해마다 `생명의미래상'을 시상해왔다. 이 연구소는 지구 생명을 유지하고 인류의 밝은 미래를 일궈가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는 단체다. 주로 강력히 부상하는 신기술, 특히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연구소가 올해의 수상자로 메셀슨 박사를 선정한 이유는 동서냉전이 한창이었던 1960~1970년대에 생물무기에 관한 국제적 금지 운동을 이끌어 결국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결과가 1972년 체결된 생물무기금지 협약이다. 생물무기를 전쟁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은 이 협약의 정식 명칭은 `세균무기(생물무기) 및 독소무기의 개발, 생산 및 비축의 금지와 그 폐기에 관한 협약'이다. 1972년 4월10일 협약이 체결돼 1975년 3월25일 발효됐다. 남북한은 1987년 가입했으며 현재 회원국은 182개국이다.

메셀슨 박사가 생물무기 금지 운동을 결심했던 미 육군의 디트릭요새. 유튜브 갈무리
메셀슨 박사가 생물무기 금지 운동을 결심했던 미 육군의 디트릭요새. 유튜브 갈무리
"핵무기보다 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그러면 더 위험" 결심

연구소는 "그는 이것 말고도 1979년에 발생한 러시아 스베르들롭스크의 탄저균(Sverdlovsk Anthrax) 누출 사건 의혹을 풀었으며, 1970년 베트남전에서의 고엽제 사용을 중단시켰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에서 수십명의 탄저균 감염 사망자가 발생하자 러시아 정부는 탄저균에 감염된 소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메셀슨은 현지조사 등을 통해 인근 군사시설에서 누출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는 또 베트남전이 한창인 1970년 8~9월 미국과학진흥협회 대표로 연구진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가 고엽제의 인체영향을 조사했으며, 이는 결국 그해 말 닉슨의 고엽제 퇴출 명령을 이끌어냈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왓슨과 크릭이 제기한 반보존적 DNA 복제 가설을 1958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반보존적 복제란 DNA 가닥이 두 개로 분리되면서 한 쪽은 보존한 채 나머지 한 쪽을 새로 합성하는 방식으로 복제를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규명한 메셀슨-스탈 실험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험’으로 불린다.

현재 하버드대 자연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인터넷언론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1960년대에 생물무기 반대 운동에 나서게 된 건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1963년 당시 그는 미 군축청 소속으로 무기통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탄저균 제조시설이 있는 육군의 디트릭 요새(Fort Detrick)로 가는 길에 미군이 생물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왜 그걸 하느냐고 물었더니 (상관이) 핵무기보다 더 저렴한 무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메셀슨 박사는 "그 말을 들은 즉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연구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우리가 값싼 대량살상무기를 바라는 건 아니잖느냐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 제조비용이 감소하면 오히려 안보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 군축청에서 일하던 1960년대의 메셀슨 박사. 유튜브 갈무리
미 군축청에서 일하던 1960년대의 메셀슨 박사. 유튜브 갈무리

두 차례 보고서 제출하며 설득...닉슨 대통령 승락 받아내

생물무기 사용은 사실 1925년 제네바의정서에 의해 금지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미국은 이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였다. 메셀슨은 생물무기를 개발해선 안되는 이유를 담은 `미국과 제네바의정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의 보고서는 헨리 키신저를 거쳐 닉슨 대통령한테 건네졌고, 결국 닉슨은 1969년 말 생물무기를 포기했다. 그 다음 대상은 살아있는 유기체에서 추출한 독성 물질이었다. 백악관 자문위원 중에는 자연에서 추출한 독소 이용은 안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걸 사용하는 건 괜찮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메셀슨은 또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 역시 닉슨에게 건네져 자연독소든 인공 독소이든 상관없이 모든 독성 무기의 사용을 포기하도록 이끌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닉슨 대통령은 메셀슨의 권고에 기반해 제네바 의정서를 승인해 줄 것을 상원에 다시 요청하면서 획기적인 내용을 담았다. 생물무기 `사용'만을 금지한 의정서를 넘어서 공격형 생물무기 `연구' 자체를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탄저균 등 그동안 비축해 놓았던 공격형 생물무기도 폐기했다.

“생물무기는 전쟁과 평화의 경계선 없애”...로봇무기 반대론자에 영감

용기를 얻은 메셀슨은 이를 전세계에 확대하는 운동에 나섰다. 생물무기의 사용은 물론 비축과 연구개발도 금지하고 검증 시스템까지 갖추자는 것이었다. 1972년 생물무기협약이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메셀슨과 동료 학자들의 이런 노력이 있었다고 연구소는 강조했다.

메셀슨 박사는 그동안 "생물학전은 전쟁과 평화의 경계를 없앤다"고 우려해 왔다. "다른 형태의 전쟁은 시작과 끝이 있다.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아닌지 명확하다. 생물전쟁은 다르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른다. 아니면 일어나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생물학전은 DNA를 공격함으로써 인류를 뿌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며 인류의 생명 뿐 아니라 인류 자체를 보호하려는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생명의미래연구소 대표인 테그마크 교수는 "오늘날 생명공학은 목숨을 앗아가기보다는 목숨을 구하는 선한 힘"이라며 "메셀슨 박사는 생물학의 이용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수용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메셀슨 박사의 활동은 인공지능 이용에서도 비슷한 경계선을 긋고, 치명적인 로봇 자동무기를 금지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덧붙였다.

왼쪽이 제1회 수상자인 바실리 아르키포프, 오른쪽이 2회 수상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두 사람은 각각 1998년, 2017년 숨을 거두었다. 나무위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왼쪽이 제1회 수상자인 바실리 아르키포프, 오른쪽이 2회 수상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두 사람은 각각 1998년, 2017년 숨을 거두었다. 나무위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과거 두차례 수상자는 핵전쟁 위기서 세상 구한 소련 장교 2명

2017년에 제정된 이 상의 제1회 수상자는 1962년 쿠마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 핵잠수함 부함장이었 해군 장교 바실리 아르키포프(Vasili Arkhipov)에게 주어졌다. 쿠바 인근 해상에서 임무 수행중이던 그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핵 어뢰를 발사하려던 함장을 침착하게 설득함으로써 인류를 제3차 세계 대전 공포에서 구해낸 공로다.

지난해의 제2회 수상자 역시 옛 소련 장교에게 돌아갔다. 1983년 잘못 울린 핵 미사일 발사 경보에 침착히 대응한 소련 방공사령부 당직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가 주인공이었다. 그 해 9월26일 아침 당직을 서던 그는 미국을 감시중인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5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신호가 오자, 이것이 오보임을 직감하고 상부에 시스템이 오작동했다고 보고함으로써 인류를 핵전쟁 위기에서 구했다. 그 해는 소련 전투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여객기를 미 정찰기로 오인해 격추시킨 사건으로 미-소간에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때였다. 그의 이야기는 2014년 <세상을 구한 남자>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두 차례의 상은 모두 핵전쟁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한 사람에게 돌아간 셈이다. 올해의 상은 인류에 중대한 위협임에도 간과하기 쉬운 실질적 위험에 주목하자는 취지를 담았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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